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전환사채의 본질은 세습

[삼성 비자금 들여다보기](1) - 부의 세습

북의 권력 세습을 두고 키득키득 웃는 사람들 많았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자식인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자 사람들은 지금 세상이 무슨 봉건왕조냐며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렇게 웃던 사람들이 부의 세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는다는 거다.

부는 세습된다. 부의 세습은 구조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 세습은 거듭될수록 지당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오늘, 권력의 세습은 웃기는 일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부의 세습은 신성불가침한 일이 되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의 본질이 세습에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장남 이재용에게 물려주되, 약간의 편법을 사용했을 뿐이다. 그 덕분에 이재용 씨는 불과 60억 원으로 국내 최대 기업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재용 씨는 1995년 말 삼성 계열사인 에스원 주식 12만1800주(23억 원),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47만주(19억 원)를 매입한 뒤 두 회사가 상장하자 605억 원에 보유 주식을 매각해 시세 차익만 563억 원을 남겼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매입자금 96억 원은 이 돈에서 나왔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16억 원을 증여받은 여동생 세 명은 삼성 계열사들이 포기한 전환사채, 당시 8만5천 원짜리를 7700원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총 120여만주, 에버랜드 전체 지분의 64%를 차지했다. 이재용 씨 지분만 25.1%,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1대 주주를 차지했다. 삼성을 고발한 시민단체들은 세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부도덕한 재벌 후계 승계'라고 비난했다. 60억 원으로 출발한 후 연매출 1백41조 원, 자산 230조 원(2006년 기준)의 삼성그룹을 지배하면서 납부한 증여세는 고작 16억 원 뿐이다.

6일 참여연대와 민변이 낸 고발장에 따르면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행위는 에버랜드전환사채 만이 아니다. 1999년 2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의 발행에 앞서 피고발인(이건희,이학수,김인주)들은 이재용 씨의 재산을 불려주기 위해, 즉 지배권 승계를 위해 김용철 변호사와 발행 계획을 의논했다.

2001년 3월 말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SDS 등 9개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이재용 씨가 갖고 있던 (주)e삼성, (주)시큐아이닷컴 등의 주식을 매입해준 사건도 그렇다. 이재용 씨의 재산상의 손실이 우려되어 피고발인들이 계열사의 주식을 매입했다고 되어 있다. 참여연대는 이밖에 1996년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발행 사건, 1997년 삼성전자 전환사채 발행 사건, 1999년 삼성생명 주식 맞교환 사건 등도 삼성그룹의 지배권 불법 승계사건 사례로 꼽았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건은 2000년 6월 29일 법학교수 43명이 이건희 회장 등 33명에 대해 상법상 특별배임 및 업무상 배임 형태로 고발한 이래 7년째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07년 5월 29일 항소심에서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사장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 원을 선고했고, 삼성은 바로 다음날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런 와중에 김용철 변호사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재판 과정에서 증인과 증언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주장을 받아 민변과 참여연대가 피고발인들을 고발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지난 7년간 검찰과 재판부는 삼성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된다. 그리고 피고발인들에게는 형법 137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위반 죄가 성립된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이후 삼성그룹에 입사한 김용철은 2003년 12월 검찰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기소하기 전후로, 사건을 주도한 피고발인(이건희,이학수,김인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무팀 관재파트에서 마련한 조작된 시나리오에 따라 자신이 팀장으로 있는 법무팀 소속 변호사들을 동원하여 사건의 실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검찰 조사에 대비한 모의연습을 시켰다고 합니다. 삼성그룹 본관 옆 태평로빌딩 26층과 27층에 소재한 보안이 잘 되는 사무실(오피스텔)에서 진행된 이 일은...... 당시 삼성에버랜드의 대표이사 등 임원이었던 허태학, 박노빈은 전환사채 발행 자체를 알지 못했으며,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했다고 알려진 기존 주주 계열사들도 사실은 인수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발행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합니다.

검찰 수사에서 이같은 주장이 모두 사실로 드러날 경우, 우리는 오늘날 부의 세습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그리고 적의에 찬 조직적 공모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를 목도하게 된다.


김용철 변호사가 'PD수첩'에 나와 소회를 피력하고, 민변과 참여연대가 고발장을 접수한 오늘(6일), 삼성은 "최근 샌드위치에 처한 우리 경제의 현실과 환율 하락, 고유가 등으로 어려워진 경영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모든 역량을 기업 경영에 집중해도 모자랄 때에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분쟁에 경영 역량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시간, 같은 땅에 살고 있는 노동자 5천여 명은 삼성동 한국전력 앞에서 '정해진을 살려내라'며 외치다 또 물대포를 맞았다. 도대체 세습할 거라고는 노동력 밖에 없는 무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