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학벌순이 아니잖나요?

수능 시험 거부한 고3 허그루 군 교육부 앞 1인 시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성적이 떨어진 성적표를 부여쥐고 늘어놓았던 변명 아닌 변명 1순위 였던 말이 있었다. 매 1대면 될 것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앙칼지게 대들었다가 매를 곱으로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귀엽게 봐줬어도 됐으렸만 부모님이 왜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꽤나 난처한 질문이었다고 사료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물어온다면 기자 역시 "글쎄...아니긴...할텐데..."라고 얼버무리거나 아예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책임질 수 없는 확답도 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은 또 너무나도 높은 까닭이다.

수능날인 15일, 수리영역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그 시각, 정규과정을 밟았다면 수험생이었을 ㄱ학교 고3인 허그루 군은 시험장이 아닌 교육부 앞에 서 있었다. 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기자들은 엇비슷한 질문을 쏟아냈으며, 이 낯선(?) 학생을 지나가던 몇몇 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기도 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질문을 갑자기 받은 사람들처럼.

중고등학생, 초등학생까지 벗어날 수 없는 입시지옥

  수능을 거부한 허그루 군이 한창 수리영역이 진행되고 있을 그 시각, 교육부가 위치한 정부종합청사 정문과 후문에서 11시 30분부터 1시까지 1인 시위를 진행했다.

허그루 군은 이날 '입시폐지'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1인 시위는 교육부가 있는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기자들 질문이 다 그렇다.

"일반학교 다녀요?" "대안학교 다녀요?"
"원래 대학 안 갈려고 한 것은 아닌가요?"
"원래 이런 활동을 했었어요?"

요즘 대안학교에서 타학교로의 전학률이 높다. 대안학교도 입시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대학에 못 가든 안 가든 심정적으로라도 입시구조, 소위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교생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허그루 군은 "일반학교, 상업계학교, 대안학교 등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학 서열에 따라 갈릴 때 갈리더라도 고3이라면 '수험생'이라는 표식을 꼭 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허그루 군은 "대학을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못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싶은 일로 도달하는 그 과정과 방식은 다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그루 군은 입시체제 안에서의 '수능'을 거부하고 있다. 허그루 군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들은 내신부터 수능, 논술까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입시지옥에서 허덕이고 있다. 대학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구조도 굉장히 불평등 하다. 부모님이 부자인 학생들은 과외를 통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따라가기 어렵다. 지역과 수도권 학생들 간 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편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준)'은 이날 수능폐지, 입시폐지를 주장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입시폐지국본은 "입시경쟁과 대학서열체제 폐해 속에서 신음하는 학생들의 고통을 얘기하고 단 한번도 제대로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정부를 규탄한다"며 "우리사회의 과도한 입시경쟁과 대학서열화가 현재의 교육 문제와 사회적 양극화를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김정명신 입시폐지국본 공동대표는 "대학평준화가 가능한가, 입시폐지가 가능한가 하는 회의적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곧 사회적 양극화이기도한 교육양극화라는 본질을 드러내는 운동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대학을 위한 교육과정, "배우는 것은 실질적이어야 한다"

입시경쟁 자체를 거부해온 허그루 군의 표정은 친구들이 수험장에 들어간 그 시각에도 퍽 차분해보였다. 초조해하는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입시를 거부해온 만큼 학교생활도 달랐을 것 같다. 학교생활에서 중점에 두었던 가치는 무엇이었냐"라는 질문에 허그루 군은 먼저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아마도 불량학생 아니었느냐는 질문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허그루 군은 이어 "친구들은 경쟁상대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학교교과들이 좋았다. 옷을 만들거나 밭을 일구는 일 등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학교 근교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기도 하고 직접 옷을 만들어 입어보는 교과가 있었다. 이런 교과들이 사회에 나가면 쓸모없어져 버리는 과학이나 수학보다 좋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허그루 군은 "교육과정이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말했다. 허그루 군은 "배우는 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시간을 투자한 12년 간의 교육과정에서 배웠던 것이 결국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뭐하러 학교에 다니냐"는 허그루 군의 되물음 또한 대답할 수 없는 난처한(?) 질문이었지만 대입에 유리한 특목고 입시까지 과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허그루 군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허그루 군은 청소년인권 활동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직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아니 또 그 안에서 학벌차별을 확인하게될 지도 모를 일이나 훗날 허그루 군이 이날의 선택을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돌려말하면 시민사회가 이를 위해 해야할 일이 많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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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준화 , 입시폐지 , 허그루 , 수능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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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대학생

    참 용기있는 친구네요.
    지지합니다.

  • 룸메이트

    그루 간만이야

  • 2397

    그루대단해.잘했어!! 너같은사람이 필요해!!

  • 관찰자

    다른 이들에게는 그냥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겠지만, 허그루 본인 인생은 힘들어졌네요. 대학평준화.. 심지어 북한에서도 대학 서열이 있습니다. 본인이 꿈꾸는 세상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허그루 학생 본인의 인생을 위하여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 오로라

    용기있는 실천가에게 박수를 !!

  • 크로이트

    관찰자님!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젊음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비록 실패한다하더라도... 마이클 조던이 그랬다죠? 실패하는게 두려운게 아니라 노력하지 않는게 두렵다고.

  • 한그루

    나도 어릴적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러한 행동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부럽네.

  • 지나가다

    관찰자/ 북한이니까 서열이 있겠지요. 돌+아이가 지배하는 세상이니까....

  • 보다보니

    행복이 성적순은 아니지만, 성적이 좋으면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거여. 지금같은 현실에선...

  • 난 22살

    와... 난 고3때 속상해하고 불평만 했었지 저렇게 행동으로 나타낼 생각은 못했는데... 존경스럽다 ㅠㅠ 정말 우리나라 입시제도 문제가 너무 커요 ㅜ 우리나라는 마치 대학교가 의무교육인듯...등록금이라도 싸면 말을 안해요... 우리집은 언니도 대학생 나도 대학생 거기다 중학생인 동생까지 있는데ㅠㅠ 등록금낼때마다 한숨쉬시는 부모님 얼굴 보기도 죄송스럽고... 참...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