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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배제하는 법, 사람을 생각하는 법

미디어행동, "방송통신기본법 말고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유영주 기자 2008.11.25 09:29

“한 가지 합의하고 고민할 거는, 지금 법 제정이 야만적이고 엘리트적이라는 건데, 얼마나 세상을 잘 알고 있는지, 전문성은 얼마나 되는지, 소통 능력은 얼마나 되는 지 돌아보고, 법 제정 과정이 좀 인간적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법 제정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법이 되고, 제정 과정도 인간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준비한 방송통신발전에관한기본법(방통기본법) 제정 내용과 과정이 미디어의 중요 구성원인 ‘시민’을 중심에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4일 전국언론노조와 미디어행동이 공동 주최한 기획토론회 ‘방송통신발전에관한기본법에는 기본이 빠졌다’에서는 방통위가 의결한 방통기본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는 가운데, 대안으로서의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을 제시해 관심을 끌었다.

▲  언론노조.미디어행동이 공동주최한 기획토론회 '방송통신발전에관한기본법에는 기본이 빠졌다'에서 주최측은 대안 법률로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을 제시했다.

시민을 배제한 방통기본법, 시민 권익을 고려한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방통위가 방통기본법을 추진하기 위해 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건 지난 6월 경.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기구 통합으로서의 방통위가 논란 속에 자리잡았지만, 융합 환경에 조응하는 법제도 마련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되었다.

방통위는 8월 28일 ‘방송통신의 융합 촉진 및 발전을 위한 기본법 제정 발표’를 하고, 9월 부처간 협의를 하는 가운데 10월 31일 입법 예고했다. 계속해서 11월 21일 공청회와 24일 방통위 회의를 통해 의결한 상태다. 의결된 방통기본법은 다음 달 중 법제처 심사를 마치고,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방통위가 7월 경 방통기본법의 얼개가 담긴 법안 내용을 사업자와 미디어사회단체에 흘리면서, 방통기본법 제정에 대한 방송, 통신, 사업자, 미디어사회단체 등 관계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융합 정책이 압축된 모법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큰 긴장을 유발했다. 모법에 따라 사업법과 시행령이 만들어지게 되고, 방송법, 국가기간방송법 등 관련 법들도 연관 맺게 되는데, 따라서 이들 법안은 곧 관계자의 이해관계를 일차적으로 규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방통위가 이 법을 제정한 주요한 목적의 하나로 “방통발전기금을 설치해 지식경제부가 현재 관할하고 있는 정보통신진흥기금을 흡수하는 것”에 이어서 케이블이나 통신사업자도 방통발전기금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디지털방송콘텐츠진흥법’ 제정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어 방통위가 정보통신진흥기금에 대한 관할권을 갖게 되면 이는 디지털방송콘텐츠 진흥을 위한 유력한 재원이 된다.

김명준 소장이 법 제정 내용과 과정이 인간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 이유는 뭘까.

조준상 소장은 “방통기본법은 개별 사업법을 아우르고 전체 커뮤니케이션 구조의 발전 방향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원칙이 부재하다”고 말했다. 공공복리의 증진이나 산업 발전이라는 추상적인 목표만 언급될 뿐 이를 실현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조준상 소장은 “기금 문제가 상징하듯 방송통신위의 권한과 관할 영역을 넓히는 데 몰두하고 있을 뿐”이라고 혹평했다.

과정에 있어서도 방통위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조준상 소장은 21일 열린 공청회가 “성향에 관계없이 시민사회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며 방통기본법의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시민’을 배제한 점을 문제 삼았다. 조준상 소장은 “기금에 대한 높은 관심이 상징하듯, 사업자들로만 패널을 꾸리고 학계 인사들을 양념처럼 배치했다”며 이처럼 “시민사회가 배제된 것이 우연이 아닌데, 방통기본법에 시민의 권리와 공공복리를 위한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공청회 패널 구성도 법안 내용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방통위의 시민사회와의 소통 단절은 비단 방통기본법 뿐만이 아니다. 이미 방송법시행령 개정 공청회가 두 차례 무산된 바 있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배제한 채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개정 내용을 기정사실화 한 바 있다. 오죽하면 미디어행동 등 미디어사회단체가 공청회 형식의 토론회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방통위는 이 자리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은 정부(국가)의 시민사회 배제가 낳은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방통기본법 마련 과정이 방송 분야와 통신 분야 이해관계자와 사업자를 우선 고려한 반면 ‘시민’의 목소리는 배제했고, 제시된 법안 내용에서도 시민의 권익은 악세사리로 취급됐다.

지난 7월 경 미디어행동은 방통통합법FT를 구성, 방통위의 방통기본법을 검토하는 가운데, 대안 법률안을 마련하는 작업을 펼쳤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에 대해 김명준 소장은 “그동안 한군데 모이기 어려웠던 진영들, 방송과 정보통신, 주류영역과 대안영역의 주체들이 모인 첫 기회였고, 대안 법률을 만든 첫컷 케이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아직은 작고 거칠지만 주요한 출발인 것 같고, 이후 논의가 발전하면 한국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끌고가고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담론 구조를 만들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며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이 총론 채프터 중심의 논의로 이루어진만큼 한계를 보완할 필요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융합정책 논의와 법안 마련 과정에 방송과 통신의 대립으로 비쳐지는 데 대해 김명준 소장은 “미국의 경우 통신에서 네트워크 중심성과 관련한 논의가 있고, 한국에서도 통신 영역에 정보통신운동의 목소리도 자리잡고 있다”며 “망에서 관철될 원리에 대한 사회적 토론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기했다.

방통기본법, 방송 개념 소멸된 방송통신 개념 정의

방통기본법은 총 7장으로, 제1장 총칙, 제2장 방송통신의 발전, 제3장 방송통신기술의 진흥 및 인력양성 등, 제4장 방송통신발전기금, 제5장 방송통신기술 기준 등, 제6장 방송통신 재난관리, 제7장 보칙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디어사회단체는 어떤 부분을 문제 삼나.

우선 총칙 제1조에서 “공공복리의 증진과 방송통신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선언했지만 법체계에서 공공복리의 증진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조준상 소장은 “공공복리의 증진이라는 목적이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며 “시민과 시청자, 이용자의 권리, 보편적 서비스와 관련된 내용을 강화하는 공공복리 증진의 별도의 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준상 소장은 총칙에 정의된 개념에 대해 “방통위는 기존 방송과 통신의 개념을 유지하면서 이를 포괄하여 하나로 묶는 방송통신 개념을 신설했지만 이는 기존 통신 개념의 단순 확장일 뿐”이라고 짚었다.

방통기본법이 방송통신의 개념을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방송통신 콘텐츠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과 수단"으로 정의함으로써 방송 개념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파법과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 개념이 ‘공중에 대한 송신’으로 정의된 바, 융합 환경에서도 방송의 특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방송통신의 개념에 대해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에서는 “유선 무선 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공중(개별계약에 의한 수신자 포함)에게 신호를 송신하거나, 송신자(개인과 집단을 포함)와 수신자(개인과 집단을 포함)가 신호를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으로 정의해 대조된다.

그밖에 △방송통신서비스(방송통신설비를 이용하여 방송통신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를 위해 방송통신설비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한 정의 △‘기본적 방송통신서비스'라는 신설된 개념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미디어 컨텐츠 생산자와 이용자 권리 모두 고려한 전자커뮤니케이션 개념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은 무엇보다 융합 환경에서 △시민과 이용자의 권익보호 △사업자 간의 공정경쟁 △수평적 규제체계의 유연한 도입 등을 핵심 문제의식으로 하고 있다.

조준상 소장은 “전통적인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개인 커뮤니케이션을 포괄한다는 취지에서 법안의 명칭은 ‘방송통신'이라는 병렬을 지양하고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으로 규정했다”고 명칭의 취지를 소개하고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의 내용에 따라 방송법의 개정이 불가피해 기존 방송법 개정 작업도 병행했다”고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가기간방송법에 대해서는 제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의 후속작업으로 ‘보편적 방송서비스사업법'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국가기간방송법이 별도로 제정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의 체계는 제1장 총칙, 제2장 방송통신위원회, 제3장 공공복리의 증진, 제4장 전자커뮤니케이션의 발전, 제5장 전자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흥 및 인력양성 등, 제6장 전자커뮤니케이션 발전기금, 제7장 전자커뮤니케이션 기술기준 등, 제8장 전자커뮤니케이션 재난관리, 제9장 보칙 등으로 구성돼 있다.

조준상 소장은 특히 제3장 공공복리의 증진 장을 별도로 만든 데 대해 “‘시민'(대한민국 영토 내 모든 공공의 구성원)을 정의하는 한편, ‘이용자'(전자커뮤니케이션 사업자가 아닌 자로서, 전자커뮤니케이션 망을 통하여 신호를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사람, 전자커뮤니케이션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 전자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하는 시민의 능력을 높이는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해당 단체를 포함한다)를 정의했다”고 말하고 “여기서 이용자는 전통적인 방송의 시청자와 통신의 이용자는 물론 콘텐츠 제작이나, 시민의 전자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이는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정의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 생산 주체 뿐 아니라 이용하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기조를 반영한 대목이다.

미디어행동 방송통신TF 활동을 함께 해온 김지현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활동가도 “국민은 국적의 문제로 한정될 수 있기 때문에, 국적을 넘어서 공간 영토 거주하는 모든 사회적 주체의 권리 보장하는 차원에서 시민으로 규정할 필요”를 제기하고,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정책이 시장 친화적, 정권 친화적 구조를 만들려는 만큼 시민사회의 개입을 통해 정책과 법안을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은 또한 방통통신위원회의 위상으로 ‘독립 합의제 행정기구‘로 위치지음으로서 방통위의 정치적 독립과 위원장의 독단적 운영을 제도적으로 방지한다는 원칙을 살렸다.

미디어행동은 방통위의 방통기본법 제정 추진에 맞서 전자커뮤니케이션기본법 토론을 활성화해 쟁점에 부쳐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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