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말잔치, G20은 해답이 아니다

[기고] G20 부산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저항한 노동자 시민들의 투쟁

6월 4-5일 부산에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열린 가운데 민주노총 등 전국의 노동자, 사회운동단체들은 4일 오후 2시 부산시청 앞에서 ‘노동탄압 중단, 금융자본통제, G20 규탄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G20의 본질을 폭로하고 ‘G20 의장국’인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이후 부산 시내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우리는 이날 결의대회를 통해 ‘허울뿐인 말잔치’ G20이 세계경제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토론토, 서울 정상회의 등 앞으로 있을 계획에 맞서 대중적 투쟁을 전개하고 진정한 대안을 창출할 것을 결의했다.

G20 회의는 10년 동안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로 진행되다가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최초로 정상회의가 열렸다.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촉발된 전세계적 금융위기가 그 계기였다. 하지만 매번 모호하고 일반적인 합의에만 머물렀을 뿐이다. 이번 부산에서도 “금융부문의 복구와 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해 보다 집중적으로 노력할 것”을 약속했고, “은행은 투명하고 건전한 재무상태를 갖추며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는 개선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이 이상의 구체적 안은 보이지 않거나 후일의 정상회의로 그 결정이 떠넘겨졌다. 금융위기에 투입된 공적 자금을 원인제공자에게 부담시킨다는 원칙만 또 다시 확인했을 뿐, 그나마 거론된 은행세조차도 합의에 실패했다.

우리는 각국 정부에게 ‘금융세계화’를 중단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그러니 이들이 한데 모여 어떤 생산적인 내용을 합의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만 봐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겸업화, 인수합병 및 대형화를 오히려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5월 상원에서 통과된 금융개혁법안 또한 겸업화 금지, 은행 규모의 규제(볼커 룰)에서 모두 실패했으며, 상업은행들의 파생상품 거래를 금지하는 조항조차 현재 삭제 위기에 처했다. (이로써 위기 와중에도 2009년 파생금융상품 거래로 23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낸 대형 은행들은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G20에 참여하는 동안 스스로 나서 “글로벌 금융안정망 확충”을 운운하는 이명박 정부의 이중성이다.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을 이용한 파생금융상품 투기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야기한 지난 3년 동안, 이명박 정부는 현 사태의 역사적 경고를 무시하고 노무현 정권의 금융허브 전략을 충실히 따랐다.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은 한미 FTA 협상결과와는 무관하게 금융시장을 탈규제·개방화했으며, 금융기관별 장벽 해제, 금산분리 완화로 재벌이 은행에 버금가는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리고 은행 예금과 구별되는 고수익, 고위험의 금융투자상품을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함으로써 이번 위기의 주범인 위험 금융상품의 판매를 가능케 했다. 그 이후에도 보험업법 개정, 산업은행 민영화 등 한국 사회의 금융화, 투기화 현상을 강화할 온갖 계획을 하나씩 추진하고 있다. 규제는커녕 금융자본에 날개를 달아준 이명박 정부가 각국 정상 앞에서 ‘글로벌 금융개혁’을 운운하는 것만큼이나 코메디도 없을 것이다.

이번 부산 회의에서의 또 다른 화두는 최근 남유럽 경제위기로 또다시 불거진 재정건전성 문제였다. 선언문은 “EC, ECB, IMF가 단행한 단호한 조치를 환영하는 동시에 성장 친화적인 재정 건전화 조치를 마련할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재정문제가 심각한 국가는 재정 구조조정 속도를 가속화해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그리스 등 남부 유럽의 문제는 결코 그들 국가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 배후에 있는 유로존은 1999년 이래 회원국의 화폐주권을 박탈하고 재정정책을 제한하며 무자비한 노동수탈정책을 강제하여 독일 등 중심부 국가의 경제적 이익에 봉사한 반면, 그리스 등 주변부 국가와 노동자들에게는 재앙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지배엘리트들은 또 다시 노동자들에게 위기비용을 떠넘기고 출혈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결의대회를 통해 과거 수많은 개도국, 최빈국을 파괴한 IMF식 구제금융이 현 유럽 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이번 결의대회를 통해 향후 있을 G20에 맞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총단결하고 노동권 등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옹호할 것을 결의했다. 작년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위기를 핑계로 국제노동기준을 무시하거나 약화시키지 않겠다”라고 합의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자유로운 노조설립 권리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 민주적인 노동조합에 대해 불법적이고 몰상식한 탄압을 일삼고 있다.

또 이명박 정부는 G20을 빌미로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G20 경호 특별법’을 제정해서 집회·시위의 자유 자체를 가로막더니, 이제는 이주노동자, 노점상을 거리청소 하듯 단속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에게는 G20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할 이벤트이지만, 한국의 노동자와 시민에게는 악몽일 뿐이다.

G20이 열리는 11월 11-12일은 공교롭게도 매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기리는 노동자대회를 통해 민중의 단결을 도모했던 기간이다. 최소한의 집회·시위 자유조차 억압하려는 정부는 사활을 걸고 우리 투쟁을 탄압할 것이다. 우리는 G20에 맞서는 과정에서 저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넘어서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그 대안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 다수 대중의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결의대회에서 저들의 세계화에 맞서는 ‘열사정신의 세계화’를 약속했다. 이 말이 갖는 무게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태그

G20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안종석(사회진보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