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로 포장한 강력한 이념 정부

[특별기획 : 이명박정부와 진보](11) 이른바 민영화라는 시장주의 이데올로기

기획예산처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부터 나온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새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강도 높은 공공부문 개혁(?)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공기업 민영화, 통폐합, 구조조정 등 공기업의 성격에 따른 모든 가능한 방안이 검토된다. 지난 1월 8일 기획예산처의 업무보고에서는 아직 민영화 대상 기업과 민영화의 방식 등에 대해서는 결정한 바 없고 올해 상반기 중 공공기관 민영화 기본계획을 확정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인수위원회가 이미 산업은행의 민영화와 그 방식까지 확정하였고, 기업은행, 우리은행 같은 국책, 국영은행 뿐 아니라 전력, 가스, 수도, 철도, 공항,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까지도 민영화 대상으로 적극 검토되고 있어 민영화의 대상과 폭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가늠이 되는 상황이다.

지난 외환위기와 IMF 관리체제 하에서 김대중 정권에 의해 본격화되었던 민영화는 노무현 정권에서는 공기업 내부개혁에 치중한다며 주춤하였는데, 이제 새 정권에 의해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개별 공기업의 성격과 시장조건을 고려해 그에 합당한 여러 방식의 민영화를 검토한다고 한다. 즉 시장경쟁 여건이 성숙된 분야는 소유권 매각을 통해 적극적으로 민영화하고, 공공성이 있으나 민간 참여가 가능한 분야는 운영권 매각방식으로 민영화하며, 수익성이 있지만 경쟁이 도입되지 않은 분야는 선 분할 후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 당시의 민영화안과 비교하면 새 정권의 민영화 계획은 그 계승이면서도 보다 적극적인 안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은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와 개발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권 10년의 강력한 계승자다.

운영권 매각방식과 선 분할 민영화 방안은 말하자면 민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은 모두 짜내보겠다는 것이다. 즉 소유권 매각이 여의치 않다면, 소유권은 국가에 두고 운영권만 민영화하고, 통째로 민영화하기 어렵다면 분할해서 민영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분할민영화는 사실 김대중 정권 때 추진하려다 노동조합의 저항에 부딪쳐 좌절된 안인데, 한국전력, 가스공사, 철도공사 등 미완의 민영화로 끝난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민영화를 완결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전력의 경우 발전과 배전을 분할하고 이미 분할된 발전과 함께 배전도 또 분할하며, 철도는 시설, 유지보수 그리고 운영, 여객과 화물, 나아가 노선별로도 분할한다는 분할민영화가 이번에는 그대로 실행된다면 민영화 역사상 최악의 민영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민영화는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 그리고 시장경쟁으로 요약되는 시장주의(=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국가소유의 기업들을 사기업에 넘겨주는 민영화만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강화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 기업의 주인을 찾아준다느니 시장경쟁을 강화한다느니 또는 효율성을 제고한다느니 하는 민영화의 온갖 선전논리에도 불구하고 민영화의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민영화는 국영기업을 인수하는 사기업에게 소유와 경영권을 넘겨주고 막대한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는 데 그 진정한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국민의 세금으로 세운 국영기업을 사유화하는 게 민영화의 본질이다. 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의 매각과 인수에서 막대한 이윤이 발생하는데 민영화된 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건 대개 이 때문이지 민영화로 효율성이 증가되어서가 아니다.

예컨대 김대중 정권 들어서 이루어진 기아와 아시아차의 현대차로의 매각에는 16조 원에 이르는 매각대상 기업의 총 부채 중 10조 원의 부채 탕감과 3조 원의 추가 대출의 조건이 붙어 있었고, 무려 17조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은 불과 5천억 원에 뉴브리지 캐피탈에 매각되었다. 말하자면 막대한 부채탕감과 국민세금으로 사기업의 이윤조건을 만들어줌으로써 국영기업 민영화가 성사되었던 것인데, 공기업을 인수한 현대차와 뉴브리지 캐피탈이 그 후 각각 엄청난 흑자와 재매각이익을 챙겼던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국영기업은 기본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국영기업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이윤의 획득을 추구하지 않고 저렴한 가격에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국영기업을 인수한 사기업은 본질상 독과점이윤을 추구하며 높은 가격으로 구매력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선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국영기업을 인수한 사기업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도 이러한 이윤추구 본성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민영화 결과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적 소유에 입각한 사기업이 공기업에 비해 보다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학의 원리상 사적 소유와 시장경쟁이 공적 소유와 사회적 규제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논증되지 못한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할 민영화정책의 결과는 사실 이렇게 예정되어있다. 더욱 거대해진 독점적 사기업과 금융기관의 시장지배, 민영화 거래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세금부담, 공공서비스의 차별 및 악화, 서비스 가격의 인상, 그리고 일자리 감축. 특히 이명박 정권은 외환위기 하의 김대중 정권과 달리 외국자본보다는 국내 재벌들에게 국영기업의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여 민영화는 국내재벌들의 잔치가 될 전망이다. 특별히 산업은행의 민영화 방안에서 검토하는 바처럼 현행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와 산업자본 컨소시엄에 의한 인수 허용의 방향으로 금융기관의 민영화가 진행한다면, 이는 한국에서도 산업독점자본과 은행독점자본의 결합이라는 명실상부한 금융자본의 성립을 가져올 것이다. 그에 따라 금융자본과 국가독점과의 결합도 새로운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민영화가 시대의 대세처럼 받아들여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신자유주의 시대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외에도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낙하산 경영과 관료주의 그리고 밥그릇 챙기기와 조직이기주의라는 공기업의 왜곡된 현실 자체 때문이다.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자체도 사실은 이런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고, 그 때문에 민영화 이데올로기가 강력한 것이다.

따라서 민영화를 비판하고 사유화에 대항하는 진보진영의 운동이 대중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힘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논쟁을 넘어 공기업의 현실을 변화시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재벌과 국가독점의 결탁 그리고 심지어는 노동조합까지 이 결탁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에서 공기업을 진정으로 대중들을 위한 기업으로 변모시키는 일은 실로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결코 완료될 수 없는 과정이겠지만, 사유화를 반대하고 그 대안으로 사회화를 추구하는 진보진영의 운동이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은 민영화 정책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공공연히 친기업, 친자본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실용정부 또는 실용주의라는 구호로 그 이데올로기를 포장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국민의 정부가 아니었고 ‘참여정부’가 참여정부가 아니었듯이 ‘실용정부’도 실용정부는 아닐 것이다. 친기업, 친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강력한 우파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며, 실용주의란 자본주의 질서를 인정하고 그 지향을 변호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자신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실용주의로 포장하고 자본주의 비판은 이념주의로 몰아가는 알량한 재간으로 현실의 계급갈등과 이해대립을 무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정권 하에서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실행될수록 사유화의 폐해는 그만큼 현실화될 것이고 이는 사회화를 위한 투쟁의 새로운 토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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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 김성구 , 시장주의 , 실용주의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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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좋은 글 잘봤습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