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매를 맺은 기륭 투쟁 500일

노동자 연대의 힘으로 2007년을 여는 기륭전자노동자

돼지 해, 그것도 황금돼지의 해. 새해를 맞이하며 희망이라는 말을 자신의 가슴 속에 한번쯤 새겼으리라. 오늘 남다른 황금돼지를 꿈꾸며 새해를 맞이한 이들을 만났다.

지난 1월 12일, 몹시도 추운 날. 손이 꽁꽁 언 날. 1월 5일로 투쟁 500일을 맞이했다는 기륭전자노동자를 만났다. 500일 투쟁 결의대회 현수막을 마주하자 마음마저 꽁꽁 언다.

  투쟁 500일을 맞이한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들

세월이 총알같이 빠르다는 말을 한다. 기륭 300일이 엊그제 이야기 같은데, 500일이라니. 총알같이 빨랐냐고 기륭전자노동자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할까? 뺨을 맞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꽁꽁 언 몸으로 찾아가 김소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을 만나자, 선뜻 희망이라고 말한다. 올해는 좋은 일만 가득할 거라고 말한다.

희망을 말하다

지난해에는 아픔이 많았다. 함께 싸우던 동료들이 지쳐서 하나 둘 농성장을 떠나는 일보다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위암 선고를 받은 동료를 마주한 일일 것이다.

오늘 집회장에 항암치료를 끝낸 동료가 함께 했다. 항암치료로 빠져버린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아직 완치 소견을 받으려면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농성장을 지킨 동료들은 현장에 돌아간 것처럼 기쁘다.

기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는 2월 4일에는 연대투쟁의 성과(?)인 김희진 조합원의 결혼식이 있다. 상대는 비정규직투쟁의 승리를 안아온 순천 현대하이스코의 최현태 조합원이다.

지난해 11월 신한발브의 장용진 조합원과 기륭의 안윤미 조합원의 결혼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의 결실이었다면, 김희진 조합원의 결혼은 비정규직간의 연대의 열매이다.

연대의 성과는 계속된다고 귀띔을 해준다. 오는 2월 4일 김희진 조합원의 결혼식 날, 또 다른 연대투쟁 커플 탄생을 준비하는 작전이 극비리에 준비되고 있다고.

승리의 예감

“새해가 되자말자 아팠던 동료가 낫고, 결혼하는 동료가 생기고, 좋은 일만 터지고 있어요. 낼모레 아이를 출산하는 조합원도 있고요. 이제 500일의 싸움도 승리로 끝나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나요.” 추운 날씨에 한마디 말을 할 때마다 김소연 분회장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기륭전자의 이야기는 2005년 7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구도 노조가 만들어진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물론 그 감격이 가져다 준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혹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기 직전인 2004년 기륭전자의 매출은 약 1천7백억 원에 당기 순이익은 210억 원에 이르렀다. 당시 아세아세멘트 계열사로 코스닥에 상장되어있었다.

  투쟁 500일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터뜨린 노동자

회사의 규모에 비해 내부는 전근대적이다. 3년간 새로 뽑은 여성생산직 노동자의 99%가 불법파견이다. 생산직 250명 가운데 230여 명이 불법파견으로 고용된 사람이다.

불법파견만이 문제가 아니다. 2005년에 들어서는 서너 달에 한 번꼴로 이삼십 명의 노동자를 해고 했다. 해고사유는 잡담을 했거나 말대꾸를 했다는 이유다. 해고통지도 전화나 문자로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통보로 끝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를 만들었다. 조합설립을 알리고 10분 만에 2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했다. 정규직과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들이 함께 조합에 들어왔다.

노조 설립 한 달 뒤 노동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사업주의 계약해지는 계속되었고, 합법적으로 만들어진 노조와 교섭도 하지 않았다. 8월 25일 노조는 현장에서 농성에 들어간다. 장장 55일.

3일이면 끝나리라고 생각했던 농성은 55일이 되었고, 공권력에 의해 끌려 나와야 했다. 분회장은 구속이 되었다. 그 때 세워진 천막은 걷어내고 다시 치기를 거듭하며, 2007년 오늘까지 기륭전자 정문 앞을 지키고 있다.

농성 천막은 걷히지 않았지만

단식도 하고, 닫힌 정문을 힘으로 뚫어보기도 했다. 노동자와 연대하여 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했고, 점거농성도 해보았다.

불법판정을 받은 사용자는 여전히 공장을 돌리고 있고, 불법을 고치자는 노동자는 한겨울 천막에서 정든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기륭전자노동자들은 많은 반성을 했다. 공장으로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반성을. 그리고 이야기한다. 황금돼지 해에는 반드시 정든 일터로 돌아가겠다고.

“연대를 해준 노동자들이 없었으면 벌써 지쳤을 거예요. 500일이 넘어도 더욱 기운이 넘치고 자신감에 차 있는 이유는 힘을 주는 동지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에요.” 이 말을 꼭 써달라고 김소연 분회장은 당부한다.

  추운 날씨에도 노동자의 연대는 이어진다

해는 지고 날은 더욱 차가워진다. 연대의 힘은 아픈 동지를 다시 품에 돌아오게 했고, 평생의 배필을 만나게도 했다. 그 사이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기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륭전자 정문 앞에 세워진 농성천막을 걷어내는 일이고, 거리에서 겨울을 나는 기륭전자노동자들이 공장에 돌아가는 일이다.

황금돼지 해, 기륭전자노동자들이 쓰는 희망이 천만에 이른다는 이 땅 비정규직노동자의 소원일 거다.

연대의 열매, 사랑의 열매로 문을 연 기륭노동자의 2007년, 비정규직의 승리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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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땅의노동자

    여전히 아름다운 투쟁을 하시는 기륭전자 동지여러분 고맙습니다.
    힘들게 투쟁하시는 동지들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시길 한 마음으로 빕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요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