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항상 낯선 나라다. 그러나...

[기자의 눈] 김세진 ·이재호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

기억을 한다는 것

과거는 항상 낯선 나라다.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워 돌아가고 싶은 무엇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피하고 싶은 짐 같은 것일 수도 있을게다. 또 누군가의 기억을 낯설게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어떻게 살란 말이냐”

기억은 그들에게 질문을 남겼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에 등장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삶에서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기억을 낯설게 만난 사람들에게 질문이 던져진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86년 4월 28일. 신림 사거리 앞에는 갓 스물을 넘긴 청년들이 ‘전방 입소’를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건물 옥상에서 두 개의 불꽃이 보인다. 함께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잠시 스쳤을 수도 있을 두 개의 불꽃. 이재호, 김세진 열사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중적인 반미구호라 평가되는 그들의 불꽃.

낯선 기억과 마주치는 낯선 현재

  과거는 낯선 나라다ㅣ김응수ㅣ김세진이재호기념사업회

그들의 불꽃을 보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의 낯설음. 그들은 다시 그 낯선 기억 앞에 섰다. 어떤 사람은 그 기억과 마주할 수 없다고 감독의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몰려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기억과 마주했다.

“과 선배 였어요” 신림 사거리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이재호, 김세진 열사가 발언하는 동안 경찰이 그들을 끌고 가는 것을 막는 임무를 맡았다는 사람. 그러나 그는 다른 건물에 있다.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불꽃을 본다. “내가 벌어준 시간으로 선배들이 분신을 했다면, 그 곳에 내가 있지 않았다는 것이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도 해주고,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총학생회장단이 모두 수배가 된 상황에서 난 무슨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연락을 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그녀는 우연히 김세진 열사를 만난다. “다방에서 만났어요. 내가 쪽지를 전달하고,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해서 커피를 시켰죠. 그리고 그는 내 운동화를 보며 운동화를 신고 싶다고 했어요. 수배 중이라 학생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그는 양복에 구두를 신고 있었거든요. 그는 운동화를 신으면 날아갈 것 같다고 했어요” 그녀도 불꽃을 본다.

“과학생회장 이었어요” 영화를 만든 김응수 감독의 얼굴이 등장한다. “학생회비를 걷어서 자연대 학생회실에 갔어요. 거기에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 있었어요. 참 잘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운동권 같지 않은 옷차림이었죠. 학생회비를 전달하자. 사회대는 왜 이렇게 학생회비를 잘 안내냐. 나에게 농담을 건넸어요” 그도 불꽃을 본다. “어리석게도 얼마나 뜨거울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렸을 때 화상을 입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요”

모두 다른 상황에서 만난 불꽃. 그 불꽃은 현재 진행형이다. 절대적 기준에 따른 신비화된 기억이 아니더라도, 꼭 기억해야만 하는 무엇이 아니더라도 그들에게는 계속 진행 중인 낯선 현재다. 그들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낯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현재를 살고 있다

김응수 감독은 ‘영화, 날개를 달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다.

“80년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며 혐오감까지 느꼈어요. 과거를 신비화시키고, 그 과거가 마치 누군가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는 것 말이죠.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이죠. 모든 것이 과거고 역사인 거죠. 그 기억이 현재를 사는 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어떻게 과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를 보는 것. 박물관에 보관해 놓은 역사를 꺼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살고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 그것이 인생이고 역사가 아닐까요”

영화는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계속 따라간다. 또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놓인다. 그 길을 처음부터 걸어온 사람도 있고, 중간에 나선 사람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 길에 대한 기억은 다르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말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김세진, 이재호 열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로, 김응수 감독의 작품이다. 기획과 제작은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에서 맡았다. 김응수 감독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달려라 장미'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이 영화는 3월에 개봉되었으며 현재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상영 중이며 인디스페이스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