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정치적 요구가 위기극복 대안

안와르 샤이크 미국 뉴스쿨대 교수 내한 강연

  사진/ 하주영
“혁명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위기로부터 벗어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안와르 샤이크(Anwar Shaikh) 미국 뉴스쿨대 경제학과 교수는 12일 ‘세계화와 자유무역이라는 신화’라는 강연에서 자본주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요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파키스탄 출신인 안와르 샤이크 교수는 “산불이 난 이후에 나무들이 다시 생겨난 것과 비교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산에 불지른 인간을 고맙게 생각할 수는 없다”며 “자연적으로 자본주의가 회복되도록 시장에 맡겨놓으면 훨씬 더 길게 가고 회복이 안되기 때문에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요구해서 이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세계적인 맑스주의 경제학자이기도 한 그는 “맑스주의 이론의 핵심은... 무질서를 통해서 질서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무질서라는 점을 무시한 채 질서만 강조하고 있다”며 위기분석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무역개방과 자유무역은 선진국 기업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밖에 없고, 기술이 낮은 국가들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도 엄청난 무역적자와 만성적인 대량 실업에 허덕이게 된다며 자유무역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갤브레이스가 1954년에 쓴《대공황 The Great Crash, 1929》의 상황과 지금이 매우 흡사하다고 보았다. “현재 핵심은 국가지출을 통해서 이 위기를 벗어 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인데, 이 문제는 위기의 크기와 속도를 알아야 하는데 현재 위기의 실제 규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며 더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복지국가의 재등장을 예고하면서도 복지국가의 돈을 댄 것은 임금노동자들임을 강조했다. 특히 스웨덴에서 부자들이 낸 세금으로 복지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낸 세금으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중국역할론 크지 않다.

한편, 중국역할론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는데, 세계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중국경제도 매우 위험한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초청으로 내방한 안와르 샤이크는 1972년부터 미국의 진보적인 대학인 뉴스쿨에 재직하면서, 맑스주의자로서 위기이론의 세계적인 연구자로 꼽히고 있다.

아래는 강연과 질의응답을 요약하여 재정리한 내용이다.

  사진/ 하주영

질서의 경제학 VS 무질서의 경제학

맑스에게 자본주의 논리의 핵심은 아주 간단한 개념으로 이루어졌다. 무질서를 통한 질서라는 개념이다. 무질서를 통해서 질서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기가 있고 거품이 있고 좋은 시절과 나쁜 시절이 있어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은 무질서라는 점을 무시한 채 질서만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한 측면을 보고 있지만 다른 면은 보고 있지 않다. 시장의 힘이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속에서 완전경쟁, 완벽한 지식과 같은 완벽함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 비주류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다른 면을 보고 있다. 무질서, 불균형들이다. 자본주의는 모두 완벽한 것이 아니라 불확정적이고 우연적(Contingent)이다. 신고전파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작고 비주류에서는 국가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이슈는 시장의 힘과 시장의 한계를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다. 동시에 무질서가 존재한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이론을 분석하면서 이런 점들을 발표했다. 시장은 물론 아주 강한 체제를 만들어내지만 이 속에 한계가 내재해 있다. 이런 한계는 바로 이윤창출 동기에서 나온다.


자유무역은 없었고, 없다.

자유무역이론은 자동적으로 무역균형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자유무역을 하게 되면 수입과 수출이 자동적으로 균형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자유무역 선진국들의 무역균형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미국과 일본의 무역을 보면 무역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변동환율에서는 더 차이가 나고 있다. 자유무역의 시작과 함께 차이는 더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자유무역과는 다른 결과다. 영국과 캐나다를 봐도 균형은 없고 독일과 호주도 비슷하다. 고용도 불안전하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최근 OECD국가 내에서도 실업율이 5-25%까지 상승했다. ILO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3억 정도의 사람들이 일을 못하고 있거나 실업상태에 있다.

선진국이 자유무역을 지지하면서 그 자신들은 이를 철저히 따른 적이 없다. 한국의 경우도 자유무역이 한국의 이익이 있을 때에만 지지했다.

무역적자를 막기 위해서는 해외차입과 해외부채로 막아야 한다. 미국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 엄청난 무역적자와 해외부채가 존재한다. 다른 국가가 이런 조건이라면 못 견뎠을 것이다. 다른 국가라면 환율과 경제가 붕괴하게 될 것이지만 미국은 달러를 발행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많은 돈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무역개방이 주는 이익은 선진국기업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은 국가간 무역이기 보다는 특별한 기업영역들의 무역이다. 이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미국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가 생길 시점에서 미 의회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영향력을 조사한 적이 있다. 23명의 경제학자들에게 이 연구를 부탁했는데, 21명이 북미자유무역협정이 좋을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 21명이 이용했던 모델을 봤는데, 모두 스탠더드 한 무역이론을 전제로 조사했다. 그 중에는 완전고용을 포함한 것도 있었다.

멕시코를 예로 들면, 이익보다는 엄청난 피해를 야기했다. 미국으로 일자를 구하기 위해 넘어온 수많은 멕시코 노동자들도 있다. 그래서 자유무역(free trade)과 사회무역(social trade)을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자본주의와 실업

자본가들은 경쟁을 위해 기계화를 추구한다. 기계화는 실업을 만들지만 성장을 통해 다시 고용을 하게 된다고 자본가들은 주장한다. 맑스는 이런 두 부분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실업자들이 돌고돈다고 분석했다. 이 실업자들은 한나라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도처에 존재한다. 결국 세계화를 통해서 세계노동인구의 3분의1이 실업이나 과소고용상태에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시작인데, 왜냐면 로봇기술(자동화기술)이 발달하면 살아 있는 노동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성장이 실업자들을 다시 고용할 수 없다는 계산이 쉽게 나온다. 전쟁과 질병, 인구조절 같은 것들이 생기면서 과잉인구는 쉽게 무시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위해 만든 시스템인데 인간이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요즘 영화들은 사람들 죽이는데 이게 현실이다. (터미네이터 1,2를 학생들에게 보게 하는데, 이 영화는 미래 로봇들이 인간을 대상으로 반항하고 인간을 죽이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우리시대 패러독스인 우리가 만든 것들이 우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봇이 우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로봇이 이윤이 아닌 사회를 위해 생산되어야 한다. 자본의 한계, 이 한계를 어떻게 사회운동이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한다.

핵심적인 이슈는 이윤동기인데 이윤동기에 반하면 자본의 저항과 반대가 있게 된다. 이것들은 단계적으로 살펴봐야 하는데, 모든 인센티브는 지역적이고 특별하기 때문이다. 어떤 영역에서는 이윤동기가 적용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의약품에서는 이윤동기를 배제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윤창출을 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환경운동에서는 바로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


세계경제위기

  사진/ 하주영

1954년 갤브레이스가 쓴《대공황 The Great Crash, 1929》을 보면 1929년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욕심이나 의식들이 작용했다. 책의 마지막에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그는 그게 가능하다고 봤다. 앞으로도 월스트리트모델이 다시 등장할 거라 보고 있는데,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자본주의는 굉장히 역동적인데 이윤이라는 것은 상당한 동기이다. 그리고 규제라는 것은 규제를 실행하는 사람들보다 강할 수는 없다. 이윤동기가 있는 이상 규제가 많더라도 정치적인 많은 것들을 이용해서 생겨난다.

미국 경제위기의 책임을 부시에게 모든 잘못을 지울 수는 없다.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시장이 모든 조정과 규제에서 벗어났다. 스웨덴이나 덴마크에서도 불평등이 높아졌고 세계화의 물결이 개발도상국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지만 부시의 큰 영향은 전쟁이라는 것인데, 중동과 이라크 뿐아니라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수많은 노동계급이 전쟁을 통해 죽어갔다. 그래서 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적인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마피아가 일을 처리할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대부>에서 보듯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할 때 마피아 내부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자본의 청산과정과 유사하다.

현재 핵심은 국가지출을 통해서 이 위기를 벗어 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인데, 이 문제는 위기의 크기와 속도를 알아야 하는데 현재 위기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은 언론이나 미디어들이 보는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국가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바마 정권의 장점은 이 위기를 현실적인 것으로 보고 있고 이 위기를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1930년대에 경험했듯이 국가동원에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이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능력은 상당히 부족하다. 오바마도 군사프로젝트가 매우 비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느 나라든 항상 전쟁이 가능한 나라는 없다.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전쟁을 할 수도 없다. 전쟁은 전략적으로 발생하고 많은 나라를 동원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미국이 전략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오바마는 전쟁을 기반으로 한 국제정책에서는 벗어날 것이라 본다. 전쟁이 미국의 버틸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도 한데, 전쟁을 하면 전 세계 각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방어하는데도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든다. 전쟁은 노동집약적이기보다는 자본집약적이기 때문에 전쟁보다는 건강이나 의료와 같이 노동집약적인 정책을 세울 것이라 본다.


복지국가

케인즈적인 복지국가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는 수많은 실업자들을 복지문제로 다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 복지국가에 누가 돈을 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노동자가 내는 세금과 노동자가 복지로 받는 수혜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가’라는 간단한 질문을 해보자. (가장 강력한 복지국가)스웨덴에서도 보듯이 임노동자들이 받는 복지의 대부분은 그들이 낸 세금이다. 부자와 빈자들 사이에 재분배라기보다는 스웨덴은 임금 노동자들 내부 안에서 재분배가 일어난다. 이속에는 건강, 교육, 도로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노동자들이 받는 복지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세금이 다시 복지로 돌아올 것을 알면 복지국가를 지지할 것이다.


중국역할론

중국이 안정적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은 폭발할 수 있는 시점에 왔다고 본다. 중국은 일본 초기같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결국 이런 성장은 중국을 세계시장에 진입하게 했지만 세계시장은 축소되고 있다. 중국자본주의는 엄청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인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약속했던 부(wealth)가 돌아오지 않을 때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중국정부도 잘 알고 있어서 내부투자를 많이 하기 시작했고, 경제위기 뿐 아니라 정치적 위기도 이를 통해 극복하려고 있다. 인도도 비슷한 약속을 했지만 상황은 중국과 유사하고 오히려 중국보다 더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선택

개도국이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내수중심의) 경제계획을 세워야 할지, 수출위주로 나갈지 많은 나라들에서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내수중심의 경제계획과 외부적 수출위주의 경제계획 양자의 문제만으로 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더 중요하게 세계지식자원을 포함해서 ‘개발’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교역’이 꼭 이윤동기에 의해서만 지배되지 않는다. 모든 국가들은 이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이 점들을 어떤 이해관계 속에 집어넣지 말고 봐야 할 것 같다.

경제적 조건과 정치적 요구

만약, 혁명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위기로부터 벗어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위기가 바로 회복의 시점이며, 무질서 속에서 생기는 질서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적 조건을 만들 수 있지만 이것을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실업이 발생하고 수많은 기업이 무너질 것이다. 실업이 증가하면서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으로 일하게 될 것이지만 고용은 늘어날 것이다. 수많은 기업이 실패하겠지만 생존한 기업들이 그 재산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맑스가 지적했듯이 위기가 회복을 위한 경제적 조건을 만들어 내는데 정치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산불이 난 이후에 나무들이 다시 생겨난 것과 비교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산에 불을 지른 사람을 고맙게 생각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는 가능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이것이 정치적 변화가 가능한 근거들로 작동한다. 때문에 지금이 바로 정치적인 요구를 할 시기이다. 자연적으로 자본주의가 회복되도록 시장에 맡겨놓으면 훨씬 더 길게 가고 회복이 안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요구해서 이를 바꿔나가야 한다. 과거 일본에서 비슷한 일이 생겨났는데, 1990년대 일본은 큰 불황을 겪었다. 이를 자연적으로 치유하려다 보니 길게 갔고 오늘 다시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