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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4년 된 느티나무가 오는 이들을 반기는 마을
전남 무안군 청계면 태봉마을에는 유난히 ‘배’ 씨 성을 가진 이들이 많다. 배성수, 배정택, 배현태, 배운기. 태봉마을은 600여 년 전부터 이어져온 달성 배 씨들의 집성촌이다. 그만큼 태봉마을 주민들의 관계는 남다르다. 100여 가구 270여 명 남짓. 이들은 오순도순 수백 년에 걸쳐 산골마을에서 농사일을 하며 소박하게 살아왔다.
평생 골프장이라고는 본적도 가본적도 없는 사람들. 주민들은 골프장 ‘땜시’ 마을 주민들 사이에 불화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단결 투쟁’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데모’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죽는 한이 있어부러도 골프장은 안되지라”며 ‘투쟁’에 나섰다. 농사일을 접어두고, ‘투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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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4년 된 둘레 3.5m, 높이 20m의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서있다 |
서울에서 목포로 이어지는 국도1호선 옆에 위치한 태봉마을, 마을 입구에는 ‘台峰里’(태봉리)라고 새겨진 비석이 가로 서있다. 입구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배씨촌’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 듯 올해 나이가 574살인 ‘느티나무님’이 오는 이들을 반갑게 마중한다. 느티나무 옆으로는 승달산에서 시작되는 실개천(태봉천)이 흐르고, 주변에는 농약 한번 치지 않은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잡숴 보소, 암긋도 안치고 나온 순 자연산이지라”
주민 최인순 씨가 손으로 한번 훔친 뒤 홍시 하나를 건넨다. 서울 촌놈, 망설이다 한 입 베어 물곤 한 개 더 먹을 수 없을까 눈치를 살피자, 시골 아낙네는 “것 보소, 한 개 더 잡숴 보소”라고 또 하나 건넨다.
갈라졌던 민심, 그러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다시 한마음으로
대보름 때면 목욕재계하고, 마을의 풍년과 주민들의 무병을 기원하며 당산나무 앞에 모여 당산제를 지내는 태봉마을. 명절 때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였던 곳. 그러나 지난 명절, 태봉마을 주민들은 신명 대신 한숨으로 보내야만 했다.
“도대체, 골프장이 뭐 길래. 울 농민들을 이렇게 힘들게 한단 말이오. 우리가 골프치는 것도 아니고, 환경은 환경대로 파괴하고, 농사일은 다 망쳐 놓을 그놈으 골프장이 대체 뭐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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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군, 전라남도, 개발업체(건강나라)가 태봉마을에 추진하고 있는 골프장 건설은 평화롭던 시골마을을 일순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골프장 건설이 가져올 환경파괴, 주민 생존권 문제도 문제지만, 주민들은 골프장 건설이 마을공동체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더욱 초조해했다.
“골프장 땜시 그렇게 사이가 좋던 마을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서로 별 의미 없이 던진 한마디에도 다툼이 일어나게 되었지라. 군청 공무원들이랑도 다 형, 아제 하는 사이였는디 골프장 땜시 완전히 원수지간이 되어버렸당께요. 도대체 이게 뭔 지랄인가 모르겄소”
새만금, 부안, 평택. 지역개발을 명분으로 전국 도처에서 진행되는 개발사업들은 어디서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언제나 ‘이윤’을 목적으로 ‘인간적 삶’을 파괴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또한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방치하거나 독려했고, 태봉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들은 개발업체와 이를 방조한 해당 지자체에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러나 태봉마을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다. 골프장 건설로 잠시간 주민들 간에 불화가 생겼었지만, 공동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끈질긴 노력 끝에 모두가 한 목소리로 개발반대를 외치고 있다.
“처음에는 정말로 마을이 쪼개지는 줄 알았지라, 그러나 골프장이 600년을 이어온 우리 마을의 역사를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는 데 대해 이제는 주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라”
"돈두 뭐구 다 필요읍다니께"
‘공동체를 지키겠다’는 태봉마을 주민들의 의지는 분명하지만, 여전히 외부에서는 ‘보상비 더 받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무안군 담당 공무원도 “작년 7월까지만 해도 주민들 사이에 큰 반대가 없었는데, 땅을 판 주민들 사이에 보상문제를 둘러싸고 잡음이 생겼고 결국 골프장 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외부의 시각에 대해 태봉마을 주민들의 입장은 단호했다. 이일남 골프장조성반대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물 좋고, 산 좋고, 당산나무 2개가 있는디 겁나게 좋아요. 600여 년을 여서 살았는디 우리는 돈도 필요 없고, 보상도 필요 없고 원칙 그대로 그냥 여서 하던 대로 농사일 짓고 살게 해달라는 것이제요”라고 말했다.
올해로 60여 년을 태봉마을에서 살아온 배 모 할머니. 이름을 묻자 “이름은 알아 뭣다 쓰게”라며 밝히길 꺼려한다. 성을 묻자 대뜸 “성은 태봉이니 배가제..”라며 환하게 웃는다. 배 할머니는 “우리 동네, 그리고 승달산이 명당이제. 그 명산을 짤라 불면 태봉주민 다 죽는데요. 지리박사(풍수지리학자)가 테레비에 나와 고로코롬 야기했다제”라며 마을 자랑을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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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할머니는 "다른 거 다 필요없고, 골프장만 안들어오면 된다"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
배 할머니 역시 “보상을 많이 해주면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보상도 뭐도 다 필요없당께. 그냥 골프장만 없애면 이렇게 맨날 나와 데모할 필요도 없제. 늙은이들이 이 추운디 뭐 하러 나와 데모하겄소”라고 말했다.
배 할머니는 난생 처음 ‘데모’를 해봤다고 했다. 그는 “그전에 테레비에서 데모하고 그러면, 저것이 뭣이다냐 했는디, 우리가 직접 당해봉께 그것이 아니여. 으찌 이런 좋은 마을에다 골프장을 만든데. 분통터져 몰살겠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제. 다른 거 필요 없어. 골프장 요놈만 안 한다 하면 좋컸어”라며 골프장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가 유일한 대안임을 분명히 했다.
쫓아내려는 자와 쫓겨나지 않으려는 자...
태봉마을 주민들과 직접 만나며, ‘보상 문제 때문에 투쟁하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을 마음 한편으로 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역개발’, ‘경제활성화’, ‘국가안보’ 를 위해 살던 집, 살던 땅, 살던 마을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여론은 항상 그들에게 ‘돈 더 받으려고 투쟁한다’는 식의 색깔을 덧씌우며 경제적 이기주의로 몰아붙이곤 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지난 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전국의 194개 골프장이 거둬들인 매출은 총 1조9천642억원에 달한다. 어림잡아도 골프장 1개당 연간 거둬들인 돈이 평균 100억 원을 넘어선다는 얘기다.
인간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은 진정 누구인가, 쫓아내려 발버둥치는 이들과 쫓겨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이들, 우리 사회는 이들 중 과연 누구의 편에 서있는가를 되새겨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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