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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psidedownworld.org] |
유엔(UN) 총회는 30일 온두라스 쿠데타가 무효라고 결의했다. 사실상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다.
셀라야 대통령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업고 2일 귀국하겠다는 입장이다. 셀라야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대통령, 미주기구(OAS) 의장이 귀국길에 동행하겠다는 의사를 제안해 왔다고 덧붙였다.
앞서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중남미 국가 지도자들은 29일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서 만나 셀라야 대통령 지지하고 항의표시로 자국 대사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 국가는 온두라스와 무역거래도 이틀동안 중단한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29일 "우리는 쿠데타가 합법적이라고 생각치 않으며 셀라야 대통령은 여전히 그곳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다"며 쿠데타를 반대했다.
러시아와 캐나다도 비난 대열에 합류했고 유럽연합은 중미 국가 대사들을 긴급 소집해 무역 관련 대책을 논의했다.
일단 세계가 한목소리로 셀라야 온두라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향후 온두라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쿠데타 세력이 국제사회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국내의 저항을 힘으로 눌러 유혈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지 언론들은 쿠데타 철회와 셀라야 대통령의 복권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2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나아가 이번 군부 쿠데타로 온두라스가 '제2의 아이티'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온두라스는 제2의 '아이티'가 될 것인가
그렉 그랜든 교수(뉴욕대, 남미 역사)는 미국 시사지 <더 내이션>에 30일 기고한 글에서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징후는 없지만 "미국이 아이티와 유사한 방식으로 온두라스 사태를 접근하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그렉 그랜든 교수는 "1994년 빌 클린턴이 아이티 대통령인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복권시킬 때 아리스티드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며 "그(셀라야)의 복권에 대해서도 조건을 달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0년 아이티 대통령에 선출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은 해방신학에 근거한 빈민운동을 통해 지지를 얻은 인물이다. 군부 쿠데타로 1991년 축출당해 망명길에 올랐다가 미국의 군사개입 후 1994년 귀국했다. 당시 클린턴 미국 정부는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직 복권의 조건으로 국제 자본과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 것을 약속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4년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다시 사임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좌파 성향에 불만을 가진 부시 대통령과 미국 국무부가 그 배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이티는 현재까지도 유엔평화유지군이 치안을 담당하며 빈곤과 정치적 혼돈을 겪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강력한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경우 온두라스가 '제2의 아이티'가 될 것이라는 그랜든 교수의 전망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오바마 셀라야가 껄끄러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민주적 선거가 아니라 군사 쿠데타를 정치적 전환의 수단으로 보는 시대로 회기한다면 끔찍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견 남미 정권 교체의 수단으로 무력 쿠데타를 용인.방조했던 부시 행정부의 '개입주의'와 단절하고 '비개입주의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한편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온두라스 주재 미국 대사를 소환하거나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 역내 국가들이 즉각 자국 대사 소환을 결정한 것과 대비된다.
여기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복잡한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06년 1월 취임한 셀라야 대통령은 중도우파 성향의 자유당 출신이다. 취임 초기만 하더라도 카이보이 부츠를 신은 모습으로 종종 등장하며 부시 행정부와 호흡을 같이했다. 2006년에는 미.중미자유무역협정(CAFTA)도 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셀라야 대통령은 중남미 좌파 국가 지도자들과의 관계도 강화했다.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빈곤추방을 위한 경기부양을 위해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 좌파 국가들과의 교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7년 온두라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다.
2008년에는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질서에 도전하는 미주볼리바르대안(ALBA)에도 가입했다.
마약 단속에서도 미국과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셀라야 대통령은 "마약 밀매 업자들을 쫓는 대신 자원을 투자해서 마약 중독자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국내에서는 재계에 반하는 정책을 펼쳤다. 셀라야 대통령은 "소수기업들이 공정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며 최저임금 60% 인상을 단행했다.
소농 중심의 국제적 농민단체인 비아 캄페시나는 "셀라야 정부는 노동자 및 소농을 보호하고 미주 볼리바르대안(ALBA)의 수호자다. 온두라스 소농들에게 혜택을 주는 행동을 강화했다"고 평가한다.
또 이번 군부 쿠데타의 빌미가 됐던 대통령 중임제를 위한 국민투표 시도도 미국의 입장에서는 환영하기가 힘들다. 중남미 좌파 국가들이 연이어 대통령 연임제한 폐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흐름속에 있기 때문이다.
온두라스 쿠데타, 오바마는 몰랐나?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과연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쿠데타를 알고서도 대처하지 않았는지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군사전문가인 제레미 스카힐은 "미국이 쿠데타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미국이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은 <뉴욕타임스>는 29일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뉴욕타임스>는 "위기가 고조되면서 지난 며칠동안 미국 관리들이 온두라스 정부 및 군 관리들과 있을지도 모를 쿠데타를 막기 위한 토론을 진행했었다"며 "이 토론을 군부에서 깼다"고 익명을 요구한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다른 미국 언론들도 미 당국자의 말을 빌어 토머스 섀넌 미 국무부 중남미 담당 차관보와 온두라스 주재 휴 로런스 미 대사가 셀라야 대통령의 중임을 위한 국민투표 시도로 악화되는 정국에서 대통령을 위시한 군, 정부, 야당 관계자와 폭넓은 교류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온두라스 군부가 쿠데타라는 비상수단을 쓰리라곤 예상치 못했지만, 군부 관계자들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셀라야 대통령의 증언에서도 이번 쿠데타 기도가 미국 정부, 최소한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과의 교감 아래 이루어졌음을 시사했다.
셀라야 대통령은 군인들이 본인을 납치한다음 한 공군기지를 통해 코스타리카로 왔다고 증언했다. 공군기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군참모총장인 루이스 자비에르 프린스 수아소 장군의 허락이 필요했을 것이고, 스쿨 오브 아메리카스(School of Americas)를 거치며 미국 군 관계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온 공군참모총장이 미국측과 교감없이 대통령을 축출하는 일을 진행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쿠데타를 주도한 로메오 바스케스 역시 1946년 스쿨 오브 아메리카스에서 훈련을 받은 인물로 미 군 관계자들과 관계가 깊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중순만 하더라도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책을 교환하고 악수를 하며 대 중남미 정책의 전환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번 온두라스 사태는 오바마 행정부 중남미 정책의 향배를 가늠할 또 다른 시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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