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 그 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14일,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증언대회' 열려

"구로, 그 곳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20여 년전 구로동맹파업을 이끌었던 효성물산 노동조합 전 위원장 김영미 씨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증언을 듣고 나서 이 말을 남겼다. 그녀는 "여기있는 여성은 20여 년전 구로에 있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20년 후의 모습이다. 10대 때는 가난한 가정형편에 동생들 학비를 만들기 위해 기계처럼 일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들쳐 매고 일을 했고,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 쯤이면 또 일을 찾아 파견직,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기계처럼 일했다. 이것이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다"며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전했다. 20여 년전 구로에서 일하던 약 11만 명의 노동자 중 80%가 여성노동자였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이름이 변한 지금의 구로에 새롭게 취직하는 사람의 77%가 여성이며, 96% 이상이 계약직, 파견직이다.


구로 새로 취업하는 사람의 96%가 계약직, 파견직

14일, 인권단체 사회권전략팀과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은 공동으로 추최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불법파견 실태와 인권 침해 사례 고발을 위한 증언대회'에서는 20여 년 전과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구로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50여 일이 넘게 현장 철야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노동 탄압 사례 증언이 이어졌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과 불법파견근절과 최저임금실현을 위한 서울남부공대위는 2005년 8월 17일부터 9월 16일까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의 생산직 사원 채용공고를 통해 총 96개 업체 1,279개 일자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계약직, 파견직으로 고용된 사람이 96% 이상이다.

김애심 기륭전자 조합원은 "기륭전자에서 일한 지는 2년이 되었다. 지난 번에 다니던 회사가 IMF 이후에 힘들어져서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아 보고 있었는데 휴먼닷컴이라는 용역회사를 알게 되었고 문의를 했더니 만 45세까지만 가능하다고 하더라.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안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와보라 그래서 갔더니 얼굴이 동안이라서 괜찮겠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근로 계약서를 썼다. 그 때는 계약기간이 없었다. 그리고 2, 3일 후에 기륭전자로 갔다"며 기륭전자에 취업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박경선 서울남부지역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지금은 가산디지털단지역인 가리봉역 앞에는 인력회사들이 봉고차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그들은 매일 해고되고 또 취업되고, 해고된다"며 구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견노동자들의 실태를 전했다. 파견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는 대부분 여러 개의 업체의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경쟁체제를 도입하여 임금삭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상적인 해고 위협, 여성권 보장 그림의 떡

이렇게 고용된 파견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해고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딸이 맹장 수술을 하고 퇴원하는 날, 딸을 집에 데려다 주고 11시 30분에 출근했는데 지각 처리되고, 집 안의 제사 때문에 오전 근무만 한 날도 지각처리 되고 이 모든 것은 해고의 이유가 되었다. 사람들은 해고될까봐 중간 관리자의 눈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김옥분 기륭전자 조합원의 증언은 파견노동자들의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며 가족이라는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가사노동도 불가능한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증언대회에 참여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그녀들은 80시간에서 100시간에 달하는 잔업을 군말없이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고용불안 속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산전 후 휴가 및 육아휴직 등은 그림의 떡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아이를 낳기 위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으며, 30대 중후반 이후 다시금 일을 하러 나온 여성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녀들은 그렇게 파견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으며 끊임없이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에서 나온 문설희 씨는 "우리나라 여성의 고용율을 연령에 다라 큰 차이를 보이고 특히 30대 여성의 낮은 고용율이 특징으로 포착되어 왔다.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및 기능과 별개로 사고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성노동자들을 무력화 시키는 사측의 성폭력적 탄압

상시적인 고용 불안, 일과 가사노동 양립의 불가능 속에서 끊임없이 빈곤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인간답게 살기위한 절실한 요구였으며, 그렇게 건설된 노동조합은 그녀들이 50일이 넘게 투쟁할 수 있는 커다란 울타리가 되었다. 그러나 사측의 탄압은 20여 년전 구로동맹파업의 모습을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사측의 탄압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이며 성폭력을 통해서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정정순 기륭전자 조합원의 "나는 계약직이라 그나마 한 달에 64만 원 받는데, 회사는 우리에게 투쟁 14일 만에 18억이라는 돈을 손배가압류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는 회사 곳곳에 있는 CCTV 25대가 감시하고 있으며, 문을 밖에서 잠글 수 있게 해놓아서 우리는 현장에서 나올 수가 없다. 그리고 잠자는데 크게 음악 틀고, 매일 남자 구사대들이 와서 때리고... 오늘 아침에도 한 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여성들 끼리 있으니 이런 폭력에 대항할 수가 없다"는 말에서 자연스럽게 20년 전 구로가 떠오른다. 김영미 효성물산 전 노조위원장은 "20년 전 우리가 파업하니까 여성노동자들 기숙사로 남자 구사대 두 명이 옷을 벗고 들어와서 제일 열심히 싸우던 친구들을 사무실로 데려가서 '빨래 아니면 나갈래'라며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며 구로 여성노동자들에게 자행되었던 폭력의 실상을 전했다.

증언대회 사회를 봤던 호성희 사회진보연대 여성국장은 "여성들이 노동의 권리를 되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공장의 문을 넘고 가족의 영역을 넘는 전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며 증언대회를 마무리 했다.

"민주노총 혁신하려면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어라"

이 날 증언대회에서 구로동맹파업 당시 효성물산 노조위원장이었던 김영미 씨는 현재 민주노총의 문제에 대해 "노동조합 운동이 언제나 그러했듯이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 만이 희망이며, 이것이 민주노총의 혁신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러한 현장에서 울려나오고 있는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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