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무파업의 진실 드러나다

[금속노동자] 전조합원 4시간 파업 단행한 대우조선노조를 가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지난 3월 31일부터 임금인상, 단체협약 갱신, 직급체계, 신입조합원 초임 원상회복, 사내하청 노동자 처우개선 등 5대 요구안을 내걸고 교섭 중이다. 6월말 타결을 목표로 10여 차례 교섭을 진행해 왔지만 노조전임 조항 등 합의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노조는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조합원 총회를 열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 전체 조합원 7446명 중 5294명(86%)이 찬성표를 던졌다. 14일부터 시작된 쟁의행위는 6월 22일 현재 상집 철농 9일째, 노조간부 출퇴근 투쟁 12일째, 노조간부 부분파업투쟁 7일째를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합의가 도출되지 않자, 노조는 22일 전조합원 총파업을 결단했다. ‘19년 무파업’으로 알려진 대우조선의 노동조합이 총력투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23일과 24일까지 연이어 4시간씩 전조합원 파업을 이어갔다. 그 현장을 찾아 ‘19년 무파업’의 진실과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불티나는 ‘투쟁 속보’

12시 점심시간. 작업복을 입은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이 식당에 빼곡히 앉아 식사를 한다. 2만 여 명 노동자들이 일하는 조선소답게 식사인원도 대규모다. 식당 입구 밖까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기다림이 길다. 오늘의 메뉴는 여름철 빠질 수 없는 메뉴 냉면이다.

12시 20분, 냉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운 노동자들이 식당 문을 나선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식당 문을 나서면서 또다시 줄을 선다. 식당 출구에 놓인 대우조선노동조합 ‘투쟁속보’를 집어 들기 위해서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비조합원이 많은데도 ‘투쟁 속보’는 불티났다.

  6월22일 대우조선 민주광장에서 열린 '2010년 투쟁승리를 위한 대우조선 전조합원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에 참석한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민중의례 치르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22일, 이날은 대우조선 노동조합(위원장 최창식)이 점식식사 직 후인 12시 30분부터 ‘2010년 투쟁 승리를 위한 전조합원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선포한 날이다. 노동자들의 손에 들린 ‘투쟁 속보’엔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조합원이 가야할 곳은 민주광장입니다’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민주광장에서 울려퍼진 투쟁의 함성

12시 30분, ‘이곳이 결의대회 장소입니다’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68명의 대의원들은 깃발을 들고 ‘민주광장’을 에워쌌다. 자로 재기라도 한 듯 앞, 뒤, 좌, 우 줄 간격을 맞춘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이 2010 임단투 승리를 위한 팔뚝질을 시작했다.

결의대회 연단에 선 최창식 위원장은 “올해 교섭 초반부터 회사는 한나라당이 날치기한 개정 노동법을 이유로 개악안을 들이대며 생떼를 부렸고, 급기야 시간끌기와 억지주장, 그리고 '배째라' 전법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남은 방법은 정면 돌파 뿐 이라고 강한 어조로 호소했다.

  6월22일 대우조선노조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이 문화공연을 보며 웃음 짓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특히 최위원장은 “8만원 임금인상, 삭감된 신입사원 초임 원상회복, 불합리한 직급체계 개선, 복지 향상, 사내하청 노동자 처우개선 등 어느 하나 동종사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현실을 바꾸겠다는 요구가 대부분이다”며 “내용이 많거나 허무맹랑하지 않고 회사가 들어줄 수 없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6월말 타결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최위원장의 다짐에 조합원들은 ‘투쟁’으로 답했다.

결의대회에 참석한 한 조합원은 “노동조합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절박한 심정으로 나왔다”며 “우리가 싸우면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전했다. 대우조선 전조합원 파업의 힘을 조합원들은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은 30여분동안 야드(구내)행진 후 서문 앞 선각삼거리에서 결의마당을 진행한 후 해산했다.

  6월22일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마치고 조선소 야드 행진에 나선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이 크레인 앞을 지나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400명 참여가 실패일까?

2만 노동자 중 조합원은 7천 4백 여 명, 조합원 중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인원은 400여명. 식당에서 불티나게 팔리던 투쟁속보를 무색케 하는 숫자다. 왜 400명밖에 참석하지 않을까.

집회를 진행하는 동안 노동조합은 끊임없이 관리자들에게 경고했다. “경고합니다. 파업참가들이 내일 업무에 복귀 했을 때 관리자로부터 그 어떤 통제를 받을 때는 생산을 멈출 것입니다”.

실제 집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낙인찍힌 사람들이란다. 결의대회에 참가한 한 조합원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파업에 동조해요. 하지만 이곳에 오지 못하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결의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걸 모두 알고 온 사람들입니다”라며 노조활동에 대한 현장 통제가 하루이틀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전한다. 실제 86%라는 압도적 파업 찬성률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6월22일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이 조선소 야드를 행진하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입사한지 15년째라고 밝힌 참가자는 노조활동을 하지 않는 입사동기와 자신은 월급 20여 만원 차이가 난다고 한다. 진급과 호봉에서 차별을 두기가 일쑤고, 신입사원들은 직반장이 1:1로 밀착 관리를 한다고 한다. 노조활동을 함께 하던 동지가 어느 날 돌아선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울 뿐이다.

최위원장은 87년 노조를 건설할 때부터 현장통제가 극심했다고 전한다. 노조건설에 동참한 조합원들 부모님께 직접 전화해 곤혹스럽게 만들고, ‘애사심 결여’라는 조항을 만들어 승진을 막았다고 한다. 최위원장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함께 살자고 만드는 것이지 망하자고 만드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냐”며 현장통제를 비난했다.

150만평에 흩어진 노동자와 함께하기

더욱이 조선소의 특성은 파업 동참에 어려움을 더했다. 다른 제조업같이 라인을 멈추면 모두 파업에 동참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

150만평에서 2만 여명이 일하는 대우조선에서 낮에 공장을 돌아다녀봐도 노동자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생산물을 만들다 보니 일 할 때도 모여서 하는 일은 많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22일 결의대회를 진행하는데도 민주광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해야할 정도다.

  6월22일 총파업 투쟁 결의대회를 마친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이 조선소 야드를 행진해 선각삼거리에 도착하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그동안 노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두리 파업, 지역 파업 등을 진행해 왔다. 일명 가두리 파업은 하나의 식당을 점거하고, 식당에서 식사한 조합원들과 파업을 진행하는 것이고, 지역 파업은 공장 내 거점을 잡고 소규모 거점파업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연유로 전조합원 집결은 사실상 몇 해 만이라고 한다. 이같은 조건에서 400명이 버스를 타고, 상사의 눈치를 피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결의대회를 누가 감히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년 무파업, 언론과 회사의 합작품

이번 대우조선 노조 파업에 언론은 주목했다. ‘대우조선 19년 무파업 깨지나’ 등의 선정적인 제목으로 연일 신문을 도배했다. 그러나 대우조선 노조는 매년 임단투마다 쟁의행위를 해왔다. 더욱이 1997년 본격적인 매각문제가 터졌을 땐 1주일 동안 작업을 멈추기도 했단다. 그런데 언론은 무파업이란다. 최위원장은 “언론과 회사의 합작품”이라고 설명한다. “회사가 노조파업을 인정하면, 너도나도 파업에 동참하게 될 것이고 곧, 힘겹게 통제해 온 현장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에 언론까지 합세해 막으려하는 것”이란다.

  6월22일 최창식 대우조선노조 위원장이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 야드를 행진하며 총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을 격려하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22일 파업 방식은 선각삼거리(서문 삼거리)에서 물류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조선업 수주가 줄었다고 하지만 야간작업에 잔업, 특근을 할 정도로 현재 일감이 많은 회사입장에서 장시간 물류 통제는 큰 타격이 된다. 23일까지 이어진 전조합원 파업은 분명 노조가 합법적인 절차를 밟고 진행하고 있는 쟁의행위다. 더욱이 “6월 투쟁이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7월 투쟁은 없다(?)”고 선언하는 노조가 펼칠 이후 투쟁을 언론은 어떻게 기사화할 것인가.

“산별전환 언제 하실래요?”

대우조선 노조 마크와 금속노조 마크는 같다. 하지만 대우조선 노조는 금속노조에 조합비를 내지 않는 단일 노조다. 산별전환을 세 차례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

최위원장은 세 차례 실패를 거듭한 지금 다시금 산별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전한다. “처음 산별전환 논의할 때는 적어도 15만 금속노조 전이어서 ‘저 산을 넘으면 무지개가 있겠구나’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15만 금속노조의 현실을 본 조합원들은 더 결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최위원장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위원장은 “서울에서 100여명이 최저임금 때문에 날마다 싸우고 있는데 7천4백명인 우리가 뒤에 숨어만 있으면 비겁하지 않냐”며 연대를 강조하며 조합원을 설득 중이라고 한다. “계속 설득해서 가능할 때 꼭 투표할겁니다”라는 말에서 최위원장의 결의가 느껴진다.

  6월22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치고 야드를 행진해 선각삼거리에 도착한 조합원들이 백순환 부위원장의 투쟁사를 듣고 있다. [출처: 금속노조 신동준]

형식은 단일 노조지만 마크도 함께 쓰고, 금속노조 조선분과에서 분과장으로 앞장서면서, 금속노조 조합원 심정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우조선 노조. 현재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우조선 노조 깃발이 금속노조와 함께펄럭이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세상에 똑같은 배는 없다고 한다. 만들어놓은 상품을 사가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받고 그에 맞게 만들기 때문. 그래서 배에는 제각기 자신의 이름이 붙는다. 00호, ***호... 세상에 하나 뿐인 배를 만드는 7천 4백 여 명 대우조선노조 조합원들. 조합원들에게 배 하나를 주문해본다. ‘금속’ 깃발 꽂고 항해할 ‘대우조선 산별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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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iodulse

    기사 아래부분이 짤렸네요. 수정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