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산재신청 포기 유족 매수 논란

반올림 23일에 추가 집단산재신청 예정...“삼성 직원의 위협적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삼성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과 함께 산업재해 신청을 한 여러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산재신청 포기 등을 위해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삼성 직원들은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 위로금 형식으로 돈을 전달하면서 반올림과 민주노총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끊으라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 고 연제욱 씨의 여동생 연미정 씨 옆에 앉았던 어머니 최술연(맨 왼쪽) 씨는 증언대회 시작부터 눈물을 흘리더니 연씨가 증언을 하는 동안엔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연미정 씨도 증언 도중 계속 눈물을 흘렸다.

또 몇몇 유족들은 피해자 치료비로 들어간 돈 때문에 생계의 고통을 받다 삼성의 위로금 제시에 회유 됐지만 몇 푼의 돈으로 자식을 판 것 같은 마음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반올림은 12일 오전 공공연맹 회의실에서 삼성의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유족과 피해자들이 한 증언을 들어보면 삼성 직원들은 반올림이나 민주노총과 함께 산재신청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산재 절차를 잘 모르는 가족들에게 허위정보를 흘리면서 산재신청을 포기하면 주는 유족 위로금도 깎으려 한 흔적까지 드러났다. 반올림은 이날 증언대회를 시작으로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실에 항의면담을 진행하고 오는 19일부터는 온양, 청주, 기흥 등을 찾아다니는 공동행동을 연다. 또 23일엔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들의 추가 집단산채신청도 할 계획이다.


고 박지연씨 어머니 삼성과 합의과정 고백...정신적 고통 호소

지난 3월 31일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박지연 씨의 어머니는 황 모씨는 이 자리에서 동영상을 통해 삼성과 보상금 합의조건으로 행정소송을 취하하게 된 과정을 고백하기도 했다.

황 씨는 “지연이가 죽기 하루전날 삼성전자 관계자가 그러더라. ‘최대한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할 거니까. 믿으라고 했다”며 “민주노총과 반올림과 접촉하지 않고 행정소송에 빠지는 조건으로 삼성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황 씨는 고 박지연 씨 치료비와 생활비로 빚이 많은데다 언제 직업병으로 인정 받을지 알 수 없고, 죽은 박지연씨를 더 이상 붙잡아 놓고 싶지 않음 급한 마음에 합의를 하고 위로금을 받아 빚을 갚았지만 갈수록 죽은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황 씨는 “시간이 갈수록 지연이가 보고 싶고 억울한 마음이 올라와 술을 먹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개인질병이라고 주장하던 삼성재벌이 양심이 있어 고 박지연씨의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유족보상금보다 더 많은 돈으로 합의금을 준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 신청을 한 피해자와 행정소송 중인 유족들의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유족들과 피해노동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척 하면서 행정소송 포기를 조건으로 돈을 앞세워 접근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삼성은 초하류 였다”..유족들 삼성 관계자 만나고 정신적 고통

고 연제욱 씨의 가족은 심지어 반올림과 함께 산재승인 재심사를 청구하겠다고 하자 위협적인 눈빛을 느끼기도 했다. 연제욱 씨는 2004년 삼성전자 LCD 탕정공장에 입사해 설비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8년 2월 종격동 암을 진단받고 2009년 7월 23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연제욱 씨의 여동생 연미정 씨는 “오빠가 죽고 삼성 직원들이 찾아오고 난 후 어머니와 저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이 없으면 잠도 못 잔다. 우리가 반올림과 함께 한다고 하자 그 위협적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유족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책임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대기업이 없던 일로 하기 위해 돈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에 가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고 증언했다.

연제욱 씨 유족들은 처음에 삼성 쪽 얘기를 믿었다. 산재신청이 불승인 되고 나서도 삼성 관계자가 수차례 전화를 하고 3차례나 집에 찾아왔다. 5월 3일엔 ‘어머니 일이 잘 해결될 것 같아요’라며 5월 25일에 찾아가 자세한 상황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유족들은 회사가 한 약속을 믿고 25일 까지 기다렸다. 그사이 반올림은 집단산재신청도 하고 피해자 증언대회도 했다.

하지만 5월 25일 찾아온 삼성 관계자는 사실상 고 연제욱 씨의 목숨 값을 두고 흥정을 시도 했다. 여동생 연미정 씨는 “그들은 집에는 절대 안 들어오고 사람이 없는 밀폐된 식당만 찾았다”며 “기껏 한다는 얘기가 이런저런 집안 사정을 아주 사소한 것까지 속속들이 물어보고 무조건 회사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연미정 씨는 “27일 다시 찾아온 관계자들은 유족급여 공식을 들먹이며 냉장고 흥정하러 온 사람처럼 오빠 목숨을 두고 흥정했다. 그때 지금 회사를 상대로 구걸할 것이 아니라 반올림을 통해 재심사를 청구하고 소송에 가서 정당하게 그 돈을 받을 것이다 했더니 반올림도 뾰족한 수가 없고 반올림이 봉사단체도 아닌데 자기들도 이익을 남기려고 활동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삼성 직원이 연미정 씨에게 던진 그 다음 말은 더욱 기가 막혔다. “제욱 씨 병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지만 삼성이 초일류 그룹이라 임직원이었던 사람에게 성의 표시라도 하려고 돈을 드리는 것이다. 반올림을 통하면 지금 제시한 돈도 줄 수 없다고 협박수준의 말을 했다. 그들이 정말 원하던 것은 반올림과 만나지 않고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었다. 피해자와 유족을 대하는 삼성은 초하류였다”

연미정 씨 옆에 앉았던 어머니 최술연 씨는 증언대회 시작부터 눈물을 흘리더니 연씨가 증언을 하는 동안엔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연미정 씨도 증언 도중 계속 눈물을 흘렸다.

연제욱 씨 유족들은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반올림을 찾아와 재심사를 청구했다. LCD 쪽도 피해가 늘어가기 때문에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고 연제욱 씨 명예를 찾아야한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유족들의 고통도 말로 다 할 수 없다. 연제욱 씨의 아버지는 일이 손에 안잡힌다며 술로 세월을 보낸다. 연제욱 씨의 병원비를 대느라 생계도 어려워 졌다. 연미정 씨는 “오빠가 아플 때 삼성은 보험이 적용된 일부의 치료비만 댔고 신약은 비보험이라 고스란히 가족부담이 됐다. 부모님은 아들을 살리려고 생업도 뒷전으로 하고 병원에 쭈그려 주무시면서 밤새 오빠 옆을 지키셨다. 삼성은 피해자들이 병원비 걱정 없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치료받도록 치료비 지원을 아끼지 말고 유족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99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LCD 사업부 기흥공장에 입사했다가 무월경증과 건강악화로 2001년 퇴사한 후,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종양 제거시술을 받고 1급 장애를 얻은 한혜경 씨의 어머니도 최근 삼성 관계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역시 위로금을 받고 산재 심사청구를 취소하라는 것이다.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는 “수술 후에도 뼈가 빨래를 쥐어짜듯이 아프다고 하는 데도 위로금에 조건을 걸면서 산재에서 빠져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은 사회적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1급 언어장애인 한혜경 씨도 어렵게 통한의 몇 마디를 삼성에 던졌다. “삼성이 원인을 제공한 거잖아요. 원인을 제공했으면 어떻게든지 해야지 이게 뭐예요.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올 수 있어요. 죽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삼성이 원인을 제공했으면 책임을 져야 해요. 아파서 수술도 못 받고 이러면 안돼요 삼성”

“치료비라도 받으려고 백지 사직서 써 줬더니...”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23세의 나이로 숨진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처음엔 삼성 말만 믿고 황유미 씨의 치료비라도 받기 위해 이름과 주민번호만 적은 백지 사직서를 써줬다.

당시 삼성 직원은 황상기 씨에게 “이 큰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으면 이겨봐라. 못 이긴다. 다른 것을 요구하라”고 했다. 그러나 백지 사표를 쓴 게 화근이었다. 결국 삼성은 “자기네 회사사람도 아니고 일하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니”라고 했다.

황유미 씨가 끝내 사망하자 삼성 직원들이 또 찾아왔다. 황상기 씨는 “삼성 직원이 이번에도 장례식을 잘 치루면 보상을 잘 마무리 하겠다고 해서 장례식을 잘 치뤘지만 장례가 끝나고 나자 유미의 병은 자기네와 아무관련이 없고 산재가 절대 아니니 아버님 맘대로 하라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를 속이려 한 것이다. 죽은 유미를 데리고 회사에 와서 행패를 부릴까봐 나를 속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 후 황 씨는 산재를 신청했다. 황 씨가 산재를 신청하자 삼성은 이번에도 황 씨에게 사회단체와 민주노총 사람들을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황 씨는 수원 민주노총 경기본부에 찾아가 이종란 노무사를 만나서 다 털어 놓았다. 2008년 5월에도 삼성 직원은 황 씨를 찾아왔지만 그는 더 이상 삼성을 믿지 않는다.

반올림은 “삼성은 산업재해 심사 과정과 행정소송에 개입하여 산재로 인정받기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작업환결에 관련된 중요자료들을 영업비밀이라면 깊숙이 감추고 유해 화학물질들에 노출되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반박하기 위해 사측증인을 찾아 내세운다”고 비난했다. 또 “삼성이 주장해왔듯 직업병 피해자들의 병이 삼성과 무관한 개인 질병이라면 삼성은 무엇이 두려워서 돈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하느냐”라며 “직업병 피해자들의 존엄을 돈으로 우롱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반올림은 “피해자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과 슬픔을 가하는 비열한 산재은폐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