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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의 저작을 읽는 즐거움은 누구도 보지 못한 측면을 발견하는 혜안과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비판, 그리고 때로는 놀라운 골계미에 있다. 이 정도에 이르면 한국 정치는 손 교수의 분석에 부딪혀 변명조차 불가능한 패착의 상태에 처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의 분석은 전통적인 정치개념을 넘어서는 총체성의 정치와 새로운 민주주의 구상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손 교수는 국가권력에 집중된 전통적인 정치 개념을 확장해 먼저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경고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경제를 다루는 ‘생산의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권의 정치’, ‘일상성의 정치’까지도 아우르는 총체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가 고찰하는 해방 60년의 한국 정치는 바로 이러한 총체성의 정치이다.
손 교수의 민주주의 구상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의 정치적 민주주의는 기본적인 전통적 의미의 민주주의이다(71-75쪽).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두정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권리의 보장을 주장한다. 곧, 국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형성할 기회, 선호를 나타낼 기회, 정부 정책에서 이 선호를 다른 선호들과 동등하게 취급할 기회의 평등, 이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조직 결성과 가입의 자유, 표현의 자유, 투표권, 피투표권, 대안적 정보의 접근권이 보장되는 정치질서이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과연 이러한 포괄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 의심해볼 일이다.
두 번째로 거론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주된 관심인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이다. 이는 자유권에 대비되는 사회권의 문제로서 빈곤에서 벗어날 자유 등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보존되어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과 관련된 사회경제적 권리의 문제이다. OECD 국가들 중 거의 꼴찌에 가까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수준을 볼 때, 반드시 지적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요즈음, 사회복지국가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대목은 맑스주의와 같은 좀더 근본적인 좌파들의 관심 사항인 생산자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부분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것으로서 작업장에서 나타나는 지배관계의 해소를 주장한다. 물론 생산자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겉으로 엄밀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이 대목에서 자본주의는 온전한 민주주의와 모순을 일으키는 사회질서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지배관계를 자본주의에서는 온전히 탈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산자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일상성의 민주주의이다. 일상성의 민주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맑스주의 등 포스트주의가 관심을 갖는 것으로서,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젠더민주주의에서 소수자운동으로서의 동성애자들의 권리와 같은 차이의 민주주의와 대학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생활세계의 민주주의를 말한다. 근대의 고리와 한계를 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돋보인다.
기존의 한국 정치 분석뿐만 아니라 손 교수의 과거 저작과도 구별되는 새로운 해석 중의 다른 하나는 박정희 정권의 연속성에 관한 문제이다. 역시 손 교수의 분석은 “특정한 역사적 정세는 여러 규정 중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규정에 눈을 돌릴 필요성을 제기해 주고 있다”는 시각에서 “부단한 자기비판과 자기정정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139쪽).
박정희 정권의 성격구분은 유신을 계기로 한다기보다 1963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정안 채택 이후라는 것이 핵심이다. 곧 5ㆍ16 쿠데타 초기의 경우 국가자본주의적 요소가 많았지만 그것은 민족민주국가적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157쪽). 그에 대한 증거로 그는 군정기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이후 채택된 수정안과 달리 “국가주도형 산업화에 수출주도형이 아니라 수입대체 산업화의 심화, 즉 ‘내포적 산업화’를 통한 자립경제의 추구를 기본 색조로 하고 있었”음을 제시하였다(142쪽). 이것이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내외 사정에 따라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정안 채택 이후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도성은 급진적 요소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발전을 도와주기 위한 국가개입, 즉 ‘국가독점자본주의적’ 개입으로 변질했고”, “이승만 정권 시기에 형성된 조기적 독점은 본격적인 독점체로 성장해” “한국 자본주의는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발전했다”고 한다(157쪽).
이러한 측면에서 박정희 정권은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적 파시즘 체제와 유사하며, 이는 제4공화국 내내 작용한 속성이었다. 다만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박정희 정권은 발전국가적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에 ‘발전국가형’이라는 접두어가 필요하다고 한다(158쪽). 그리고 1980년대 이후 한국 독재정권의 성격은 발전국가형에서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해간 것이었다는 판단이다.
한국 정치의 변화를 관철하는 법칙을 도출하는 것도 박정희 정권의 성격 규정을 발전시킨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속성을 발전국가형 종속파시즘이라고 볼 때 이후의 역사는 각각 민주 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개혁(민중의 시각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개악)이라는 두 가지 노선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전두환ㆍ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정권이 지속되기도 했으나, 양 김과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면서 파시즘 체제는 점차 민주적으로 개혁되어 온 반면, 발전국가적 성격은 세계화 추세와도 맞물려 자본의 이익을 더한층 확대하고 공고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개악으로 연결되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현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분석이다. 손 교수는 “선거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정몽준 의원과는 정체성 등이 너무 달라 결코 단일화를 할 수 없다는 자신의 말을 뒤집고 원칙을 버리면서까지 재벌과의 후보단일화를 수락했고 재벌과의 공동정권이라는 짐을 선택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한다(287-8쪽). 그것은 노무현 정부가 갖는 “일종의 원죄”였다(280쪽).
분명 열린우리당의 강령이나 정책 및 인적 구성을 보더라도 체제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진보성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가 선택한 당색이 자유주의를 상징하는 노랑색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한미FTA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와 배경도 이 책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특히 한미FTA와 관련해 ‘참여정부’라는 미사여구는 내팽개친 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주도하는 무리를 범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가 세계경제를 제일 잘 아니까 내가 한 결정에 국민들은 무조건 따라오면 된다’는 계몽군주식 정책 결정은 박정희 시대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하는 사람은 농민이건, 영화감독이건, 교사이건 ‘변화에 반대하는 수구세력’으로 모는 오만은 오히려 군사독재보다 더 심하다”(362쪽).
저자는 한미FTA를 둘러싼 최근의 정국을 보면서 왜 정치철학자 루소가 현대민주주의를 “국민이 선거 때만 되면 주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노예가 되는 제도”라고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362쪽). 실제로 수만 군중이 광화문과 혜화동 거리에 모여 한미FTA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도 공청회조차 제대로 열지 않고 협정문도 공개하지 않는 노무현 정부는 대단히 꿋꿋하다. 국민의 참여의지는 의구(依舊)한데 참여정부는 간 데 없다.
과거 1945년에서 현재 2006년에 이르는 손호철 교수의 통찰적 분석은 온고(溫故)와 지신(知新)을 두루 갖췄다. 한국 정치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현 정부의 성격을 뚜렷이 포착하여 미래의 길을 모색하려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책이다. 평자는 손 교수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며 또한 많은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는다.
손 교수의 출발점은 총체성의 정치와 포괄적인 민주주의 구상이었다. 이러한 맥락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민주 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개악을 설명하기를 평자는 기대했다. 그러나 후반부에 기술되는 민주 개혁은 자유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민주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개념에 한정되었고, 신자유주의적 개악 언급으로 생산자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렀다.
민주 개혁에 대한 분석이 일상성의 정치로까지 나아가거나, 정치적 민주 개혁의 부분적 실패와 사회경제적 민주 개혁의 부분적 성공 및 생산자 민주주의적 신자유주의 개악을 포괄하여 일상성의 민주주의에 대한 판단으로까지 나아가는 보다 높은 차원의 추상화와 종합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이다. 손 교수의 저작활동 궤적을 볼 때 이러한 아쉬움의 해결을 주문하고 새로운 저작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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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기 님은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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