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주민번호 도용해 정보 빼가는 경찰이 합법?

[기고] 민주노동당 수사와 영등포 PC방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한 제1차 검증 영장의 비밀이 풀렸다. 24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영등포경찰서 부근 PC방에서 경찰의 불법 해킹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09년 12월 31일 이 PC방의 PC 2대가 89개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민주노동당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PC방에서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영장에 따른 적법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한다.

그간 경찰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및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의 민주노동당 당원 가입 여부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경찰은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검증 방식으로 당원 명단을 확인하려고 시도해 왔다. 지난 4일에는 분당 KT IDC 센터에 대해 대대적으로 압수수색검증을 실시하였고, 7일 새벽에는 민주노동당의 반발과 당직자의 연행을 무릅쓰고 다시 압수수색검증을 실시해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 서버 압수수색검증은 벌써 제3차와 제4차 압수수색검증이었다.

경찰은 이미 지난해 12월 30일자로 첫번째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부받았다. 이때 전교조와 전공노 조합원 120명의 민주노동당 당원번호를 확보했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이 1월 27일 동아일보에 보도가 되자 경찰이 불법적인 해킹 기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전교조, 민주노동당, 서버관리업체 어느 누구도 경찰로부터 이 사건으로 압수수색검증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어디서 영장을 집행했을까?

의혹은 커져만 갔다. 동아일보 기사는 "정진후 위원장이 16차례 당내 투표에 참여했다"는 경찰수사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1월 27일 '뒤늦게서야' 제2차 압수수색검증영장을 발부받아 위 조합원들의 투표 이력을 '공식적으로' 검증하려고 했는데, 그마저 실패했다. 이 시점에는 이미 불법 해킹을 의심한 민주노동당이 사이트를 폐쇄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어디서 이 수사 내용을 확인했을까?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불법해킹 증거를 발표하고 있다. ⓒ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출처: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오늘에서야 이런 의혹들 중 일부가 풀렸다. 경찰은 PC방에서 민주노동당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검증을 실시했다. 검증영장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되어 있었단다(이건 경찰의 주장이다, 실제 검증영장에 그렇게 되어 있는지도 검증해야 할 판이다). 만약 법원이 pc방에서도 검증해도 된다는 영장을 발부했다면, 영장을 신청한 경찰이나 영장을 발부한 법원이나 모두 몹쓸 창의력들이다.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경찰이 이러한 명분과 방식으로 수사를 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은 서버 하드를 빼돌렸다는 혐의로 경찰이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으면서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전교조와 전공노를 잡기 위하여 공당 당직자에 대한 체포와 당사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판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이 문제가 단지 소수 정당 탄압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지목되는 '불법 행위'는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신념이다.

바로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것처럼 무지막지한 국가 폭력에 진압될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정치적 신념'은 가장 높은 보호를 받는 영역이다. 개인정보 이론에서도 정치적 신념이 '가장 민감한 정보' 중 하나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어 왔다. 심지어 정부가 발의하여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개인정보보호법(안)]조차 "정당의 가입.탈퇴 정보"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교사와 공무원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은 경찰의 인권침해적 수사방식이다.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정보를 빼가는 행위가 결코 수사기법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이버 공간에서 주민등록번호는 일종의 열쇠이다. 경찰은 영장이 있으면 남의 집 열쇠를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가? 경찰은 영장이 있으면 당사자들 모르는 새 몰래 집안을 뒤져도 되는가? 경찰은 허가를 받으면 몰래 해킹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방식대로라면 앞으로 압수 영장도 감청 영장도 복잡하게 따로 둘 필요가 없겠다. 그냥 검증 영장 하나로 두루두루 사용하면 될 일이다. 경찰은 전국민의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모두 손에 쥐고 있다. 그러니 대상자의 주민등록번호로 그 사람인 척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일쯤 식은죽 먹기다. 메일을 열어보고, 쪽지도 열어보고, 구매내역도 보고, 신용카드 사용내역도 볼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 사이버 공간에서 보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명심하시라, 대한민국 어디에서든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하여 구축된 모든 개인들의 명단과 이력은 국가가 마음대로 열어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번 사건은 결코 민주노동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교조와 전공노만의 문제도 아니다. 모든 사람의 정보인권에 관한 문제이자 국가와 경찰의 폭력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