제조업의 쇠퇴와 중소기업의 몰락? 공동화와 양극화의 허와 실

[특별기획 : 2005년 한국의 노동자](11) - 해외 공장이전(1)-②

제조업공동화와 기업규모별 양극화. 최근 한국경제의 발전경향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언급되는 단어들이다. 이를 통해 그려지는 한국경제의 전망은 97년의 경제위기로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암울하게 다가온다. 중소제조부문이 붕괴의 위험에 처해 있고, 기업들은 황급히 해외로 떠나고 있으며, 심지어 제조업 전반이 공동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니, 이 얼마나 아찔한 일인가!

한국경제 공동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행보도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우선 공동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 차원에서 ‘제조업발전특별위원회’가 신설되었다. 물론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친화적 환경조성과 외국인 투자 유치. 이것이 재계 고유의 주장이라면 양대 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계 고유의 입장은 노동조합을 협력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고용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제의 연착륙을 유도하며, 노동자의 숙련향상을 위한 교육훈련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정도.

하지만 차세대 성장동력의 발굴, 지역별 산업클러스터 형성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을 추진, 혁신주도형 산업구조로의 이행, 중소기업의 기술력 강화 등 전반적인 대응기조 면에서는 정부와 재계, 노동계 사이에 그렇게 커다란 입장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문제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우선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영상의 곤란이 노동조건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인식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다만 KDI 등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노동계는 노동조합의 참여와 구조조정의 지연, 이직지원, 교육훈련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문제해법의 각론 수준에서는 다소의 입장차이가 확인된다.

끝으로, 공동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고, 지역별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해야 하며, 혁신주도형 산업구조로 이행해야 하고,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뚜렷한 이견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단지 양극화의 경우에는 열거된 동의사항에 대기업의 중소기업 수탈 규제라는 목록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점이 공동화 대책과 양극화 대책의 차이라면 차이랄까.

공동화?

그런데 과연 한국의 제조업이 공동화되고 있는가?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선행연구들이 이에 대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아래의 <표 1>을 보자.


우선 출하액증가율과 부가가치증가율 등 제조업의 성장성을 나타내는 지표는, 이전 시기에 비해서는 증가속도가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경제성장률을 웃돌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 영업이익률과 매출액 경상이익률을 봐도 공동화 경향은 감지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고용의 정체양상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월평균종사자수는 1991-96년 동안 연평균 0.7%씩 줄어들다가 2000년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생산증가 추이에 비하면 회복속도가 매우 느렸다. 더구나, 노동연구원 등 다른 기관의 조사에서는 제조업 취업자수가 2001년 이후 3년 연속으로 감소하는 등 고용위축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결국 관찰되는 사실은 제조업 생산은 꾸준히, 빠르게 증가한 반면, 고용은 줄었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과 고용의 절대적인 크기 뿐 한국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변화가 제조업공동화라는 표현으로 기술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제조업발전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이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책이 될 수 있을까?

해외직접투자의 효과

사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었던 제조업공동화론이 새삼스레 부각되고 있는 주된 이유는 해외직접투자의 파장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해외직접투자가 수출과 국내투자를 대체하는 한편 역수입을 증대시켜 국내생산과 일자리를 축소시킬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된다. 특히, 해외생산이 본격화되고 현지법인의 모기업 의존도가 낮아질수록 이러한 부정적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기존 정규인원의 정년보장, 국내공장 생산물량 유지, 국내생산 동종품목의 역수입 금지, 세계경제 불황으로 인해 공장폐쇄가 불가피할 시 해외공장 우선 폐쇄. 현대자동차의 해외공장 관련 단체협약 내용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에서 어떠한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그러나 해외직접투자와 해외생산이 국내투자와 생산을 감소시킬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당위적 주장은 세계화의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를 결여하고 있으며, 공동화 우려를 증폭시키고 물량확보에 주력하는 대응전략은 고용을 확대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수출 및 생산의 증감 여부가 아니라 수출과 생산이 증대되더라도 그것이 고용확대와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노동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은 아래의 <표 2>에서 제시되는 산업자원부의 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해외진출 이후의 변화를 묻는 동 설문조사에서, 수출과 생산에 대해서는 확대했다는 응답비중이 축소했다는 비중보다 높았다. 그러나 고용은 축소 또는 중단했다는 비중이 확대했다는 비중보다 높았다. 즉, 상당수 기업들이 해외진출 이후 모기업의 수출과 생산 확대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늘리지 않거나 오히려 축소해 왔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처럼 상반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었는가? 첫 번째 가능한 설명은 경제전반의 산업연관관계가 약화되어 가공조립부문 대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늘고 수출이 증대되더라도 후방부문에서의 고용창출은 미진하다는 점이다. 아울러, 내수중심적이고 노동집약적인 특징을 갖는 경공업부문 중소기업들의 도피형 해외이전이 수출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반면 고용에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한 가지 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국적 생산체계 구축과정에서 진행되는 모기업과 자회사간 생산활동의 재배치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다국적 생산체계의 구축과정은 노동집약적 생산부문을 저임금 현지공장으로 이전하고 국내 모기업에서는 자본 및 기술집약적 생산활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모기업의 생산물단위당 노동투입량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고, 그로 인해 국내 모기업에서는 생산이 늘더라도 고용이 감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수출문제와 고용문제의 동시적 해결을 어렵게 하는 한 가지 딜레마를 제기한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모기업과 해외 자회사간 분업관계가 ‘수평적’일 경우에는 수출대체효과가 수출유발효과보다 크게 작용하여 고용과 노동조건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모기업과 현지법인이 긴밀한 ‘수직적’ 분업관계를 형성할 경우에는 수출유발효과가 증대될 수 있지만, 모기업의 생산물단위당 노동량비율을 하락하여 고용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까지의 대응은 대체로 수평적 분업관계 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폐해를 막는데 초점이 놓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해외직접투자를 허용하는 대가로 국내 모기업에 대한 투자 증대를 요구해 구조고도화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는 수평적 분업체계를 대신해 수직적 분업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으로, 결코 노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또 하나 현재의 논의에서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문제는 해외직접투자의 효과가 차별적으로 나타나리라는 점이다. 다국적 생산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대기업의 해외직접투자와 국내공장의 폐쇄와 함께 진행되는 중소기업의 도피형 해외이전이 해당 부문 노동자들에게 상이한 효과를 미치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본사를 국내에 유지하면서 생산 및 판매조직을 여러 국가로 확장하는 다국적 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관리직과 숙련노동보다 생산직과 비숙련노동에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세계화 과정은 노동조건의 전반적 저하와 함께 노동의 분화를 가속화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해외직접투자 확대의 문제가 단순히 공동화에 대한 우려로 제기되어서는 안 되며, 그에 대한 대응도 물량확보 및 고용안정 방안으로 국한될 수 없다. 자본의 사보타지를 막고 자본의 세계화 경향에 반대하면서 새로운 연대의 흐름을 창출해 나가는 것, 이는 분명 매우 어려운 과제겠지만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양극화 : 경영성과, 노동조건, 또는 양자 모두?

끝으로, 기업규모간 양극화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기실 기업규모간 양극화 문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한국경제의 주요 현안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여기에는 반독점과 계급동맹의 문제 등 정치적인 고려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한 통설은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영상의 곤란이 노동조건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 경영난의 주된 원인으로는 기술적 측면에서는 낮은 노동생산성과 기술경쟁력, 구조적 측면에서는 대-중소기업간 협력 네트워크의 취약성과 하도급 거래구조의 불공정성이 지적되어 왔다. 특히 독점이론적 접근에서는 국내 대자본과 제국주의 자본의 이중적 수탈구조 속에서 중소자본의 몰락과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고, 이러한 이윤유출이 중소기업의 투자여력과 지불능력을 훼손하여 중소 하청기업을 저생산성-저임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논의의 대상을 제조업으로 한정하면, 이러한 가설은 현실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 면이 있다. 우선 제조업 내 중소기업의 도산건수 자체가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큰 폭의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중소기업의 비중은 사업체수, 생산규모, 종사자수 모두에서 그간 빠르게 확대되어 왔다. 나아가 주요 경영지표의 추이를 보더라도, 기업규모간 경영성과의 차이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고 그러한 경향이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심지어 경상대 주무현 교수의 실증연구에서는 중소기업의 이윤율이 오히려 대기업을 상회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규모간 임금격차의 확대 현상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확연히 나타났고, 최근에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이는 노동조건의 양극화 문제가 경영성과 양극화에 따른 부수적 결과물이 아닐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고용비중이 증가하고 상대임금은 하락했다는 점에서 양극화는 단순히 계층성의 심화나 편차의 확대 뿐 아니라 노동조건의 전반적인 저하 경향을 의미한다.


임금격차의 확대배경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부가가치 생산성 격차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이라기보다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일 뿐 이지만, 그 내막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경제에서 부가가치 생산성 증가의 대부분은 노동자 1인당 자본이용량으로 측정되는 노동장비율(=투하자본량/노동자수)의 상승에 의한 것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자본이용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자본회전율(=부가가치/투하자본)이나 신고전파 모형에서 정의되는 총요소생산성 등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임금격차의 원인을 생산성 격차에서 찾는 문헌들에서는 생산성 격차가 노동장비율의 격차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노동조건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술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구상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방법론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과연 중소기업 육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노동조건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이 어느 정도나 실현가능한 것일까? 아래의 그림은 기업규모별 투하자본과 종사자수의 추이를 보여준다. 노동장비율은 투하자본과 종사자수간의 비율이기 때문에 투하자본이 증가하거나 종사자수가 감소하면 증가한다는데 주의하기 바란다. 그림에서 제시되는 바는 그간 기업규모별 노동장비율의 격차확대가 투하자본 증가율의 차이 때문이었다기보다는 고용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투하자본 증가율 면에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회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중소기업의 고용을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확대하면서 상기한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은 과거 대기업들도 못한 일을 그보다 훨씬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들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실현가능성이 극히 낮은 구상일 뿐이다. 다음으로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도 고용축소를 통해 노동장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이는 일부 중소기업에게는 유효할 수 있어도, 대량 실업사태를 가정하지 않는 한, 중소기업 전체 차원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공동화와 양극화에 대한 과장 속에서 가려지고 있는 진실은 자본과 노동의 공동의 위기나 단순한 편차의 확대가 아닌 노동조건 전반에 대한 공세가 더욱더 미묘하고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시급히 제기되고 있는 과제는 미래에 대한 공포 속에서 정부 및 재계와 머리를 맞대고 ‘제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발전경향이 내일로 지속되지 않도록 대중의 불만을 투쟁으로 조직해 나가는 일이다.

[기획취재지원] - 한국언론재단

특별기획 '2005년 한국의 노동자' 순서

1회차(8월 22일) 시장화! 유연화!
2회차(8월 23일) 양극화와 사회통합
3회차(8월 25일) 고령화의 진실
4회차(8월 30일) 세상을 바꾸는 이수호 집행부
5회차(9월 1일) 노사대립과 노사정위원회
6회차(9월 6일) 노동운동 위기 논쟁의 촉발
7회차(9월 8일) 위기, 그후
8회차(9월13일) 대공장 노동운동의 현주소
9회차(9월15일) 산별은 정말 대안인가
10회차(9월20일) 정규-비정규직 차별, 해답은 없나
11회차(9월22일) 해외 공장 이전(1)
12회차(9월27일) 해외 공장 이전(2)
13회차(9월29일) 노동운동을 움직이는 사람들
14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1)
15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2)

특별기획취재팀
- 유영주 편집국장
- 최하은 기자
- 문형구 기자
- 최인희 기자
- 라은영 기자
- 윤태곤 기자
- 이꽃맘 기자
- 참세상 영상팀
덧붙이는 말

황선웅 님은 한국비정규센터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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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


    괜히 딴지 걸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일단 말해 두겠습니다.

    같은 제목으로 실려있는 앞의 김두한 씨의 글(1)과 황선웅 씨의 글(2) 사이에 미묘한 차이점이 있는 것 같군요.

    (1)의 전반적인 기조는 한마디로 "제조업 공동화"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공세일 뿐,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2)에서는 제조업 공동화라는 사실 자체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그것이 산업 및 기업 특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2)에서는 제조업 공동화 말고 다른 여러 문제도 다루고 있지만, 여기선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내용만을 보겠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제조업 공동화의 허구성을 주장하면서 (1)에서 들고 있는 대표적인 근거가 바로, 자본은 단순히 인건비 싼것만 보고서 해외로 진출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중국이 인건비는 싸지만, 그만큼 노동생산성도 낮기 때문에, 전체적인 비용 측면에서 보면 자본 입장에서도 중국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거죠. 따라서 자본 측이 주장하고 양대 노총에서 맞장구 치고 있는 제조업 공동화라는 것은 노동자 계급을 분쇄하기 위한 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곧 "헛소리"라는 것입니다.

    한편 (2)에서는 "제조업 공동화"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맥락이 잘못됐다는 데 대해서는 (1)과 입장이 비슷해 보이지만, 그러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일부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다국적 생산체계의 구축과정은 노동집약적 생산부문을 저임금 현지공장으로 이전하고 국내 모기업에서는 자본 및 기술집약적 생산활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함으로써, 문제는 제조업이 공동화되는 게 아니라 자본의 해외진출에 따라 고용이 감소하고 노동자계급의 상황이 열악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자본장비율"을 높임으로써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2)의 주장대로라면 (1)에서 제기하는 핵심 근거, 즉 중국의 노동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기업들이 중국으로 잘 안간다는 주장도 크게 힘을 잃게 됩니다. 중국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노동력 자체의 질이 낮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중국에서 자본장비율을 높임으로써 크게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쨌든 이러한 현실 인식의 차이는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략에 대해서도 커다란 차이를 낳습니다. (1)에 따르면 노동자계급은 현재 양대노총의 지도부가 보이고 있는 자본에의 협력 전술을 당장 집어치우고 저들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 전술을 분쇄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하며, 실제로 글쓴이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노동자계급의 열악한 현실은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이므로, 결국 노동자계급은 그러한 자본의 세계화를 막기 위해 분투해야겠죠. "자본의 세계화 과정은 노동조건의 전반적 저하와 함께 노동의 분화를 가속화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해외직접투자 확대의 문제가 단순히 공동화에 대한 우려로 제기되어서는 안 되며, 그에 대한 대응도 물량확보 및 고용안정 방안으로 국한될 수 없다. 자본의 사보타지를 막고 자본의 세계화 경향에 반대하면서 새로운 연대의 흐름을 창출해 나가는 것, 이는 분명 매우 어려운 과제겠지만 그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약간 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2)에서는 자본의 세계화라는 현상을 상당부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1)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사실은 매우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나아가 (조금 무리해서 얘기하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1)과 (2)의 주장은 단순히 "차이"를 넘어 대립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본의 세계화 경향에 반대"하자는 (2)의 주장은 자칫 (1)에서 그렇게도 경계하고 있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2)는 이러한 측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습니다. 더욱이, 만약 (2)의 주장대로 자본이 밖으로 나간 게 문제라면, 그 자본이 향하고 있는 중국의 노동자에게는 (한국 자본의 중국 진출이) 이롭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2)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진실은 (1)과 (2)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1)과 (2)의 주장은 너무도 원론적이며,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논의"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닌, 실질적인 실천/투쟁을 조직하고 북돋기 위해서는 현상황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1)쪽에 더 동의합니다. 분명 현시점에서 제조업 공동화 논의는 자본 측의 분열 책동, 민족/국민 이데올로기를 이용한 노동자 계급의 포섭전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좀더 장기적인 시야로 보자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2)가 장기적인 전략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우리가 꾀해야 할 것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지, (2)에서 말하는 대로 "한국 자본의 세계화가 한국 노동자의 형편을 열악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을 저지하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2)에서 제시된 내용을 무조건 틀렸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이 답글을 다는 이유는, 제조업 공동화에 대해, 같은 제하에 실린 (1)과 (2)가 주장은 물론 사실 인식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기획을 하시는 참세상 쪽에서도 좀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