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공공성 실천 대안 실마리 포착

미디어행동 워크샵, '사회화'로서의 미디어운동 의미 확장

누구나 다 인정하는 말은 변화의 힘을 갖지 못한다. 위협이 되지 않는 컨텐츠는 현실 변화에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변화는 대체로 생소한 것의 출현과 수용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명박정부의 사유화 바람이 미디어 분야에도 휘몰아치는 지금, 미디어운동의 변화의 고민은 어느 정도일까. 누구나 다 인정하는 미디어공공성, 이는 오늘날 미디어운동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별반 힘을 갖지 못한다. 미디어공공성의 한 겹만 벗겨보면 처지에 따라 편리하게 해석되거나, 추상 수준에 머무는 용어라는 사실도 확인된다.

18-19일 MBC문화동산에서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 워크샵이 열렸다. 무엇보다 미디어공공성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잘 확인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누구나 이야기하는 미디어공공성이지만 사실 지금까지 단호하게 정의하는 주체는 없었다. 따라서 이번 워크샵은 폭넓은 미디어운동 진영이 한 자리에 모여 어떤 미디어공공성이냐를 토론하는 자리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는 이야기들 속에 미디어공공성, 그 실천의 구체성에 접근하는 실마리도 엿보였다.

  지난 2월 29일 출범한 미디어행동이 18-19일 첫 워크샵을 가졌다. 워크샵에는 60여 명의 미디어활동가들이 참석, 미디어공공성 관련한 토론을 펼쳤다.

김지현 : 공영-민영-공공미디어, 규제 일원화하고 진흥 3원화 해야

김지현 활동가의 발제에 이목이 쏠렸다. 김지현 미디액트 활동가는 이날 워크샵에서 ‘융합기구 개편의 원칙에 대한 제안’을 브리핑했다. 몇몇 활동가들이 방통융합TF를 하면서 축적해온 성과물이다. 먼저 융합 환경 속에서의 미디어공공성의 가치와 미디어 영역 분류 및 개념 정리를 내놓는다.

김지현 활동가는 융합기구의 최고 정책 목표를 공공적 시스템 정비와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보장으로 놓고, 4대 지향가치와 5대 커뮤니케이션권리를 가설로 제시한다.

4대 지향가치는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최고 지향 가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위 지향가치로서 보편적 접근, 시민의 자율적 참여, 다양성의 원리 등으로 요약된다. 5대 커뮤니케이션권리로는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문화적 권리, 프라이버시, 미디어 리터러시 등을 꼽았다. 김지현 활동가가 제시한 이같은 가설은 미디어공공성의 가치를 구체화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기존의 언론개혁운동의 맥락에서 보면 다소 생소하고 낯선 개념으로 받아들여질만 하다.

김지현 활동가는 미디어 영역 분류로, 공영-민영-공공 미디어 등 3대 기초 영역을 설정한다. 공영-민영의 전통적 구분이나 네트워크-플랫폼-컨텐츠라는 수평적 규제 방식, 방송-사적통신-융합미디어라는 수직적 규제 방식 등 기존의 미디어 정책 구분이 이용자의 커뮤니케이션 참여 및 아래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부차적으로 놓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제 공공적 지향과 커뮤니케이션 권리 보장이라는 최상위 정책 목표를 각 영역에서 새로운 미디어 정책 범주로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영-민영-공공 미디어의 정책 과제를 제시한다.

김지현 활동가의 분류에 따르면 공영미디어(지상파 방송 및 공적 지원을 받는 플랫폼과 네트워크, 컨텐츠로서 영리에 연연하지 않고 공공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는 대의제적 미디어 시스템이고, 민영미디어는 기업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상업 미디어 영역으로서 영리를 우선하는 미디어이며, 공공미디어(아래로부터의 참여적 자율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이용자 및 비영리적 컨텐츠 생산주체 및 플랫폼의 활성화를 지칭)는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이라고 정의된다. 공영미디어와 공공미디어가 사회문화적 가치를 우선하는 영역이라면, 민영미디어는 산업적 가치를 우선하는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김지현 활동가는 공영-민영-공공미디어에 대한 이같은 개념 설정에 따라 각각의 미디어에 대한 진흥과 규제 문제를 거론하는데, 규제는 일원화하고 진흥은 3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규제의 주된 기능은 시장 규제와 자원 관리 규제 및 공공미디어 영역 진흥을 위한 규제를 들고, 진흥은 각 영역별 정책적 목표와 방법론에 따라 3원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공공미디어 진흥 부문에 대해 △사회문화적 가치에 상대적 우선 순위 △비영리 참여적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활성화 △이용자 및 비영리적 컨텐츠 생산주체의 자기표현과 참여를 보장하는 네트워크, 컨텐츠 및 플랫폼의 활성화 △공론장의 확장, 각종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보장 등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다.

김지현 활동가는 가설, 분류와 개념, 규제와 진흥에 대한 제안으로부터 미디어융합 환경 속에서 미디어의 공공적 성격을 강조하고, 사회구성원의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통한 공공미디어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이는 기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공공성 내지 공익적 측면과 언론.방송개혁 과제를 중심으로 설정된 프레임의 양질적 확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공미디어의 이같은 개념 설정에도 불구하고 공영미디어의 공공적 성격과의 경계가 중층적인 데다, 공공미디어 구축을 위한 실천으로서의 의제 설정과 구현 경로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방통융합 기구 개편을 놓고 규제와 진흥을 검토하는 데서 오는 제한된 논의의 한계로 풀이된다.

  나란히 발제를 하고 있는 황규만 진보네트워크 활동가와 김지현 미디액트 활동가

황규만 : 정보통신운동의 연장에서 미디어공공성 3개 의제 제시

김지현 활동가의 문제의식과 비교할 때 황규만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의 ‘방통융합 그리고 미디어공공성을 둘러싼 정보통신운동의 전략과 고민’은 공공성 의제를 직접적으로 제안하고 있어 흥미롭다.

황규만 활동가는 우선 최근 몇 년 동안 모든 미디어가 그렇듯이 인터넷도 급속하게 체제 내(민족국가와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을 겪었다고 본다. 국가의 사회통제 전략이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자본의 독과점적 발전과 신자유주의 우파로의 정치권력의 재편이라는 정치,경제적인 운동과정과 궤를 같이 한다는 지적이다.

황규만 활동가는 90년대까지 1:1 통신을 담당하던 유선 통신망이 KT를 비롯한 공기업의 독점으로 건설, 관리되었지만, 인터넷통신망은 민간자본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로부터 통신망의 전통적인 공공성이 유효경쟁 모델과 보편적 접근이라는 두 가지 의제에 한정된 점과 컨텐츠와 플랫폼 시장의 왜곡과 실패를 제어하지 못한 점을 들춰낸다. 따라서 민간자본이 주도하는 망을 기반으로 IPTV와 통신자본의 방송시장 장악은 자본 주도의 컨텐츠와 담론의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규만 활동가는 이 대목에서 미디어운동 진영이 미디어행동에 모여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다. 황규만 활동가는 방통융합기구의 설립이 경향적으로 자본의 성격 변화와 이에 따른 통신과 방송을 아우르는 단일한 국가의 개입 틀(진흥과 심의/규제 모델) 구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송의 공공성과 통신에서 발전시킨 참여적이고 공동체적인 공공성의 의제의 제도적.문화적 융합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바라본다. 이런 문제들이 현실 운동에서 다양한 정치세력 및 계급투쟁의 결과물로 반영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지현 활동가가 융합기구의 재편을 놓고 공영-민영-공공 미디어의 규제와 진흥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켰다고 한다면, 황규만 활동가는 자본 주도의 융합환경 속에서 현실 운동의 발전에 조응하는 미디어공공성 문제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물론 실천적 함의로 볼 때 둘 다 중요한 제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황규만 활동가는 여기서 나아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공공성 의제 세 가지를 던져 주목받는다.

하나는 망과 플랫폼에서의 공공성의 역할 확정이다. 황규만 활동가는 민간 자본에 의해 구축된 망을 국가 소유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민중참여적 미디어의 공공적 역할이 망 소유 여부였다기보다는 인터넷 프로토콜의 개방성에 기초한 바가 크다고 본다. 이로부터 IPTV 등 융합미디어 서비스 역시 이런 개방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망의 중립성 보장과 개방지향적인 프로토콜과 플랫폼 표준을 마련하고, 융합서비스에 시민사회의 직접 참여가 가능하도록 국가의 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황규만 활동가가 제안한 두 번째 공공성 의제는 자본에 의한 컨텐츠 생산과 유통망 독점에 따른 담론 왜곡 문제 견제, 그리고 공공적 컨텐츠의 진흥이다. 이와 관련 지적재산권 강화가 미디어자본의 독점적 생산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컨텐츠 생산과 유통 전반에 걸친 공공성 확보의 일환으로 대안라이선스 채택과 아카이빙 서비스를 제기한다.

또한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를 든다. 컨텐츠에 대한 심의와 규제 논쟁에 있어 소수자 권리와 표현의 자유, 이를 통한 다양성의 확대와 이용자 참여를 보장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 점에 있어 현재 IPTV법과 시행령의 수준이 매우 미약하다고 지적한다. IP 기반의 IPTV는 시청자의 신원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사실상의 감시시스템 기능을 갖고 있어, 심의와 규제 강화를 전 미디어로 확장하는 것에 경계를 요한다. 아울러 융합미디어 서비스가 개인정보 취득, 저장범위에 대한 제한과 관리책임에 대한 수위를 높이고 강제하는 규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과제 :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통제로서의 미디어공공성, ‘사회화’ 의미 도출해야

문효선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은 ‘미디어행동의 전망과 과제’ 발표를 통해 이명박정부의 사유화 정책에 따른 미디어환경의 왜곡에 경종을 울렸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고시 규제완화 발표, 방송통신위원회의 비공개 첫회의, 뉴라이트 방송통신정책센터의 설립, 방통심의위 설립법에서의 인권 침해 소지 등 일련의 사태를 문제 삼는 가운데, 규제완화 -> 자본친화 -> 사유화 -> 여론독점의 악순환의 고리가 미디어공공성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미FTA 협상에서의 방송 개방 맥락의 연장에서 이명박정부의 방송통신정책이 사유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미디어운동의 고민과 위기감도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 이는 이번 워크샵에 참여한 60여 명의 참가자의 면면에서도 확인된다. 워크샵 참가자는 언론개혁운동 진영부터 수용자단체, 현업단체, 그리고 독립미디어운동과 정보통신운동 단체까지 망라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가령 자리를 같이 한 최문순 통합민주당 비례의원은 총선 결과 개혁세력이 궤멸했고, 원 내에서 개인적으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의원이 몇 명에 불과하다며, 의정 활동 내내 원 밖의 미디어운동 진영과의 연대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같이 이명박정부의 미디어 사유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폭넓은 공통의 지반이 확인되는 가운데, 지난 미디어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미디어공공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미디어활동가들의 결집을 강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사유화 반대는 중요하지만 반대 자체가 대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미디어행동의 실천은 방어적이고 그 한계가 뚜렷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미디어운동 진영 전체가 방송.언론개혁 운동과 한미FTA시청각미디어공대위 활동 이후 보다 급진적인 대안 마련에 힘을 기울이지 못한 데다, 미디어행동 역시 지난 2월 29일 인수위의 방송통신언론 정책이 알려진 시점에 워낙 급하게 조직된 데 기인한다는 지적이다.

  3월 26일 미디어공공성 전략 연구를 위해 미디어행동 산하에 개설한 공공미디어연구소.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과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가 문패를 달고 있다. [출처: 미디어스]

다행히 해법의 실마리가 조금씩 보인다. 허경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활동가는 ‘차이를 확인하고 함께 하는 이유와 방법을 찾기 위하여’를 발제하면서 지금 대안미디어운동이 어디에 주목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한다. 인용하자면..

대안 사회의 상이 무엇이든 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보장되는 실질적이고 민주적인 소통방식.의사결정구조.합의방식’은 필수조건이고 이는 ‘지역 내의 민주적.참여적 의사결정구조와 그를 통한 전국적 의사결정구조’로 달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과 현장에서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권리를 확보하면서 공동체 및 공동체 구성원의 임파원먼트를 목표로 하는...

김지현 활동가가 방통융합에 있어 미디어에 대한 규제와 진흥을 제기하고, 황규만 활동가가 국가와 자본 주도의 미디어 환경에서 컨텐츠, 프로토콜, 플랫폼 등에 있어 참여와 공동체적 공공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언급한 지점이 같이 만나는 대목이다. 미디어의 여러 구성 요소에 개입,참여하고 통제하는 아래로부터의 대안 과제를 고민하는 가운데, 지역과 현장의 구체적인 미디어행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제기다.

허경 활동가는 ‘당장 함께 할 수 있는 것들’로 △공동의 정책.이론 연구와 생산 △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행동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행동을 통해 경계 넘어서기 등의 과제를 제시한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과정에 참여하는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동의 컨텐츠 생산과 유통 등의 활동을 담는다.

정치적인 이슈와 정책적 대응 차원의 대안이 중요하지만, 사회구성원의 아래로부터의 미디어 참여의 활성화와 자본 주도의 미디어 통제의 계기를 마련하는 지속가능한 운동의 구현이 중요하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사회운영원리로서의 공공성은 인민의 참여와 통제를 통한 일상 삶의 체현이며, 커뮤니케이션권리를 다루는 미디어 영역인지라 보다 강조되는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공공성 의제는 보다 근본적인 방향, 그러니까 조중동을 주적 삼아 반대하는 실천이나 이명박정부의 사유화 추진과 관련한 크고작은 이슈에 반대하는 행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디어의 ‘사회화’(socialization) 그 지평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토론 과정에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철학과 담론, 이론의 싸움을 해야 하는데 현실에는 담론이 아닌 구호가 횡행하고, 전략 없는 전술 대응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하소연한다. 지금까지의 철학과 이념을 반성하고 여기서 강하게 치고나가야 할 단위가 잘 안 보인다며, 시대의 긴박성에 비해 나태하고 게으르다며 자기 채찍질을 한다. 저널리즘의 강화와 저널리즘적 구상을 통해 뭔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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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공공성 , 융합 , 미디어행동 , 사회화 , 융합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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