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계급적인 이명박의 교육 정책

[특별기획 : 이명박정부와 진보](9) - 고교서열화와 본고사가 가져올 악몽

당선되기도 전에 폐기된 교육정책

악몽이었다. 지난 대선 결과는, 그리고 대선 이후 하루하루 신문을 보는 일은. 한 동안 신문을 들춰 보기가 무서웠다. 당선되자마자 하루에도 몇 건씩 쏟아졌던 교육 정책들. 교육부 해체,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 특목고 추가 설립, 조기 영어교육 전면화, 본고사 부활, 수능등급제 폐지, 전과목 영어 몰입 교육, 영어능력평가 도입, 특목고 운영 자율화…….

이 중 당선되기도 전에 스스로 폐기한 정책이 둘이나 된다. 애초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해 ‘인재과학부’를 신설하려던 계획을 스스로 철회해 ‘교육과학부’로 바꾸고, 일반 과목도 영어로 수업하도록 하려는 이른바 ‘영어몰입교육’도 일부 철회했다.

이명박 교육정책의 운명을 미리 맛보고 있는 셈인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몰아붙이는 수많은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들, 저들 스스로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스스로 철회할 수밖에 없는 2MB짜리 정책들……. 그 속에서 초중고학생들은 가혹한 입시경쟁에 시달리고, 대학생들은 살인적인 등록금에 분노하고, 학부모들은 날로 치솟는 사교육부담에 허리가 휘어지는 나날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인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 15%를 위한 아주 특별한 학교

고교평준화는 이미 무너져 있다.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에 사는 30%의 학생들은 소위 일류고등학교에 가기 위한 입시에 시달리고, 소위 공부 깨나 한다는 학생들은 약 2.5%의 학생들만 진학할 수 있는 자사고, 특목고에 가기 위한 입시에 시달린다. 특목고 경쟁률을 4대 1로만 잡아도 약 40%의 학생들이 고교 입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이토록 일류고, 특목고 입시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류대 진학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2100여 개의 고등학교 가운데 자율형 사립고 100개, 기숙형 공립학교 150개, 전문계 특성화고 50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공립, 사립, 전문계를 아울러 15%의 학생들을 위한 고등학교 300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어떤 결과가 생길까? 당연히 15% 안에 들기 위해 학교들은 피 말리는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15%에 들어간 학교라 해도 안심할 수 없다. 기존 2.5%의 자사고 및 특목고에 더하여 15% 안의 학교 사이에도 치열한 서열 경쟁이 시작된다. 그 서열의 기준은 단연 ‘명문대 진학률’일 수밖에 없다. 85%에 들어가는 학교는 속된 말로 ‘×통 학교’로 취급되어 슬럼화 되기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학교선택제가 본격화된 일본이나 영국에서 이미 현실화된 것이다.

벌써 사교육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명박 당선인이 취임하기도 전에 각 학원은 ‘특목고 자사고 반’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고, 주식 시장의 전반적인 약세에도 불구하고 메가스터디, 크레듀 등 사교육 업체의 주가는 급증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송경원, <쩐의 나라, 사교육에 투자하라>, 레디앙 2008년 1월 23일자 참고) 중학생들, 아니 초등학생들도 이 겨울방학에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대학입시자율화 - 이런 나라는 없다

한국의 대학입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이례적이다. 첫째는 전국의 모든 대학이 한 줄로 줄 서 있다는 점(대학서열화), 둘째는 각각의 대학이 모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학생을 독자적으로 선발하고 있다는 점(대입자율화)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이 현재의 가혹한 입시경쟁체제를 낳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미국의 아이비리그나 영국의 사립대학들, 일본의 몇몇 명문대 등을 제외하고는 대학마다 서열이 매겨져 있는 상태에서 대학마다 학생을 독자적으로 선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유럽의 경우에는 대부분 학교 사이에 서열이 없으며 대학입학 혹은 고교졸업 자격고사(프랑스의 바깔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스, 오스트리아의 마투스 등)에 통과한 학생이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이후 자유롭게 대학 및 학과의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모든 대학이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으며, 각각의 대학이 나름대로의 전형 방식을 지니고 있으며 이 또한 일반전형, 특별전형, 수시모집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즉, 내신과 수능, 논술 등을 몇 퍼센트 반영할지, 지방 출신과 특목고 출신을 각각 몇 퍼센트 할당할지 등은 완전히 자율화되어 있는 것이다.

‘내신-수능-논술’의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던 2008년 입시안은 사실상 ‘내신 중심의 입시안’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재와 같이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각 대학이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작동이 불가능한 안이었다. 대학은 오히려 이른바 삼불정책 폐지를 주장하며 노골적인 본고사 부활을 책동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이명박 당선인의 ‘대학입시자율화’ 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학생부 및 수능 반영 자율화 - 대입과목 축소 - 완전 자율화’로 이어지는 3단계 자율화 방안은 쉽게 말해 ‘대학이 알아서 마음에 드는 학생을 뽑아라’라는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내신을 선호할 리 없다. 특목고 학생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현재의 수능등급제를 선호할 리 없다. 1등급(4%) 내의 학생들을 변별하여 나눠 가지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은 수능 원점수와 본고사를 적절히 혼합하는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 상위권 대학이라면 본고사를, 중하위권 대학이라면 수능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영어교육 광풍을 타고 새롭게 신설될 영어능력평가시험이나 TOEIC, TOEFL 점수 등이 결합될 것이다.

핀란드와 대한민국 - 비슷한 결과, 너무 다른 실상

얼마 전 MBC 다큐멘터리 “열다섯 살, 꿈의 교실 - 꼴지라도 괜찮아”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북유럽의 소국 핀란드는 실제로 OECD 가입 국가 가운데 학업성취도 평가 1위 (읽기/쓰기 2위, 수학 1위, 과학 1위)의 나라이다. 뒤이어 2위를 차지한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읽기/쓰기 1위, 수학 2위, 과학 7위)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두 나라의 현실은 너무나 딴 판이다.

꼴지라도 행복한 나라 핀란드. 핀란드의 성적표에는 애당초 ‘등수’가 없다. 단지 10점 만점에 자신이 도달한 학업수준이 기재되어 있을 뿐. 따라서 다른 아이와의 경쟁도 없다. 오로지 자신과의 경쟁이 있을 따름이다. 핀란드는 학생들을 경쟁시키지 않는 것 외에도, 우등생만을 위한 영재교육이나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학교도 없다. 다만 뒤처지는 아이들을 배려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만 있을 따름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핀란드의 시험 시간과 쉬는 시간. 시험 답안을 모르면 선생님에게 해답에 접근하는 방법을 물어본다. 시험은 더 이상 정답을 매기고 등수를 확인하여 상급 학교로 진학시키는 서열화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는 장치일 뿐이다. 쉬는 시간에 핀란드 교사들은 학생들을 모두 운동장으로 내몰고 건물 문을 잠근다. 절대 공부해서는 안 된다. 잘 놀아야 잘 공부할 수 있다는 그들의 신념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이 가능한 이유는 대학서열이 없고 직업의 귀천이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대학은 100% 국립대이고 무상교육이며 평준화되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경쟁 없이 서로 협력하여 공부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펼친다. 그 결과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학생들 사이의 학력 격차도 매우 적다. (더 상세한 내용은 핀란드 교장협의회 회장 피터 존슨과의 인터뷰 참고. <프레시안>, 2007년 10월 22일자)

국제학업성취도평가 2위의 나라 대한민국. 그 힘은 살벌한 입시교육에서 비롯된 가혹한 경쟁에서 나온다. 경쟁은 있지만 협력은 없고, 학력은 있지만 행복은 없는 나라 대한민국. ‘자율형 사립고 100개’와 ‘본고사 부활’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민 가든가, 맞서 싸우든가

한국 사회에서 대학입시는 단순히 고등교육기관에 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부와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그 과정은 선의의 경쟁도 공정한 게임도 아니고 벌거벗은 생존 경쟁이다. 그러하기에 입시 정책의 변화에 따라 온 나라가 요동치는 건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해방 이후 총 16차례 바뀐 입시 정책의 변화 과정은 곧 지배층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을 따름이다. 입시 제도가 자주 바뀌고 복잡해질수록, 사교육 시장이 확대될수록, 대학의 학생선발자율권이 확대될수록 부유층에 절대적으로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당선인의 정책은 철저히 계급적이다.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는 아예 어려서부터 학생들을 일류와 이류, 삼류로 계층화시켜내겠다는 것이고, 대학입시자율화는 부유층 자녀에게 유리한 입시 제도를 각 대학이 소신껏 만들어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 가운데 이토록 노골적인 계급성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작년 진보진영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대중적 대안으로 부각하기 시작했다.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교육운동의 근본 과제를 더욱 분명히 각인시키고 있다. 본고사 부활인가, 입시폐지인가? 고등학교까지 서열화인가, 대학까지 평준화인가? 적당한 봉합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다른 대안은 없는가? 핀란드 이민을 권하고 싶지만 언어와 날씨가 우리와 전혀 맞지 않다. 저항의 가능성은 있는가? 이미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은 인수위 홈페이지를 분노로 점령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등록금 폭등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사교육비 폭등을 걱정하지 않는 학부모는 없다. 이명박 정권은 ‘약점 많은 강적’이 될 것이다. 문제는 진보진영이다.
덧붙이는 말

이형빈 님은 이화여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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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진보 , 평준화 , 본고사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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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선

    저부터도 사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정말 이명박의 교육정책은 사교육 배불려주기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쩝..

  • 새벽네시

    사교육비고 뭐고간에 총체적 난국상이랄 수 밖에 없는데.. 어쨌든 불쌍한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 좀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꽃다운 젊은 시절을 학원에 처박혀서 살아야 하는 ...

  • 불쌍한중딩

    2011년 부터 영어 공교육 실시한다던데 ... 완전 캐안습임.... 딱 저희 고등학교들어갈때 ....

  • 역시 삼천포로 빠지는군; 왜 부유한 자들에게 무조건 유리한 입시정책이지? 오히려 공부 하나 잘하면 학벌시스템에서 부와 권력을 노릴수 있는 지금의 시스템이 그나마 돈없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