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유럽연합)이 농업, 금융, 공공서비스 등 전통적으로 강한 산업들을 앞세워 한EU FTA 협상의 기세를 몰고 있다. 특히 EU는 한미FTA를 기준점으로 그 이상의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한미FTA 협상을 반대했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한EU FTA가 몰고올 파급력에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한미FTA 협상 보다도 분석된 내용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서준섭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이 한EU FTA의 협상 배경부터 분과 및 각 협상의 쟁점들을 정리하는 총론을 발표했고, 이상호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원이 자동차 분야와 관련한 내용을 발표했다.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백일 울산과학대 교수는 자료집을 통해 상품과 제조업 분야와 관련해 집중 분석했다.
토론 과정에서는 지난 한미FTA 협상 저지를 위해 진행했던 금속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평가, 한EU FTA 협상 과정에서 물류비, 관세철폐 효과를 계산해 공장 해외 투자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자는 주장, 총연맹 차원에서 산업별이 아닌 총체적인 'FTA'에 대한 시각과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금속노조는 외부 연구자들과 함께 한EU FTA 연구모임을 구성, 2007년 9월부터 연구를 진행해 왔고, 이날 토론회는 그간 연구의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공개 토론 자리였다. 이날 토론된 내용은 연구 자료들과 총합돼 2월 중 자료집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 금속노조는 29일 '한EU FTA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
서준섭 정책팀장은 "일부 (한EU FTA의) 수혜 업종인 섬유, 의류, 가죽의 경우 전반적인 쇠퇴산업이고, 자동차의 경우도 동유럽을 중심으로 현지 공장이 설립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생산과 연계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지 의문스럽다"고 설명했다. EU가 세계 최대의 농산물 생산국이자 수출국이기 때문에 농업과 축산업에 있어서의 피해는 불가피하고, 고용도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효과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왜 한미FTA에 이어 '정부가 왜 서둘러 한EU FTA를 추진하는가' 이다.
서준섭 정책팀장은 "다국적 기업, 한국의 재벌 대기업 과잉이 대표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 정책을 변화시키고 정부를 추동하며 FTA를 추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의 이익이 FTA라는 통상협상을 통해 관철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WTO의 경우도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인 '카킬' 협상 이라고 불릴 만큼 통상, 무역 협상은 기업들의 이윤 실현을 위해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FTA를 체결해 형성된 기업의 이익이 국민에게 확산될 수 있는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이날 토론 참가자들은 '기업'이라는 특성에 의해 국가 전체의 경제적 이익으로 확대되지 못한다는 것에 공감을 모았다. 국민 경제를 생각하기 보다는 기업의 이윤 추구에만 경영이 한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고용 없는 성장', 수출 기록 갱신의 과정에도 국내 경제에 온기가 확산되지 못했던 지난 과정을 예로 들며 설득력을 더했다.
같은 맥락에서 토론자로 참석한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은 FTA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 이종탁 부소장은 "관세를 철폐하고, 시장이 개방된다면 무역이 확대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문제는 이익이 누구에게 가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산업의 이익이 종사 노동자, 전체 민중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더 주목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자동차 산업 구조는 종사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현실을 강요하고 있다. 정규직은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안정적인 노동조건 때문에 진영내에서 고립된다.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성장과 동시에 노동자들을 줄이는 '노동 배제적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외주화 생산 방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생산이 증가해도 완성차의 고용보다는 외주 부분에서 고용량이 증가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사내하청, 외주업체들의 종사 노동자들은 완성차 노동자들의 50%도 안되는 임금 복지 수준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한미, 한EU FTA를 통해 열리는 노동시장, 고용 증가 또한 바로 이런 외주 업체들이라는 것이다. 이종태 부소장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용을 늘려주는 것, 외주 업체들이 이런식의 고용을 늘리는 것이 산업적 측면에서 의미있는 고용창출인가"를 반문했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이기도 한 부품산업은 현재도 연구투자가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FTA를 통해 기술 표준을 미국식이냐 유럽 식이냐 정하게 되면 지재권, 산업재산권에 의해 국내 부품소재산업들은 외국 기술이 이식되거나 바닦을 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종탁 부소장은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인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성해 가는 상황에서 한미, 한EU FTA 가 (국내) 자동차 산업을 어떻게 재편하고 구조를 바꿔 나갈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며 "관세 철폐, 무역수지 개선 보다는 원산지 규정, 기술규정및 표준, 서비스, 지재권, 자본이동에 관한 문제를 더 관심있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EU FTA를 왜 반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한미FTA에 비해 파급력이나 부정적이 영향이 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협상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고 그 만큼 한EU FTA와 관련한 진영의 준비와 대응이 부족했던 이유도 제기됐다.
서준섭 정책팀장은 "한국 사회는 이미 한미FTA의 폭탄을 맞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충격적인 한EU FTA의 충격이 체감되지 않는 상황일 뿐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한미FTA 보다 더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EU 측이 요구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의 강화, 표준 및 환경 기준의 혼란, 물 산업 진출 등 공공 서비스 영역에 대한 요구, 식료품에 대한 기준 완화 등을 들었다.
그는 특히 "한미 FTA와 자본시장통합법 실시, 금융허브 정책의 연장,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폐지 청책 등 한EU FTA가 EU 금융기관들의 진출을 확대해 주고, 활동을 자유롭게 해 주는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 한국 경제의 금융화를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라고 강조하며, "정치적인 측면에서 한미FTA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FTA를 발판으로 한EU FTA가 추진된다는 것은 정책적으로 무책임한 협상임을 반증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