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막으러 미국 간 쿠바 5인, 10년째 옥살이

미국의 이중 잣대...테러 막았더니 '종신형'

9월 12일은 '쿠바 5인'이라고 불리는 제라드도 에르난데스(Gerardo Hernandez), 안토니오 게레로(Antonio Guerrero), 라몬 라바니뇨(Ramone Labanino), 페르난도 곤잘레스(Fernando Gonzalez), 르네 곤잘레스(Rene Gonzalez)가 미국의 고등 보안범 감옥에 갖힌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 세계 109개국 미 대사관 앞에서는 이 '쿠바 5인'에 연대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공동행동의 날인 12일에 앞서 한국에서도 11일 미 대사관 앞에서 쿠바5인 석방 및 미국의 쿠바 테러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12일 공동행동에 하루 앞서 한국에서도 기자회견이 열렸다. 17개 정당, 노동조합, 사회단체 및 11명의 개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정부의 쿠바5인에 대한 즉각 석방 및 반쿠바테러조직에 대한 지원과 비호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항의서한을 미 대사관에 전달하고 있다.

'쿠바 5인' 사건은 테러에 대한 미국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쿠바 정부는 1990년대 초 쿠바에 대한 테러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이 5인을 미국으로 보냈다. 반쿠바 테러리스트들이 수시로 쿠바의 항구, 호텔, 야간에 고속정을 이용한 해안 마을을 습격했고, 이로 인한 사망자가 수천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것이 바로 73명이 사망한 1976년 민간 여객기에 폭파사건이다. 이 5명의 주 임무는 바로 이런 테러공격의 정보를 쿠바 정부에 전송하는 것이었다.

테러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

쿠바 정부는 미국 정부에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그들의 기록을 미연방수사국(FBI)에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 미연방수사국(FBI)은 "간첩행위 모의", "국가안보위협"이라는 죄목으로 즉각 이들을 체포했다.

노엄 촘스키는 이 사건을 두고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노언 촘스키는 "쿠바는 미국에게 테러와의 싸움에서 협력하자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미국도 사실상 쿠바에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을 보내면서도, 그 다음에 한 일은 테러 조직에 잠입했던 쿠바인들을 체포하는 것이었다"고 비난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26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이 중 24가지는 가명사용, 정식으로 외국 정보원 등록을 하지 않고 정보활동을 한 혐의였으며, 나머지 두 가지는 살인예비 음모와 테러예비 음모였다.

그러나 119권에 달하는 재판기록, 15건의 사전 심문기록, 800여점의 증거물품이 제시되었고, 두 명의 퇴역 미군 장성 및 백악관 대통령 고문을 비롯한 70여명이 넘는 증인들이 증언대에 섰다.이 증거에는 미중앙정보국(CIA)이 확보한 2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교신기록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미국에 '테러'를 가할 '음모'를 꾸몄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10년 동안 미국에 수감되어 있는 '쿠바5인' [출처: www.freethefive.org]

그리고 반 쿠바 정서가 팽배한 마이애미에서 열린 재판에서 에르난데스와 안토니오 게레로, 라몬 라바니뇨는 종신형, 르네 곤잘레스와 페르난도 곤잘레스는 각각 징역 19년형, 15년 형이 내려졌다.

자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수집을 했던 '쿠바 5인'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2007년 5월 테러혐의로 법정에 섰던 루이스 포사다 카릴레스의 석방과 대조된다. 루이스 포사다 카릴레스는 1961년 쿠바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위한 픽스만 작전, 73명이 사망한 76년 쿠바 민간비행기 폭파사건을 비롯해 니카라과의 악명 높은 콘트라 전쟁을 직접지원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부당한 인권유린의 10년

'쿠바 5인'은 체포되고 나서 재판이 열리기까지 17개월 동안 독방에 갖혀 서로간의 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의 접견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심지어 재판의 향방에 있어 결정적 시기인 1심 선고 공판 전 48일간과 항소심을 준비하던 2003년 3월에는 재차 독방에 수감돼 변호인의 접견마저 차단 당했다. '국가 안보상'의 이유를 내건 미국 정부의 '특별행정조치'에 따라서다.

여기에 대새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2007년 1월 미 국부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이런 조치는 불필요하게 가혹한 것이며, 수감자들에 대한 인도적 조치를 위한 기준과 가족 생활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5년 3월에도 '자의적 구금에 관한 유엔 워킹그룹(United Nations 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이 쿠바 5인에 대한 구금이 자의적인 것이자 시민적, 정치적 자유에 관한 국제협약 14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수정 조치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린바 있다.

끈질긴 법정 안팎의 싸움 끝에 2008년 6월 연방항소법원은 '쿠바 5인'에 대한 혐의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신 5인 중 종신형을 받은 3인의 형량을 무효화했다. 연방항소법원은 '최고급 정보를 모으거나 전송한 바가 없다'고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쿠바 5인 석방을 위한 전국 위원회'는 그들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쿠바 5인 석방을 위한 전국 위원회'의 글로리아 라 리바는 "이 다섯명은 무죄다. 그들은 테러를 막아 생명을 구했다. 그들은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의 국민들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안토니오 게레로의 최후진술

  안토니오 게레로 [출처: www.freethefive.org]
CIA가 반혁명적인 요원을 모집하고, 돈을 주고 훈련 시키는 것, 피그만 침략, 몽구스 작전, 군사개입을 위한 근거들, 국가 수장들에 대한 암살 기도, 무상 그룹의 침투, 사보타지, 공해 침공, 정찰 비행, 화약 약품 뿌리기, 해안선과 빌딩에 총을 쏘는 것, 호텔과 다른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여행 중심지에 폭탄 터트리기, 모든 종류의 잔혹하고 사악한 도발 행위등이 (쿠바에 대한 공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3천 4백명 이상이 사망했고, 2천명 이상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활의 원천인 경제에 실질적으로 해를 입었고, 수십만의 쿠바인들이 가혹한 봉쇄조치와 적대적인 냉전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있습니다. 테러와 어려움, 고통은 전체 쿠바인들이 겪고 있습니다...

이 나라(미국)은 이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실제로 아무것도 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격은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런 행동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마이애미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국과 다른 언론은 쿠바 민중에 대한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쿠바민중을 증오합니까?
쿠바가 다른 길을 가고 있어서입니까?
우리가 사회주의를 원하고 있어서입니까?
문맹을 퇴치해서 입니까?
무상교육을 해서입니까, 아니면 무상의료를 해서입니까?
아니면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여명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입니까?

쿠바는 한번도 미국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테러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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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ban five , 쿠바 5인 , 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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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김영임

    정말 우린 미국이란 나라의 환상에 빠져있는 것이 맞습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다시 생각해보고 통찰력깊게 알아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