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이수호의 잠행詩간](92)

첫눈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
어느 날 온다
눈 오는 날 밤
먼 하늘 차가운 별은 뜨지 않는다

별들이 눈발이 되어 흩날리는 밤
그렇게 함박꽃 되어 쏟아지는 밤
갓난아기들도 울음을 그치고
코흘리개 애들조차 눈망울 더욱 까매지고
열다섯 순이 봉긋한 가슴
가로등 불빛 아래서 콩닥거리고
군고구마 사들고
따끈한 봉지 쓰다듬으며
단 김 뽀얗게 내뱉으며
눈 꼬리 살짝 치켜 올리며 쳐다보는
단고구마 속처럼 발갛게 익은
너의 얼굴

눈이 내리면
골목이 하얗게 덮이면
헐린 자리마다 불 탄 자리마다
까만 민들레 홀씨
하얀 옥양목 이불에 들고
그래도 벗은 몸 부끄러워
꼭- 안고 눈 감아버리는
그런 밤
첫눈 내리는 밤

* 좀 따뜻했으면 좋겠다. 눈이라도 내려, 하얗게 덮어 줬으면 좋겠다. 남일당, 용산 4구역 바람이 너무 차다. 골목 안 헐린 자리, 불 탄 자리, 따뜻하게 덮어줄 첫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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