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백혈병·에이즈 환자들, “한미FTA, 환자 생명을 위협”

6개 환자단체, 한미FTA 반대 기자회견 열어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한미FTA가 불러올 파장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미FTA 보건의료분야 협상과 관련해 환자당사자들이 직접 “한미FTA 협상이 국민들과 환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서 주목된다.

강직성척추염협회, 뇌종양환우와함께, 신장암같이이겨내요, 한국백혈병환우회, GIST 환우회, HIV/AIDS인권모임 나누리+ 등 6개 환자·인권단체들은 5일 안국동 달개비(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FTA 협상은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의 접근권을 방해한다”며 “환자들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이로 인해 환자들은 한미FTA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5년간 60억 달러 챙기고도 특허연장 요구하나”

환자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미FTA 협상 보건의료 관련 의제들을 언급하며,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들은 우선 미국과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요구하고 있는 의약품 특허권 강화 및 특허기간 연장 문제와 관련해 “특허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제약회사들이 약 가격을 마음대로 받고자 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2차대전 때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매년 죽어가는 것은 명백히 돈에 눈먼 제약회사들에 의한 살인이라고 규정하여도 모자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환자들은 백혈병 치료제를 생산하는 노바티스사를 예로 들며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특허기간 연장 요구를 강력 비판했다. 이들은 “몇 년 전 글리벡의 개발비를 8억 달러라고 주장한 노바티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이미 출시 5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글리벡 매출이 60억 달러에 이름에도 이에 대한 특허를 20년 동안 묶어 놓았다”며 “그럼에도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이번 한미FTA 협상을 통해 현재에도 20년이나 되는 특허기간을 더 연장하고자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미FTA, 환자들에게 ‘돈 없으면 죽어라’”

이어 이들은 △강제실시 제한 △의약품 데이터 독점 △병행수입 금지 등의 미국과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요구와 관련해 “이는 결국 환자들에게 ‘돈 없으면 죽어라’는 이야기와 동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실시, 의약품 데이터, 병행수입 등은 특허제도에 의한 비싼 약값을 지불할 수 없을 경우 한 국가의 공중보건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마련되어 있다.

의약품 특허제도에 대한 강제실시권은 한 국가가 자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특허에 의한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고, 제네릭의약품(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강제실시를 통해 제네릭을 생산하더라도, 특허권자에게 로열티 지불 등의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과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지속적으로 강제실시권 적용 범위를 최소화하라고 요구해왔고, 한미FTA 협상을 통해 본격적으로 의제화 될 전망이다. 미국은 그간 제 3세계 국가에서 강제실시권 발동 움직임이 있을 때 마다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역압력 등을 행사해 딴지를 걸어왔다.

이에 대해 이날 기자회견 단체들은 “강제실시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며 “자신들은 하면서, 다른 국가에 대해서는 못하게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이런 의도를 이번 한미FTA 협상을 통해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에 큰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권미란 나누리+ 활동가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 협정문을 통해 보면 미국은 공익적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강제실시를 ‘비상업적’인 것으로 제한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이는 어떤 의약품이든 현재 정부가 국영기업을 세워서 할 수 없으므로 사기업을 통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상업적’인 목적이라는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윤이 과연 인간 어디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가”

환자들은 또 미국 측의 의약품 데이터 독점권 부여 요구에 대해 “영구적으로 특허를 인정하라는 얘기와 다름없다”며 “그간 특허 의약품에 대한 약품 데이터를 요구하여 특허기간이 만료된 이후 값싼 복제약으로 생명을 유지해오던 수많은 전 세계 환자들은 이로 인해 복제약의 생산이 위협받게 되어 결국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의약품 데이터 독점권이란 신약을 개발한 원제약사가 식약청에 제출한 안정성 등에 대한 자료를 다른 제약사의 제네릭 의약품 허가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원제약사에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데이터독점권을 인정할 경우 제네릭을 생산한 제약회사들은 불필요한 시험을 반복해야 되고, 그 만큼 비용 부담과 시장진입 장벽이 높아지게 된다.

권미란 활동가는 이 같은 의약품 데이터 독점권 제도에 대해 “특허권과는 별개로 제네릭의 시장진입을 막게 되어 환자들이 값싼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강제실시권을 발동해야 할 의약품이 데이터 독점권으로 보호받고 있다면, 품목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강제실시가 불가능해진다”며 “의약품 데이터독점권은 사실상 강제실시권을 무력화시키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또 “강제실시 제한과 의약품 데이터 독점권은 미국이 우리에게 주는 절망적인 선물”이라며 “그나마 어렵게 복제약을 만든다 해도 이에 대한 수입을 병행수입 금지를 통해 원천적으로 막겠다고 하니 이윤이라는 게 과연 인간을 어디까지 파멸시킬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돈 내고 치료법을 사용하라니... 헛웃음만 나올 뿐”

이들은 또 △약가에 대한 독립적 이의신청기구 설치 △약가 결정에 제약사 참여 등의 미국 측 요구와 관련해서는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라며 “한국의 약가결정에 참여하여 미국 제약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관철하거나, 그것이 잘 안되면 FTA 협상에 의해 설치된 이의신청기구를 통해서 이를 아예 원점으로 돌려버리고, 주권국가 스스로가 약제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어떤 정책도 자국 제약회사의 약가정책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할 때 얼마든지 이런 조정기구를 통해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땅 짚고 헤엄치기식인가”라고 읍소했다.

이들은 이미 미국이 태국과의 FTA 협상에서 요구한 바 있는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권 인정’과 관련해서도 “앞으로 특정 질병에 대해 치료법이 개발되면 해당 개발자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그 치료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돈 내고 치료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죽으란 이야기이고, 전 세계 의사와 병원에 대해 로얄티를 받고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장사를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했다.

암, 에이즈, 백혈병 등 약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미FTA는 근본적으로 모두의 삶을 뿌리 채 흔들어버릴 것”이라며 “환자들은 우리 스스로 생명을 지키고자 국민과 환자들을 죽음의 수렁에 넣는 한미FTA를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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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실시 , FTA , 특허권 , 환자단체 , 의약품접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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