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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야, 어디로 꼭꼭 숨었니?

사이버정치놀이터 첫 수다회, 문화예술계 3인 '정치' 안주삼아 '제대로' 수다

조수빈 기자 2007.12.01 01:45

카메라는 꺼졌는데 인간들이 이제 시작이라는 듯이 말을 풀어낸다. 꼭 비방송용이라고 발언의 강도가 더 센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의아하긴 했지만, 장식용인 줄 알았던 맥주가 거덜나고 어디선가 공수해온 맥주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 그때서야 '할말들이 많았구나'라고 사태를 파악했다. '이 생활도 3년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나 참 눈치도 없지' 헛 살았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차에 이들의 참다운 수다의 자세, 진정한 수다꾼의 면모를 실감했다. 기자라는 핑계로 일종의 대리만족을 안주 삼으며 이들의 수다 면면을 훔쳐보면서. 인터넷이며 뭐며 정치적 의사 표현이 뭣 같은 요즘 같은 시기에 정치를 주제로 이렇게 대놓고 떠들 수 있는 자리도 드물긴 했다.

김윤환) 2,3년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까먹었고 그 때로 돌아가기도 어려워. 근데 공적 지원 받고서 예술의 퀄리티가 더 좋아졌는가! 그건 또 아닌거 같거덩. 지금 공공부문이 여성가족부 등으로 민영화되는거랑 똑같애. 일종의 서비스업인거지. 정부 지원 받으면서 지역 사업 위탁하면서 진짜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은 꺽이고 있는 거 같다는 말이지. 차라리 '예술인을 위한 복지', 빈부 해소를 위한 보조적 지원을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까지해.

이원재) 이거 완전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 보다 공공영역으로 보호받다보면 퀄리티가 떨어지는..진짜 예술가들이 배고파야 한다는 말 정말 싫은데 그런 얘기 나온다니깐. 음악만 봐도 그래. 요즘은 박진영이 키운 애들이 더 잘해. 디테일한 전문성과 거시적인 싸움이 동시에 가능해야 할 것 같애.

백정숙) 사실 참여정부 5년 동안 자기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는데, 공적자금 부분은 문화정착의 최대 성과 아니겠어 그러나 예술의 퀄리티는 떨어졌다는 말도 있지.

이원재) 그러면서 선을 넘는 사람들이 많았지. 화해할 수 없는 정치적 변절. 제도적 패러다임에 대해 아무런 긴장감이 없이 그냥 있는 것은 정말 큰 문제야. 전선은 이동하는데 같이 이동도 못하면서 전선 안에 갇힌 것 같은. 민주노총 같이 힘이 있는 그룹은 전선을 이동시키고. 우쪽으로. 힘없는 예술문화 개인은 전선 안에 갇히는 모양이지.

이명박은 컴플렉스가 없는 인간이야. 생각대로 떠들잖아. 재수는 물론 없어. 그래도 얘기는 하는거야.

백정숙) 무서운 것이 없는거지.

이원재) 증명할라고를 안해. 청계천이 문제라고 해도 그냥 밀어붙이는 거지. 증명도 안하고. 그런 면에서 손학규, 오세훈 같은 애들은 이명박에 비하면 하수 중에 하수 아니야? 지금 서울시청에 스케이트 장 만들어 놓는 것봐. 그 전에 이명박 때는 광장의 의미가 퇴색되긴 했어도 잔디광장은 광장대로 의미 살리는 취지에서 내버려두고 옆에 비켜서 스케이트장 만들었잖아. 근데 오세훈은 광장이고 뭐고 잔디 광장 안에 스케이트장 만드는 것봐.

김윤환) 그래서 먹히나봐. 이명박이. 아마 쉽지 않을거야...

'사이버정치놀이터' 수다회 그 첫 회 풍경이 이렇다. 윤성호 감독이 뒷일정 때문에 9시 40분 경 자리를 뜬 이후 공식적인(?)수다회가 마무리되고 이후 계속된 비공식(?) 수다에서 앞선 이야기들이 나왔으니 여기까지는 맛뵈기나 다름 없다. 이들의 수다는 지금부터다. 수다회는 총 3회에 걸쳐 진행된다. 두번째에는 청소년들이, 세번째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수다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수다회 녹취록이 너무 길어 지면에 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 대신 사이버정치놀이터 '미끄럼틀' 홈페이지(www.actionp.net)에서 녹취록을 읽으실 수 있다는 점을 공지한다.

"이번 대선 제대로 관전하고 있다"

대선을 20여 일 앞둔 2007년 11월 29일 남들은 퇴근하는 시간에 공덕동으로 새로 둥지를 튼 문화연대 사무실에는 수다가 한창이었다. 이날 수다자리에는 수다촉진자 이원재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과 이번 대선 예비후보였던 김윤환 미술가, 백정숙 만화평론가, 윤성호 영화감독이 참석했다.


수다 주제는 정치. 수다 주제로 썩 적합해 보이지 않았건만 다들 참석하지 않았으면 섭섭했을 정도로 수다들을 풀어냈다.

문화예술계는 지난 5년 동안 참여정부의 최대 수혜자였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문화예술계의 이러한 포지션에서 기인한 것인지 이번 대선에서의 운신의 폭이 한결 좁아보인다. 이날의 수다꾼들은 이번 대선만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이번 만큼 재미없는 선거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의 독주 또한 이 후보의 경제패러다임이 맞아떨어진 것 때문만도 아니요, '무능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만이 담긴 것만도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다. 이런 조건에다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운동사회의 무기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이 후보의 독주가) 가능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날의 수다꾼들은 때때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부정하기 어려운 '가정'으로 전제하면서도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고,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오히려 운동사회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일종의 기회일 수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대선국면을 지나고 멀지 않은 시점에 진보진영 내에 핵분열이 일어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말이다.

우리 정치야 어딨니?

"기사를 보니 포털도 장사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대선 기사 조회수가 안나온데요. 시민사회와 운동단체들의 패배주의가 팽배한 것 같다고 느껴져요. 우선 전제가 뭐냐면 우린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것이 깔려요. 윤성호 감독의 말을 인상 깊게 들었는데, 대통령 당락을 떠나서 우리 정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미끄럼틀 기획의 컨셉이예요"

수다가 무르익어 갈 때 쯤 이원재 사무처장이 '우리 정치'가 없다는 말을 던졌다. 이미 참석자들 사이에서 "대선 관전 중"이라는 말들이 나온 직후 였다. 하긴 이원재 사무처장의 질문이 '대선 관전평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대선에서 운동사회와 시민사회가 무기력했다는 것을 다소간 인정하고 시작한 수다회였을 것도 같다.

어찌되었던 참여정부 동안 문화예술인을 비롯해 시민사회, 운동사회의 대응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혹은 진행되기 어려운 구조가 있었거나. 백정숙 평론가는 "지난 5년을 자기 반성의 시기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  윤성호 영화감독
윤성호 감독은 "투표거부"를 당당히 선언했다. 윤성호 감독은 체념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심형래 감독의 영화를 멀티플렉스에서 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의사표현이라고 보여져요. 못 만들어진 영화라도 영화를 봐야하는 의무감을 가지기보다 그냥 비워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윤성호 감독은 또한 누가 되도 절망적일 것 같지 않다는 말을 했는데, 각 정당으로 쪼개져 있기는 하지만 현 선거구도에서 차별성 있는 후보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명박 독주..분명하다"

선거판에도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독점구조가 형성되었다. 유례 없는 선거구도지만 보는 사람은 이것처럼 재미 없는 판이 없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중간은 건너뛰고" 이명박의 독주와 민노당의 지지도 하락에 대해 참석자들의 의견을 구했다.

대체로 참석자들은 이명박 독주를 인정하면서 민주노동당의 낡은 정치패러다임에 대해 지적했다. 또한 일부 참석자들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내부의 이해관계로 따른 정략적 기득권 싸움"에 대한 염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윤환 미술가는 "이명박 독주는 국민의 정서 자체가 돈의 포로가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중에서 이명박이 돈을 제일 잘 만질 것 같다는, 또 제일로 잘 만지기도 하고, 웬만한 비리관계 정도는 넘어갈 수 있다는 국민적 정서가 있는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  지난 4월부터 11월 26일까지 예비후보로 활동했던 김윤환 미술가
민노당에 대해서는 "저도 별로 지지하고 싶지 않은데, 그 이유를 생각하면 민노당의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번의 선거에서 과거의 엔엘과 같이 연방제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면서 자기 정체성과 안 맞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노동자라도 민노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 같아요. 권영길씨가 됐는데, 민노당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는 후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집단적인 이해관계에 얽혀서 돌아갔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백정숙 평론가는 "예전에는 민노당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닌 것 같은게 나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는거죠. 비정규직 문제도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정치적인 부분을 방기하고 안에서의 싸움으로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윤성호 감독은 "이명박 독주는 분명한 거 같아요. 시장경제에 대한 경로를 제대로 따질 수 있어도, 처음부터 따져봤을 때 논리로 다가가더라도 이명박은 사실 아니라고 보거든요. 왕을 누구 뽑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 지금의 황당한 정치구조를 깨는 행위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문화예술가들 사회적 구원자였는데, 이제는 구원의 대상?

이원재 사무처장은 이념을 떠나 유권자들이 나름대로는 합리적이고 열정적으로 이명박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적 코드가 한 켠 자리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매년 선거 시기 마다 문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컸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명 '미는 말'이라며 "예전에는 문화예술가들이 사회적 구원자였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완전 바닥을 친 것 같아요. 이젠 구원의 대상이 된 것 같아요"라고 지적했다.

김윤환 미술가는 "미술관계 단체가 최근 5개까지 늘었는데도 대선 시기 나오는 얘기가 '우리 좀 도와주세요' 였거든요"라고 말했다. 정책제안도 안된다는 얘기다.

▲  백정숙 만화평론가
만화 쪽도 마찬가지. 백정숙 평론가는 "이번 선거의 키워드가 경제인데 먹고 사는 것에 모든 것을 맞춰버렸어요. 문화라는 코드는 문화산업으로 이야기가 되지, 문화라는 것에 관련된 문화적인 풍요로움 같은 것은 일찌감치 거세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라며 이것이 비단 미술계, 만화계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누가 됐던 기회일수도.."

문화예술계는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원재 사무처장의 물음이었다.

수다의 막바지였건만 좀처럼 해답들이 제시되지 않았다. 김윤환 미술가는 "경제일변도, 국가팽창주의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발언력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미술의 정치적 노력은 오히려 90년대보다도 위축돼 있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죠. 미술 5개 단체가 먹고 살게 해 달라는 아우성만 남아 있는겁니다. 미술동네의 활동을 역할을 해야 하는 데 경직되어 있는 느낌이 선거판을 두고 보니깐 뭐하고 사는지 모를 정도인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다.

비공식(?) 수다에서 김윤환 미술가는 "예술의 위기"에 대해 살짝 언급했었다. 물론 "예술의 위기"는 다면적인 원인을 내포하고 있지만, 이들은 "예술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비판마저 위축되었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아가고 있었다.

백정숙 평론가는 "내가 정치에 이렇게 무관심해도 되는 것인가. 이 이외에 참여정부처럼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때가 있었나 싶어요. 사회 속에서 아주 구체적인 행위를 해야 하는, 한 주체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를 다시 점검하게 만들었죠. 누가 됐든 간에 향후 나의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만들어가야 할 구체적 과제들이 우리 앞에 있다고 봐요"라고 말했다.

김윤환 미술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치도 세계화해야 하지 않나. 정치수입을 해야 하는데, 정치가 유일하게 개방하지 않되는 것 같아요. 이번 선거가 내 자신을 자유롭게 할 것 같아요. 우리 민족, 가족, 한반도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을 계기로 자유로워졌던 것 같아요. 국민들의 상당수도 기존의 룰, 사회시스템에서 일정의 거리두기가 가능한 시점이 이번 대선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윤성호 감독은 "우리의 문법을 다른 정치집단이 사용한다면 그 문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봐요. 우리의 문법의 서사구조가 다른 정치집단이 썼을 때 또 그게 가능하다면 다른 문법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이번 대선 이후 문화예술계 그리고 시민사회, 운동사회에 만만찮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셈이다. 과제야 없는 것 보다는 희망적인데, 위기는 곧 기회라고 문화예술계에도 이 공식이 성립할지 관심있게 두고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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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럼틀 / 수다회 / 우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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