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를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벽마다 빼곡하게 적혀 져 있던 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추리로, 도두리로 모여 든 예술가들은 시인이 시를 쓰면 화가들이 벽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음악가들은 그것을 노래로 만들었다. 조각가들은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조형물을 세웠으며, 사진가들은 그것을 사진 위에 다시 그림으로 그렸다. 그렇게 대추리는 평화가 살아 숨쉬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나 있었다.
이제 주민들이 이주하고 미군기지가 들어서면 대추리를 사랑하고, 평택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흔적은 커다란 포크레인에 쓰러지고, 군화 발에 밟혀 사라질 것이다. 아니 이미 많이 사라졌다. 평화보다 미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사람들에 의해, 사람의 생명보다 석유와 돈이 더 중요한 사람들에 의해 많이 사라졌다.
평화를 사랑하고, 대추리를 사랑한 예술가들의 모임 ‘들사람들’은 대추리를 가득 채웠던 60여 편의 벽 시를 모아 책을 냈다. 제목은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 이다. 이 책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대추리, 도두리 마을이 나은 참으로 오랜 만에 찾아 온 현장문학 보고서다”라고 책을 소개했다.
"대추리는 생산의 현장이자 비극의 현장"
이 책에는 고은, 백무산, 도종환, 손세실리아, 송경동, 이기형, 정태춘, 공선옥 등의 50여 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대추리, 도두리는 예술인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생산의 현장이자 우리시대의 비극의 공간이었다”라며 “예술적 영감은 시로, 들을 지키는 문무인상으로, 새벽닭과 솟대들로, 그리고 수 많은 깃발들로 만들어 세워졌지만, 예술 창작 활동은 기쁨일 수 없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들사람들’은 “예술인들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 낸 평화예술마을이 모두 파괴되고, 그곳에 미군들의 전쟁기지가 될 것”이라며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평화세력들, 예술인들의 투쟁은 패배로 끝났지만 우리는 모두 평화의 소중함을 보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이유를 깨달아 갔다”라고 밝혔다.
평화를 원하고 존엄을 지키고자 한다면, 당신이 정말 삶의 방식이 평화롭기를 원한다면, 생존하는 방식이 존엄하기를 원한다면 지금 평택에 가보라. 거기, 평생을 흙만 만지고 살아서 몸도 마음도 다 흙 같기만 한 우리의 '오래된' 농부, 우리의 부모들이 말없이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오래 힘들었던 당신을 끌어안아 줄 것이니. 그렇게 몸으로 평화와 존엄 고갱이를 가르쳐 줄 것이니. (공선옥, '평택은 평화와 존엄에 대한 화두이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