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미FTA 8차협상과 좌파의 비젼

정태인의 아시아형FTA가 대안이 될 수 있나

한미FTA 8차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이혜민 한미FTA기획단장은 전체 19개 분과 중 절반 이상이 타결되었다고 밝혔다. 섬유, 농업, 자동차 분야 등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일부 분과는 19일 이후 수석대표급이나 통상장관급 차원의 고위급 회의에서, 마지막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쟁점은 최고위급 회의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양국간 협상 타결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10일 한미FTA 협상 저지 시위는 완강했다. 비록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를 저지하려는 시위 참가자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경찰의 폭력도 기세를 올렸다. 다시 경찰국가로서의 폭력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인권단체들은 이날 일어난 경찰 폭력에 책임을 물어 사과가 아닌 퇴진을 촉구했고, 13일에는 '민주주의 살인자 노무현정권'을 규탄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파병, 로드맵, 농민 타살, 평택 기지 이전 등 참여정부의 수많은 실정이 계속되었지만 진보운동 진영은 '정권 퇴진'의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한미FTA 저지 싸움을 주도해온 범국본을 들여보더라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태도 차이가 늘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대중운동의 맥락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 마지막 해에 접어들며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한미FTA 추진에 대한 저항과 분노가 협상 자체에 대한 반대를 넘어 '정권 퇴진' 수준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한미FTA 저지 싸움은 노무현정권에 대한 태도 뿐 아니라, 끝 갈 줄 모르는 초국적자본 운동을 저지하는 싸움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8.5차 협상과 이후 양국에서의 비준 과정에 대응하는 투쟁에서는 한미FTA 저지 싸움의 정치적 의미를 분명히 하고, 정치적 전망 마련과 함께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한 해, 그리고 지금까지 범국본 등 한미FTA 저지 실천 주체들은 매 협상 과정마다 반대 여론을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을 벌였고, 한미FTA 저지의 대중적 힘을 행사하기 위해 크고작은 대중동원투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의지와는 달리 현실은 정치적 힘 관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여론 측면에서 한미FTA 저지가 절반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도 못했다. 동원투쟁에서 한미FTA 저지운동은 지난 해 7월 2차협상, 10월 제주에서의 4차협상, 그리고 11월 민중총궐기 등 선 굵은 흐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역시 공권력을, 계급투쟁의 관리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후 대응에 만전을 기하는 것,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대선 국면에서는 더 효과적이고 더 공세적인 한미FTA 저지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미FTA 협상 초기의 상황과 다르다. 지금은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장기적인 응전의 전략 전술 매개 없는 투쟁 선동만으로는 오늘날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자본운동의 맥을 결코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 오늘 일부 언론에 기고한 '한미 FTA 귀결 그리고 대안'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협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를 던졌고, 향후 방향 모색에 있어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중지'를 끌어내고, 대선 국면을 활용하고, '선내부개혁론'을 검토하자는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정태인 전 비서관이 내놓은 대안 부분은 다소 섣부른 감이 없지 않다. EU의 경험을 벤치마킹 하거나 한중일FTA, 그러니까 '아시아형FTA'를 거론하는 것이 그러하다. EU형이나 한중일FTA가 정태인 전 비서관의 말대로 "철저히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며 동시에 역내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내용이 되도록 설계"될 수 있다면 당연히 적극 모색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한미FTA 반대의 기본은 초국적자본 운동을 경계하는 것에 있다. 미국에 반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속성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 자체와의 싸움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정태인 전 비서관이 주장하는 아시아형FTA의 인과 관계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가가 자못 의문스럽다.

더군다나 한국 민중운동의 역량과 동아시아 계급투쟁의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할 때 아직은 FTA에 대한 날 선 대안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오늘날 자본운동의 광풍과 비교할 때, 한국의 반자본 대중운동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좌파적 비젼은 추상에 머물러 있고, 자본운동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좌파의 기획은 빈약한 실정이다. 한미FTA 저지 운동에 헌신해온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있어, 향후 반자본 운동의 실마리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이토록 절절한 이유는, 아직은 대안을 이야기하기에는 마음이 앞서고, 실천을 이야기하기에는 힘이 모자라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태인 전 비서관의 이야기처럼 지역공동체 구상과 민중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내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 그것은 모두가 바라는 바다. 그런만큼 한미FTA 저지 투쟁의 대안은 좌파적 비젼과 사회구성원들의 손에 잡히는 반자본의 그림과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