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한 집, 당신의 꿈을 이명박에게 맡기지 마라

[특별기획 : 이명박정부와 진보](5) - -개발.부동산정책과 주거권

인수위원회가 부동산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지분형 분양제도, 기존 집값의 1/2까지 낮은 가격으로 내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분형 분양제도는 투기자본을 주택 건설에 끌어들이기 위한 건설 경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류 활동가는 이 글에서 주거권과 주거권 운동의 주체적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지분형 분양제도의 문제점을 짚는다.
미류 활동가는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하기 위한 시도는 꾸준히 추진되어, 부동산과 금융을 결합시켜 부동산을 유동성 높은 ‘금융상품’으로 만들어왔다는 데 주목하고, 인수위가 밝힌 지분형 분양제도 추진이 투기성 성격을 확대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이명박 당선인의 단호함에 정작 난감한 것은 주거권운동일 지도 모른다"며 주거권 운동이 봉착하고 있는 어려움을 환기한다. 개발정책에 끌려가면서도 내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이중성을 묘사하며 이윽고 "내집 마련의 꿈은 나와 당신과 우리의 꿈이 진정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서부터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며 글을 매듭한다.
인수위의 지분형 분양제도 추진에 대해 미류 활동가는 "25%만 부담하고도 소유권을 주는 지분형 주택을 새로 짓겠다는데, 그 대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부담하고 있는 만큼 지분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해보면 어떤가"라며 일갈했다.
- [편집자 주]


여기 10월까지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더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지는 않지만 쉽지도 않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대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 감정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별 일 아니야, 계속 살 수 있을 거야. 지금껏 잘못 한 일 하나 없이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거야? 내가 좀 더 잘하면 계속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쩔 수 없어. 내 친구들, 이웃들을 이제 더는 못 보게 되겠군. 내 인생은 늘 이랬어. 그래, 이건 또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떠나야지.

이 사람은 10월이 끝나가는 어느 쓸쓸한 가을날, 트럭 한 대에 바리바리 집안 살림들을 싣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간다. 전체 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렇게 2년마다 이사를 다닌다. 한 번쯤은 전세금이나 월세를 올려 재계약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집값이 오르는 만큼 소득이 늘어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결국 2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반복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 모습이다. 감히 죽음에 빗대기는 머쓱하지만 삶의 단절을 2년마다 경험하는 우리는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다섯 단계의 감정을 차근차근 느끼는 것도 사치일 지 모른다. 그런 감정 쯤 하루에 몰아쳐서 정리하는 능력은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존본능이다. 게다가 그 반복되는 경험들은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며 마치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여겨져 더 이상 ‘감흥’이 없어졌다. 진정한 ‘감흥’은 오직 한 번, 내 집을 사서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을 올릴 때에만 허락된다. 이제 삶을 지탱하고 지속시켜줄 단 하나의 방법인 주택구매를 위해 각종 부동산정책들을 먼 발치에서나마 흘겨보는 역할만이 우리에게 허락된다.

그러고 보면 이명박 당선인은 참 난감하기도 할 것이다. 나름 몰표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은 됐는데 그 표는 오직 하나의 의미, 반 노무현 만을 담고 있고 반 노무현 표에는 집값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아 화가 난 불만 표와 집값이 도저히 잡히지 않아 애가 탄 화풀이 표가 어지럽게 섞여 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이명박이 국민에 대한, 적어도 자신에게 던져진 표에 대한 책임이라도 지려는 생각이 있다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인 게다. 한마디로 집값은 이명박의 아킬레스의 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인수위의 부동산정책은 난감하겠다는 걱정이 민망할 정도로 단호하다.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고 용적률을 상향하겠다, 부동산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양도세를 완화하겠다는 등의 말이 흘러나왔고 세제완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폭넓게 퍼져나가자 세제보다는 유동성 관리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금리인상 가능성이나 대출규제를 거론하는 한편, 17일에는 택지개발을 민간에 허용하고 지분형 분양주택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조속 추진과제라고 발표했다. 이명박의 당선가능성이 높던 시기부터 긴장이 감돌던 부동산시장은 시행 여부가 불투명한 계획 발표만으로도 들썩거리기 시작했고 양도세 완화 주장이 슬그머니 유보되었지만 이미 작전을 고심하는 ‘선수’들은 부동산시장에서 몸을 풀고 있다.

이 모든 정책들은, 공급과 거래를 늘려 집값도 잡고 경제도 살리겠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일반 경제 상식과 지방 아파트 대량 미분양사태가 인수위 정책의 ‘빽’이다. 공급확대 기조야 노무현 정권도 놓지 않았던 신조이고 덧붙여 거래도 확실히 늘리겠다는 것이 인수위의 입장인데 이것은 집값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집값을 올리는 정책을 발표하면서도 노무현과는 다르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인수위의 ‘능력’인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명박 당선인이라면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것은 반 노무현 표를 확실히 챙겨간 이명박의 ‘능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부동산 정책이 정책 하나하나로 효과를 점치기 어려운 때문이기도 하다.

역대 정권들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주택정책의 기조는 공급 확대다. 그야말로 시장만능론자들이 “부르다가 내가 죽을” 논리다. 실제로 노태우 정권 시절 엄청난 주택공급과 함께 집값이 다소 안정됐던 적이 있다. 그러나 주거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이 시기에는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이 확대 도입되고 영구임대주택이 건설되었다. 80년대의 호황과 87년 민주화 대투쟁의 성과가 ‘집값’에 정치적 압력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이후 집값은 결코 다시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외환위기를 거치며 경기부양의 명목으로 분양가자율화를 비롯한 각종 거래규제를 완화하고 사실상 토지공개념을 폐기하면서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거래규제만으로 집값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분양가 통제를 시작한 박정희 정권에서 집값은 각종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로 꾸준히 상승했다. 공급량이나 거래규제 자체가 아니라 공급과 거래에 따른 기대수익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부동산 시장은 반응한다. 부동산 수요는 일반 경제 상식과 달리 가격 상승 기대감이 있을 때 더욱 팽창한다. 투기는 가격 폭등을 부르고 가격폭등은 다시 투기를 부른다.

인수위는 양도소득세(주택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에 부과되는 세금)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집을 시장에 별로 내어놓지 않는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거래가 줄어 집값이 올랐던 것이 아니라 집값이 오르지 않아 거래가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기과열지구 해제 등의 정책까지 언급하니 ‘선수’들이 준비체조를 안 할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의 모든 행위자들은 최대이익이 실현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면 때를 기다린다. 그 가능성을 담대하게 보여주는 이명박이 당선되는 마당에 누가 미리 손해보면서 집을 팔겠는가. 집값이 다시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질 때는 말려도 매물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올 것이다.

한편, 인수위는 세제 완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부동산 투기 규제는 유동성 관리를 주축으로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주택담보대출 기준이나 금리정책 등을 통해 부동산 시장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점점 부동산과 금융의 결합이 끈적해지는 추세에서 세제보다 유동성 관리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향이 거꾸로다. 대출규제를 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인 부동산 금융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차마 투기를 대놓고 옹호하지는 못하는 인수위는 지분형 분양주택제도라는 ‘투자’ 상품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주택이 필요한 사람은 26%의 자산과 25%의 대출을 이용해 집을 ‘소유’하게 되고 49% 이하의 자금은 투자자에게서 끌어온다. 실수요자는 점유, 임차, 매각 등에 대한 권리를 갖고 투자자는 지분에 대한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부터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하기 위한 시도는 추진되어왔다. 주택저당증권, 부동산투자회사,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부동산과 금융을 결합시켜 부동산을 유동성 높은 ‘금융상품’으로 만들었다. 지분형 분양주택제도가 언제 도입될 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투자유치를 위한 정책들이 다른 이름으로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전통적인 부동산 수익은 소유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주택공급이 확대되면 집있는 사람들의 주택 수가 늘어났다.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사고팔며 앉아서 시세차익을 얻게 되었고 ‘배아픈’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너무 일찍 개발 소문을 듣고 너무 노골적으로 집과 땅을 사는 사람들을 투기꾼이라고 욕했다. 그런데 이제 굳이 이런 촌스러운 방식으로 욕까지 먹어가며 수익을 노릴 필요가 없어진다. 투기는 어느새 투자로 이름을 바꾸고, 소유를 하지 않아도 수익을 얻게 되니 세금폭탄 정도는 가뿐히 피할 수 있다. 부동산이 눈 먼 이윤들을 찾아 헤매는 손길로 가득찬 금융시장에서 유동화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살만한 집을 찾아 거리를 유랑할 수밖에 없다.

공급과 거래를 늘리기 위한 각종 규제완화와 투자유치 정책들이 이명박 당선인을 포함한 역대정권들이 부르짖은 ‘내집 마련’의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 ‘비법’은 바로 각종 개발사업이다. 인수위는 기반시설부담금제도 폐지, 층고제한 완화, 용적률 상향조정 등 재건축, 재개발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발표에 이어 택지개발 민간허용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이미 벌여놓은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행정복합도시, 연안권 개발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의 운하개발에 ‘5대광역+2개특별권’ 개발까지 전국의 토지가 갈아엎어질 태세를 갖추었다. 토지와 도시개발이 새로운 이윤 창출의 수단이 되고 있다. 거주민들의 주거권을 박탈하고 생태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착취를 통해 이윤을 낳고 미래의 기대수익을 반영해 집값이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자, 다시 10월까지밖에 살지 못하는, 2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반복해 살고 있는 그 사람에게로 돌아와 보자. 모든 개발사업들의 전면에는 이런 사람들이 끌려나온다. 그러나 내집 마련 하시라고 줄곧 외쳐온 역대정권들의 정책 결과는 부동산 양극화와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 박탈로 귀결되어왔다. 집값이 하락세를 보였던 노태우 정권 시기에도 전세값은 올랐으며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지금까지도 전세값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인수위가 발표한 정책들은 전국을 개발하고 돈있는 사람들의 투자를 이끌어 집을 많이 지어내겠다는 정책들이다. 인간다운 삶이 개개인의 소득 범위 안에서 철저하게 제한당한 채 좌판에 늘어놓은 집-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패러다임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서는 살만한 집이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살만한 집에 대한 권리를 멀어지게 할 부동산정책은 철회되어야 하지만 부동산 정책만으로 우리에게 살만한 집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이명박 당선인의 단호함에 정작 난감한 것은 주거권운동일 지도 모른다.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팔려나가는 ‘내집 마련’의 꿈은 알맹이를 빼앗기고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그 껍데기를 붙들고 있다. 열심히 임금투쟁해서 임금 인상되면 그만큼 청약을 더 붓고, 마침 내가 집을 산 동네가 개발되면 신나고 옆 동네가 개발되면 속상한 것이 우리 노동자 민중의 모습이다. 집을 사보려고 꾸준히 저축을 하고 조금씩 전세금을 늘리며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꿈은 이중적이다. 자신이 집을 살 ‘그날’까지는 집값이 좀 잡히길, 자신이 집을 산 ‘그날’ 이후로는 웬만하면 팍팍 올라주는 게 고맙다. 지금 주거비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조금 고생하는 것쯤 어차피 누구나 겪는 문제니 조금 참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집값이 내리기를 바라는 절반의 사람과 집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절반의 사람은 이렇게 경계없이 개발정책에 끌려가고 있다.

우리의 집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25%만 부담하고도 소유권을 주는 지분형 주택을 새로 짓겠다는데, 그 대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부담하고 있는 만큼 지분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해보면 어떤가. 전세를 살고 있다면 50%를 이미 부담하고 있는 셈인데 그만큼의 점유를 보장받지도 못하고 오르는 집값은 고스란히 주거비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아무런 요구도 나오지 않는가. 왜, 이익이 쏟아져 나오는 개발현장은 오늘도 조용하고 개발이익이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동네 주민 다툼만 시끄러운가. 부동산정책 한 귀퉁이를 들여다보고만 있는 것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풀 수 없다. 정권이 쏟아내는 개발정책, 부동산정책에 일희일비할 밑천도 없는 우리다. 내집 마련의 꿈은 나와 당신과 우리의 꿈이 진정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서부터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꿈이 알맹이 없는 환상에 의해 더 이상 왜곡되기 전에.
덧붙이는 말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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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 주거권 , 개발 , 부동산 , 시세차익 , 토지공개념 , 이명박 , 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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