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그리고 두 개의 거대한 위기감

[기획 : 촛불에 미치다] 촛불의 분노, 교육감 선거 통해 이어지나

촛불은 피곤하다. 그러나...

피곤하다. 시위 하는 사람도, 막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모두가 쉬지 않고 타오르는 촛불 때문에 솔직히 피곤하다. 전하는 기자들도 피곤한데,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그런데도 촛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얼마나 갈지, 어디로 갈지에 대해 언론과 전문가들이 나름의 분석을 쏟아냈지만, 별로 적중한 적이 없다. "당장 오늘 어디로 갈지를 예상 못하는데, 무슨 전망을 하냐". 기자들끼리 농반진반으로 취재를 나갈 때면, 주고받는 얘기다.

70여 일, 촛불이 한국사회를 휘몰아치고 있다. 비단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 반대로 시작된 촛불은 들불처럼 사회 전반의 의제로 번져나갔다. 돌이켜보면, 촛불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예고되고 있었다.

'어륀지'로 표현되는 영어몰입화 교육, '고소영 강부자' 내각, 당연지정제 폐지 등 의료민영화 논란. 미국산 쇠고기 이전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수하'들의 행보는 하나하나가 연일 뉴스거리였다. 또 이들의 해명은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샀을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 "암이 아니어서 감사하다며 남편이 선물로 오피스텔을 한 채 사줬다"는 등의 장관 내정자들의 계속된 '황당한' 발언은 단순한 실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국민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충분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역시 다르지 않았다. 촛불집회가 계속되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국민들이 '잘 몰라서' 혹은 '배후세력의 선동' 탓만 했다. 정권을 잡은 지 두 달 만에 갑자기 말을 바꿔 "미국산 쇠고기는 99.9% 안전하다"고 하는 데 현 정부에 종교적 신념 수준의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란 만무했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의 표현대로 몇 달 사이 바뀐 것은 오로지 정권뿐이었다는 점을 시민들은 누구보다 잘 아는 듯 했다.

정부가 쇠고기 재협상을 거부하고 '꼼수'를 부릴수록 오히려 촛불은 대운하를 넘어 '미친교육', '미친의료' 그리고 공영방송으로까지 진화했다. 물론 촛불을 끄기 위한 정부와 보수진영의 몸부림도 처절했다. 한쪽은 촛불을 더 크게 밝히기 위해, 다른 한쪽은 그것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쓰고 있다.

촛불시민, 70여 일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무엇?

이른바 '촛불시민'들의 분노가 집중된 영역은 미국산 쇠고기와 함께 잘 알려진 대로 교육, 의료 그리고 방송 등이다. 촛불시민들의 분노에는 공통적으로 위기감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촛불집회 초반이었던 지난 5월 거리에서 만난 시민 권영훈 씨는 정부의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소중한 것들이 뭔가 깨져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국민의 건강을 가지고,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면으로만 평가한다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의료와 교육영역에 있어서도 시민들의 분노의 원천은 비슷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한다고 했고, 4.15학교자율화 조치를 통해 학생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었다. '미친소'를 닮은 '미친교육'과 '미친의료'라는 표어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만을 앞세워 시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영역을 시장에 내맡기려고 하고 있다는 위기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의료민영화와 관련해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방침을 바꿔 당연지정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료민영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아직까지도 썰렁하다. 불과 몇 달 만에 이명박 정부를 '제대로' 학습한 시민들은 '꼼수'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다.

5살, 7살 난 두 아이와 함께 지난 17일 촛불집회에 참석한 주부 김경민 씨는 '촛불이 수그러들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거리에 나와 촛불을 밝히고 있는 시민들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이명박 정부가 바뀐 게 없는 데 국민들의 분노가 수그러들겠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이제 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언제라도 아이들은 다치거나, 아플 수 있다"며 "그런데 정부는 지금 학교에서는 열등반을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갈 수 조차 없는 병원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지금보다 앞으로 남은 4년 반이 더 두렵다"고 걱정했다.

"정부가 의료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김경민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언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고 미리 말하고 수입했는가. 또 국민들이 아직까지도 재협상하라고 하는데,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지 않냐"며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민들이 70여 일 동안 거리에서 촛불을 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논리로 자신들의 밥상과 같은 생활세계가 침범당하고 있다는 자각과 그 파괴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셈이다.

촛불의 진화에 놀란 보수, 맞불을 놓다

촛불시민들이 지칠 줄 모르고, 매일같이 거리를 가득 메우자 보수진영도 극도의 위기감을 드러내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보수진영이 드러낸 위기감은 촛불시민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다. 보수진영에게 있어 촛불시민들은 '사탄의 무리' 또는 '빨갱이'였고, 이들의 촛불집회는 '집단 난동'이었다. 그러니 보수진영에게 촛불집회는 군홧발로 찍어 눌러야 할 '진압'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6월 초 진행된 '72시간 연속 촛불집회'에 대해 "광화문 일대가 불법시위대에 의해 점거되어 사실상 해방구가 되었고, 경찰이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선동세력에게 내어주었다"며 촛불집회 진압을 위한 군 동원을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작가 이문열 씨도 지난 달 17일 촛불집회를 "집단 난동"으로 규정하며 "예전부터 의병이라는 것이, 국가가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 때뿐만 아니라 내란에 처했을 때도 의병이 일어나는 법"이라며 '의병봉기론'을 주창했다. 그 즈음 보수단체들은 촛불집회 중단을 촉구하는 맞불집회를 잇따라 개최했다.

이 같은 보수 이데올로그와 보수단체들의 지원에 힘입은 정부의 반응은 예상대로 '강경 대응'. '여학생 군홧발 폭행' 등으로 논란이 일어 잠시 주춤 했지만, 정부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촛불시민들을 압박했다. 특히 정부는 촛불시민을 '일반시민'과 '운동권'으로 분리하며, '빨갱이만 잡아들이면 된다'는 식이었다. 지금은 물러난 '대운하 전도사'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한 기도회에서 촛불시민들에 대해 "사탄의 무리들이 이 땅에 판을 치지 못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할 정도였다.

보수진영의 이 같은 격한 반응은 촛불시민들의 요구가 자신들의 이익과 얼마나 배치되는 것인지, 또 시민들을 향해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촛불에 대한 보수진영이 갖는 두려움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시민 정용일 씨는 17일 촛불집회에서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나 그런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수진영을 향해 "정부와 보수단체들은 자꾸 배후 운운하며 '빨갱이 빨갱이' 하는데, 빨갱이라 치고(인정하고), 광우병 쇠고기 안 먹이고, 돈 없는 사람도 아플 때 병원갈 수 있길 바라는 게 빨갱이면 나도 빨갱이 맞다"고 꼬집었다.

촛불의 분노, 교육감 선거로 이어지나

촛불은 현재 한국사회에 가로 흐르는 두 개의 거대한 두려움과 위기감 사이에 놓여있다. 아직까지 촛불이 이를 어떻게 돌파하고,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지에 대한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촛불을 계속 들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의회정치로 수렴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어떤 길도 뚜렷하지 않다.

한 가지, 촛불의 향방을 놓고 많은 이들이 오는 30일 실시되는 주민 직선 시도교육감 선거를 주목하고 있다. 17일 촛불집회에서 한 손에 '730 주민 직선 서울시 교육감 선거'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던 대학생 이하나 씨는 "교육감 선거가 있는지 최근에 알았다"며 "교육감이라는 자리가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니 최소한 이번 선거에서 내가 원하는 후보를 뽑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정치인들이라면 진절머리가 난다"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미친교육을 좀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이 교육감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번 선거의 의미를 강조했다.

정용일 씨도 "교육감을 직선으로 뽑는다는 것을 안지 얼마 안 된다"며 "총선이나 대선이 있었으면, 정말 이번에 확실히 정치권을 심판했을 텐데 아쉬운 대로 교육감이라도 잘 뽑아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중간 평가지로 이번 교육감 선거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성향은 현 정부 교육정책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는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로 뚜렷하게 나뉜다. 때문에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촛불로 표출된 대중의 분노가 선거 공간을 통해 어떻게 발현 되냐를 짚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로 보수언론 등 보수진영은 反전교조 연합을 형성하고,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혹은 중도개혁 후보가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진보.개혁성향 후보들은 반대로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과연 서울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한편, 다른 선거와 마찬가지로 교육감 선거도 직접적인 교육 당사자들인 청소년들은 정작 투표를 할 수가 없다. 이에 청소년단체들은 교육감 후보들의 공식선거 운동이 시작된 지난 17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대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교육감을 뽑는 선거지만 정작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청소년들은 선거권이 없다"며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청소년의 투표권 허용 등 민주적인 참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초중고'와 싸우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의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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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 촛불 , 광우병 ,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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