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두 정 씨'는 정치 불신만 만들고

[현장]민주노동당 김지희와 진보신당 김종철을 만나다

“투표한다고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상추 팔고 채소 팔면 돈 천 원 벌이는 하잖아. 재수 좋으면 많이 팔고, 재수 안 좋으면 쪼금 팔고. 자유당 때부터 오십년 속았는데, 뭘 더 속아. 속을 것 다 속고 바닥났는데, 절대 안 속아.”

다음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이라 불리며 날마다 언론을 오르내리는 서울 동작을 선거구. 지하철 4호선 사당역 아래 길가에서 채소를 파는 조순금 씨를 만났다.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지 19년째라고 한다. 18대 총선에 대해 묻자, ‘절대 안 속아’하며 목청을 높인다. 올해 칠순, 한 번도 자신이 찍은 후보는 당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하철 4호선 사당역 아래 길가에서 채소를 파는 조순금 씨는 “이 동네에(서울 동작을 선거구) 우리나라에서 젤 센 사람 둘이 나왔다'고 말했다.
“예전이야 손가락 끌어다 투표 찍게 했지. 시방이야 국문 모르는 사람 없고, 투표 못하는 사람 없잖아. 다 마음에 드는 사람 찍는 거야.”

투표해봤자 ‘손가락만 닳는다’며 ‘내가 거기(투표장) 가서 왜 품 팔아’ 하며 따지던 조순금 씨. 하지만 텔레비전도 보고, 사당역에 유세차를 세워두고 목청 높이는 후보들의 목소리도 꼼꼼히 들어본다.

“이 동네에 우리나라에서 젤 센 사람 둘이 나왔지. 둘 다 정 씨야.”

젤 센 사람 ... 둘 다 정 씨야

‘젤 센 두 사람’말고는 조순금 씨가 이름을 기억하는 후보는 없다. ‘방송에서도 1번 2번만 나오’니 다른 후보에 대한 관심은 줄어든 다고 한다. 후보가 몇 명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동작을 국회의원 선거사무실이 모여 있는 지하철 7호선 남성역 사당로. 이곳을 오가는 주민들과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처럼 자신이 사는 곳에 후보가 몇 명이 나왔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다섯 시간을 헤맸지만 만날 수 없었다.

남성 파출소 앞에서 주차장을 관리하는 ㄱ 씨.

“4월 9일이 되면 다 떠날 사람 아닌가요. 힘 있는 사람보다는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이 있어야죠. 1주일에 한두 번씩은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좋죠.”

후보 사무실이 줄줄이 늘어선 이곳에는 하루 종일 차가 밀린다. 길에서 만난 경찰관은 “누가 되든 차가 밀리지 않게 길이나 넓혔으면 좋겠다”고 한다. 선거철이 되면 경찰들은 더욱 고생이다. “특별근무 해야지요. 골치 아파요. 욕먹을 일만 잔뜩 생겨 머리가 아파요.”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정육점을 하는 ㄷ 씨는 자신이 찍을 후보를 결정을 하였다고 한다.

“사당동이 예전부터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야. 힘 있는 국회의원들 나와 봤자 권력 얻어 빠져 나가잖아. 국회 배지 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아. 옆 서초구에 비해 발전된 게 없어. 서민들이 빼곡히 모여 사는데 고등학교가 2곳 밖에 없어. 문화 시설이나 교육수준이 지방보다 안 좋아. 여러 명 배지 달고 지나갔는데 한 게 뭐가 있어.”

사당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정육점을 하는 토박이 ㄷ 씨는 이번만은 지역을 서민을 일할 사람을 찍겠다고 한다.

하지만 동작을 선거구에는 워낙 힘이 센, 차기 대권 주자라고 불리는 정몽준, 정동영 후보의 전략공천으로 주민들은 선택의 폭이 오히려 좁혀들고 있다. 두 정 씨 후보에 생각이 마비될 정도라고 ㄷ 씨는 말을 한다.

정 씨 후보들 때문에 생각 마비

동작을 선거구에는 서민과 진보를 대표하는 정당에서도 후보들이 나왔다. 민주노동당에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인 김지희 후보, 진보신당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였던 김종철 후보가 지역 주민들을 파고들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쟁쟁하지만 아직 주민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진보 신당을 묻자 ‘이회창 신당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우리 지역에도 민주노동당 후보가 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만났다.

동작을을 찾은 4월 3일은 마침 지역 방송에서 주최하는 국회의원 후보 토론회 녹화가 예정된 날이었다. 방송기자 성희롱 사건으로 시끄러워진 정몽준 후보가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에 정동영 후보도 토론을 거부하고 나갔다.

힘이 있는 후보가 나온 덕(?)에 동작을 주민들은 알 권리마저 무시되었다.

주민 알 권리 무시

저녁이 되자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다시 서민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사당동으로 모여 든다. 그제야 ‘젤 센 후보’가 아닌 후보를 알아보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김종철 후보 알죠.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있는 진보신당 아닙니까. 서울 시장 후보로 나와 얼마나 똑 부러지게 정책을 말합디까. 1, 2번 때문에 사당동에서 서민을 위해 진짜로 일할 사람 못 알아보는 거예요.”

노트북을 맨 지친 어깨의 회사원 ㄹ 씨는 진보신당과 김종철을 알아보는 첫 유권자다. “힘을 떠나 서민의 목소리를 국회에서 떳떳하게 외칠 사람이 동작에서 나와야 하지 않겠냐”며 목에 힘을 준다.


이수역 13번 출구. 김종철 후보는 악수하기에 정신이 없다. 김 후보가 방송유세를 하자 유난히 크게 박수를 치는 과일 노점을 하는 상인이 있다.


진짜로 일할 사람

“말이 맞잖은가. 돈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자립형인가 뭔가 하는 사립고보다는 있는 학교라도 제대로 해야 되는 거 아닝가.”

자식 셋을 이곳에서 과일 장사를 해서 학교를 보냈다는 ㅁ 씨. 지금도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운동장에 물이 빠지지 않아 애들 운동화가 진창에 더럽혀져 온다며, 낙후된 이곳 교육시설에 불만을 터뜨린다.

“여기가 정치 놀이터야. 이젠 일할 사람 뽑아야제.”


4월 4일 아침 6시 30분. 사당역 10번 출구 앞. 무료 신문 가판대를 설치하는 이들의 손이 제일 바쁘다. 민주노동당 선거 유세차가 세워져 있고, 1번과 2번 선거운동원들이 출근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붙들려고 옷 색깔을 맞춰 입고 나온다. 출근길 시민들은 선거운동원들을 피하며 지하철역으로 쏜살같이 발걸음을 움직인다.

충무공의 후손이라고 밝힌 이재열 씨.

“민주노동당 알지. 서민을 위한 정치에 전념을 다하는 당이잖아.”

이재열 씨는 민주노동당 김지희 후보 선거 운동원의 손을 잡으며 격려를 하고,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연신 손을 흔든다.

아파트 단지에서 세탁소를 하는 ㅂ 씨. 김지희 후보가 지나가자 밖으로 달려 나온다. 민주노동당 후보가 나와 반갑다며 악수를 한다. 세탁소 옆에 앉아 있는 주민들에게 김지희 후보를 소개하며 박수를 쳐달라고 한다.

서민 위해 전념하는 당

당원이냐고 묻자 ㅂ 씨는 아니라고 한다.

“당원 아니야. 지난 총선 때 동작에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없었어. 서민들이 사는 곳에 민주노동당 후보가 나오지 않아 자존심이 상했지. 이번에 민주노동당에서 나오니까 당원은 아닌데 내가 더 기분이 좋아.”

ㅂ 씨는 서민이 사는 곳에 서민의 정당이 뿌리내려야 한다고 목울대를 떨며 말을 한다. “재벌이 국회에 가서 누구 말을 하겠어. 선거 때니까 갑자기 이곳에 와서 뻔질나게 얼굴 내밀지, 이젠 필요 없어. 그래도 국회에서 서민들 가슴 뻥 뚫리게 해준 당이 누구야.”

4월 3일부터 이틀간 사당동 일대를 뺑뺑 돌며 주민들과 상인을 만났다. ‘힘센 두 정 씨’말고는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무척 힘이 들었다. 물론 ‘힘센 두 정 씨’의 정책이 무엇이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대권주자의 전략지역이 되면서, 지역 유권자들의 가슴에는 더욱 큰 정치 불신만이 깊어졌다.

더 큰 문제는 언론에서 동작을 선거구를 ‘대권 놀이터’로 만들며 떠드니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생각마저 마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조직과 재정이 열악한 정당들은 ‘힘센 정당’이 만든 폭력 앞에 제대로 얼굴조차 알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중반을 넘어서며 작은 흐름이 만들어지는 걸 찾을 수 있었다. 직장인과 젊은 층에서 ‘힘센 후보’의 대안으로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눈길을 머무는 유권자가 늘어나는 게 감지된다.

힘센 후보의 대안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진보신당의 김종철 후보는 “천지개벽이 있지 않는 한 동작을 지역구에서 뿌리를 내릴 겁니다. 서민정치, 민생정치, 진보정치의 희망의 꽃을 동작을에서 피워내겠다”며 주민들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다.


지난 3월 모친상을 치룬 민주노동당의 김지희 후보는 “시장에서 상인들이 덥석 제 손을 쥐어주실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거친 손을 느낀다. 어머니의 손에 부끄럽지 않게 서민과 함께 하는 민주노동당이 되겠다”며 주먹에 힘을 준다.


불신의 정치는 한 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동작을 선거구를 ‘정치 놀이터’가 되지 않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도 서민과 진보를 앞세운 정당들의 몫이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목이 갈라지도록 뛰는 ‘골리앗’에 맞선 후보들에게 동작을 유권자들의 눈길은 차츰 모여지고 있다.
덧붙이는 말

참세상은 오도엽 작가에게 거대 보수정치인 두 사람과 진보정당 후보 두 사람이 출마한 동작을 선거구 현장 소식을 담아 줄것을 부탁했다. 오도엽 작가는 지난 3,4일 양일 간 동작을 선거구를 다니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종철, 김지희 후보의 선거 운동을 지켜봤다. 또한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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