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번, 스물 두번, 스물 세번...카운터가 올라갈 때마다 두려워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들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언제까지 촛불을 들 수 있을지 사실은 언제까지 사람들이 촛불을 들러 나올지.
오늘은 몇 명이나 왔나...고개를 주억거리며 머릿수를 세는 모양새가 자신에게도 별로 마뜩치 않다. 그래도 센다. 지난주보다 적구나, 지난 주에는 적더니 이번 주는 또 늘었네. 주마다 일희일비한다. 그렇게 31번째의 수원촛불 문화제가 지났다.
날씨가 추워졌다. 수원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 선전전 형태로 하면 어떨까, 참여하는 사람들이 좀더 재밌고 주체적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얼까. 촛불을 잘 해나가기 위한 고민은 끊임이 없다. 어쨌든 추워져서 그런지 새로울 게 없어서 그런지 머릿수는 줄고 있다. 이러다 보니 좀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 옮기거나 문화제가 아닌 다른 형태로 바꿔보자는 의견도 많아졌다. 그래, 뭐라도 좋다. 뭐라도 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
처음 시작은 그랬다. 어느 날인가, 수원역을 지나는 길에 언니 한명이 아이 하나를 업고, 하나는 손에 잡고 커다란 피켓을 들고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서울을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촛불을 들어야겠다고 지나는 이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때가 5월.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던 아주 이른 여름의 문턱이었다.
지나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고 몇 명은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얼어붙은 듯 그녀를 쳐다보며 그토록 수 없이 서 있었던 수원역 광장의 숱한 문화제와 지겹도록 많았던 집회보다 커다란 공명이 울렸다. 그래서 수원촛불은 시작되었다.
서울로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많게는 3백 명이 모여서 불을 밝히기도 했다. 종교인들도 나섰고, 네티즌들도 모였다. 소극적이던 단체 회원들도 어떻게든 자리를 채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청계광장을 벗어난 사람들이 청와대를 향해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할 때는 남문까지 도로 행진을 하기도 했다. 조금씩 발을 떼었다. 학생들을 감시하기 위해 찾아온 교육청 관계자들과 싸우고 어청수 경찰청장의 현상수배 전단을 뜯어 버리는 경찰들과 다투었다. 요리를 하기도 했고 기륭전자 노동자,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이 찾아와 투쟁의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수원역은 기억이 많다. 파병반대농성장이 들어섰던,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길거리 평화행동이 매주 이어졌던, 평택미군기지반대, 한미FTA 반대, 비정규직 악법철폐투쟁의 깃발이 나부꼈던 광장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이슈들이 번쩍이다가도 시르죽었던 광장이었다. 시르죽을 때마다 뭔가 아쉬우면서도 어쩔 수 없으니까... 마음을 달래면서 다음을 기약했던 광장이었다. 그래서 그런 많은 기억 때문에 7개월을 이어온 수원촛불에 대한 걱정이 아직도 떠나지 않는가 보다.
지난 30번째 수원촛불은 경기도 지역의 촛불들이 모였다. 안산, 산본, 용인, 부천...수원처럼 문화제로 진행하지 않더라도 적게라도 모여서 어우러지는 촛불들이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에게 감사하고 격려하고 반가워했다. 단 한사람이라도 밝힐 수 있다면 촛불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 그들이 하고 싶은 인사였다고 생각했다.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내심 이렇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한 것이 촛불의 힘이구나...감사한 마음을 간직했다. 얼큰한 마음은 이명박 5년 동안, 촛불 못 들것도 없겠다는 용기를 샘솟게 했다.
그러나 그게 다여서는 안 되겠다 싶다. 촛불이 공간을 초월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는 동네, 내가 다니는 공장의 한 켠, 내가 사는 집의 베란다에서 들 수 있는 촛불은 없겠나 싶다. 새벽 이른 시간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돌리면서 단 한사람이라도 변화시키려는 진심 같은 것. 기륭과 강남성모병원에서 절망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동행’하는 것. 모질고 표독스런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같이 꾸는 새로운 꿈같은 것. 그런 것들이 촛불이 진화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이명박을 당선시켰던 놀라운 이기심. 경제를 살리면 무조건 된다고 믿었던 우리들의 속도. 조중동이나 뉴라이트같은 퇴행이 아직도 보편적인 기준이 되는 우매함. 경쟁과 효율성이 자신만은 행복하게 할꺼라고 믿는 기만. 울부짖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모른 척할 수 있는 무심함. 1등만이 최고라며 아이들을 죽게 만드는 잔인함. 이런 것들에 대한 반성.
그런 모든 것을 넘어, 새로운 세상과 행복에 대한 꿈을 나는, 같이 꾸고 싶다. 31번 동안 촛불을 들면서도 이번마저 저버릴 희망이면 어쩔까 두려워하는 소심한 운동권이 꾸는 기다림에 대한 생각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수원역 광장에서 들고 있는 내, 두려운 기다림의 목적은 행복이다.
어느날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절대 행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어딘가 다른 곳에 행복이 있을꺼야.” “지금 행복은 없어. 나중에 행복이 찾아 올꺼야. 돈을 많이 벌고, 공부를 많이 하고, 힘이 세지면 그때 행복이 찾아올꺼야.”라고 말이죠.
그러나 아무리 걷고 또 걷고 또 걸어도 행복은 찾아와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을 찾으려던 사람들은 급기야 서로 싸우게 되었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의 것을 빼앗고, 보다 행복하고 싶다면서 산을 깍고, 동물들에게 나쁜 것을 먹이고, 그리고는 전쟁까지 벌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더 멀리 멀리 도망 가 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다시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터를 잃은 노동자, 부모를 잃은 어린이,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소녀, 나라를 잃은 10대 남자애, 국경을 넘어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 태어나서 한번도 앉아 본적 없는 중증 장애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여자애, 집이 없어 거리에서 잠을 자는 할아버지,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살고 싶은 트랜스젠더들이 모여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행복은 지금, 여기에,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좋은 것 말이야. 부모가 없고, 가난하고, 장애가 있고,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이 달라도, 집이 없고, 나이가 어리고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모두 행복한 것 말이야. 그러려면 좀 더 느리고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겠지만 말이야. 우리 더 이상 슬프지 말자. 행복을 찾는다면서 행복을 버리지 말자고.
행복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 힘없는 이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와중에는 오지 않습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이윤만을 최선으로 여기는 이기심 앞에서 멀리 도망가 버립니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작고 어린 생명이 편안한 잠을 청하는 때 찾아옵니다. 당신과 함께 찾고 싶은 행복이 그것입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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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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