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노사민정 합의 100일, 노동자만 당했다"

한국노총 간부들 100일 기념 토론회서 정부·재계 강력 비난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종각 정책본부장 등 한국노총 간부들이 노사민정 합의 100일을 놓고 정부와 재계를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난했다. 4일 여의도 국민일보 CCMM 코스모홀에서는 2.23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 합의 100일을 기념하는 성과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토론회 축사에서 "솔직히 착잡하다"며 축사가 아닌 자신의 심경을 먼저 밝혔다. 장 위원장은 이어 "정부가 노사민정 합의정신을 위반하고 공기업 초임을 삭감했다. 내년엔 전쟁이 온다"고 경고했다. 장 위원장은 "지금 비정규직이나 최저임금법 등 여타 진행과정을 봤을때 합리적 노동운동이 과연 맞는가 하는 의문이 강하다"고 정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장 위원장이 선 단상 앞에는 정종수 노동부 차관과 이영배 경총 부회장이 앉아 있었다. 애초 토론회 축사에는 이영희 노동부장관과 이수영 경총회장이 참석키로 했다.

장석춘 위원장은 투쟁의 장에 스스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장 위원장은 자신이 가진 있는 노선이 현시기에 맞는지 고민했을때 답이 안나온다고 토로했다. 의례적인 압박용 멘트 일 수 있지만 노동부 차관이 참석한 자리에서 한국노총 운동노선까지 언급한 것은 그만큼 노사민정 합의 이행 과정이 노동자에겐 불리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 되기도 했다. 지난 4월 28일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지 고민도 없이 몇 주 만에 뚝딱 해서 내용을 내 놓았다”고 한국노총을 비난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만 이용당한다며 애초 노사민정 합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2.23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 합의문 발표. 왼쪽부터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이세중 공동의장, 김대모 노사정위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이영희 노동부 장관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날 노사민정 합의에 대한 비관적 평가는 장석춘 위원장 축사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토론자로 나선 한국노총 소속 현장 간부도 합의이행 과정에서 느낀 솔직한 평가를 쏟아냈다. 윤정일 한국노총 경산지부장은 사업주들의 노사민정 선언 '악용'을 폭로했다.

윤 지부장은 "생산현장에서 근로자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위원장에게 노사민정 합의 선언이 상당한 부담인데도 동참했지만 협정식 및 회의 석상에 참가하는 담당 노무자들은 간단한 설명만 듣고 정작 필요한 토론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지부장은 "이들이 노동부에서 제공하는 혜택만 듣고 이에 상응하는 사업주들의 책무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하고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타이코에이엠피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정일 지부장은 주발제로 나선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의 발제문에 모범적인 합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윤 지부장은 "근로자들은 인원정리를 막기위해 스스로 임금을 동결하자고 하니 사업주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말한다"고 전했다. 윤정일 지부장은 "사업주들은 국제적인 구조조정 분위기에 편승해 사무직 2천여 만원 대졸초임을 동결하자고 하고, 구조조정까지 감행하면서 각종 고용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역시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도 "저희가 남좋은 일만 하는 느낌이 든다"고 포문을 열었다. 김종각 본부장은 이날 토론회가 임금만 가지고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노사민정 합의는 임금을 양보하더라도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보고 고용에 주안점을 두고 시작했다"면서 "고용성과에 대한 평가가 없는 것은 합의에 참여한 노조를 어렵게 한 게 간접적으로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의 이후 정부와 재계의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김 본부장은 "합의이후 대졸초임삭감, 공기업 초임 삭감과 구조조정, 공기업 단협에 대한 감사원의 직접적 개입은 위기 극복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합의에 참여한 한국노총이 움직일 여지를 없게하고 조직원에게 비난을 받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성토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한국노총 다른 간부들 역시 주 발제자들의 발제문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모습을 보여 한국노총 내 합의 100일에 대한 기본 시각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