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소름돋게 만드는 책

[새책] 맑스주의 역사 강의 (한형식, 그린비, 2010.07.20, 440쪽)

우선 사적인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저자 한형식을 처음 만난 것은 경기도 고양에서 단속에 항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붕어빵 노점상 고 이근재 열사’ 투쟁으로 인해 수배가 떨어진 2007년 겨울 즈음입니다. 찜질방과 도서관 같은 곳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도피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집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캠퍼스를 배회하다 학교 복도에 ‘새옴’이라는 단체에서 개설한 ‘맑스주의 역사’강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맑스주의 역사’ 강의라니요? ‘요즘도 이런 강의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시간이나 때워볼 요량으로 일반 주민도 강의를 들을 수 있냐고 전화를 한 뒤 며칠 후 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실을 빌려 진행 된 강의는 내 생각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약 두 달 간 뜨겁게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의를 듣고 얼마 안돼 나는 곧 구속되었지만 이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 후로도 한형식은 고려대학교 후문 근처에다가 새롭게 사무실을 열어 진보적인 교육을 계속 진행하며 의욕적으로 사업을 진행하였고, 틈틈이 누구나가 쉽게 읽을 수 있는 ‘맑스주의 역사책’을 발간하겠다는 계획을 비쳐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이 이 책인 거 같습니다.

얼마 전 한형식과 함께한 자리에서 나에게 이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단속과 철거문제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거리를 뛰어 다니다 보면 신문 한 장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4백 페이지가 넘는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읽고 느낌을 써달라니요... 책을 받아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여름철이면 반드시 나를 찾아와 괴롭히는 냉방병과 며칠 동안 끙끙거리며 씨름을 하고 나서 열대야가 잠시 수그러든 어느 날 밤 마침내 목욕재계하고 이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이 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맑스주의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비교적 쉽게 읽혀질 수 있도록 잘 쓰여 진 책입니다. 저자가 가장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인 부분인데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는 말일지 모르겠으나, 위와 같은 저자의 노력과 나의 주관적인 판단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 역사’는 그자체로 결코 쉬운 주제가 될 수 없습니다. ‘맑스주의 역사’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며 수많은 논쟁과 논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려오는 사안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어려운 주제들을 이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한형식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맑스주의 강의’를 해오는 과정 속에서 대중들로부터 그자신이 배우고 터득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책이 어려우면 노트에 각각의 인물들을 적어놓고 시시각각 펼쳐졌던 주장과 논쟁들을 메모를 하며 읽다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거 같습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맑스주의 역사’에 대해 다 알았다고 한다면 이 책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일 겁니다. 이 책은 누구나 ‘맑스주의 역사’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지만 독자로 하여금 맑스주의에 쉽게 다가가는 대신 더욱 새롭게 ‘맑스주의 역사’에 대해 공부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형식은 기존의 인물들과 역사를 시기별로 요약한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맑스주의 역사’가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났던 다양한 문제의식에 대하여 나름의 역사관으로 재구성을 해놓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탈린 체제’에 대한 평가입니다.

한형식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하여 당시의 소련이 처해있는 현실적인 상황으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제국주의 세력의 팽창과 침략에 대응해야 하는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 정치적으로 볼세비키가 권력을 유지 할 수 있어야 했으며 이런 조건 속에서 무엇보다도 산업화가 일국 내에서 물질적으로 가능하려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계혁명이 일어나지 않아도 소련의 혼자 힘으로 충분히 사회주의로 이행 할 수 있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는 것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 결과, 볼세비키 당원이나 인민들이 원하는 것을 스탈린이 제시한 것으로 파악 합니다. 다시 말해서 스탈린체제에서 진행되었던 오류에 대해서 도 분명히 지적을 하지만 당시 위와 같은 현실주의에 입각한 판단을 내리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이론적 내용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을 합니다. 당시 소련을 둘러싼 국제적인 환경과 조건들 그리고 주체적인 역량에 대한 면밀한 평가 없이 스탈린과 소련의 문제를 일방적으로 평가절하 시키려는 경향에 대해 일종에 경종을 울리는 거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사회에서 ‘맑스주의 역사’에 대해 지나치게 서구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합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생산방식인 포스트포디즘의 도입과 그에 따른 산업노동자계급의 감소와 조직 노동운동의 쇠퇴 등으로 조직 노동자계급의 소멸이라는 담론까지 낳게 되었으나 그러나 실질적으로 지구 한편에서는 중국, 인도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 보여 주듯이 급격하게 늘어난 노동자 대중에 대해 아무런 해석도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형식의 주장대로 한때 동구 사회주의가 망하자 덩달아 우리 운동진영에 패배주의와 청산주의가 팽배해 지고 심지어 일시적으로 운동이 쇠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쟁점이 되고 있는 네팔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에서 그리고 중동과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맑스주의가 전개되고 있는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이렇듯 맑스주의 그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유럽중심으로 경도되어 있는지 이 책에서는 지적을 하면서 맑스주의는 지금도 각 나라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새롭게 진화하거나 새로운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 부분을 좀 더 보강을 하거나 혹은 현대 맑스주의의 다양한 흐름과 논쟁에 대해 다시 정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 올 여름 피서법으로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해 봤습니다.

끝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지금시기 ‘맑스주의 역사’를 왜 살펴보아야 하는가? 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 글을 맺을까 합니다. 이 책은 제 개인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부딪히는 고민과 문제들을 다시 돌아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거 같습니다. 소위 요즘 운동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앞이 안 보인다고도 합니다. 뒤돌아보면 함께 목소리 높여 활동 하던 이들도 어느덧 지쳐 떨어져 나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올해만 해도 지방선거가 끝나고 이명박 정권의 패배를 이야기 했다가도 얼마 전 보궐선거를 통해 또다시 이명박 정권이 기세를 잡았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의 교훈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당장 눈앞의 선거결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가지 사안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우리사회는 이미 기존의 국가권력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광범위하게 선거를 통한 사민주의적 운동방식에 깊숙이 빠져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 맞게 이 땅의 변혁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모색 하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봅니다. ‘맑스주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맞는 실천은 무엇인지 과거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찾아 ‘반면교사’로 삼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단속반에 맞서 싸우는 노점상들 혹은, 폭우가 쏟아지는 재개발 지역에서 지금도 용역반과 맞서서 싸우는 철거민들, 무엇보다도 이 땅의 많은 노동자들이 무더운 여름철 이 책으로 피서를 떠났으면 합니다.

수많은 혁명가들이 시대의 고비 고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떻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했는지, 온몸에 소름 돋도록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노라면 한낮에 폭염 따위는 금방 잊혀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차

들어가면서

이 강의의 목표

혼란스러운 개념들 정리
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② 맑스주의│③ 용어상의 혼란

1강 _ 자본주의의 발전과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발전과 사회주의의 등장
정치적 노선의 사회주의: 바뵈프와 블랑키
① 가난한 자들의 봉기│②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관한 오해
경제적 노선의 사회주의: 생시몽, 푸리에, 프루동, 바쿠닌
① 생산력발전에 대한 낙관과 비관│② 정치적 행동과 직접행동

2강 _ 맑스ㆍ엥겔스의 초기 사상
자유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
자본주의와 소외: 『년의 경제학-철학 초고』
① 이 텍스트가 지니는 의미│② 사적 소유와 상품생산의 철학적 해석
③ 변증법: 혁명적 변화의 철학적 원리│④ 인간의 유적 본질과 소외의 극복
유물론적 역사이해: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들」, 『독일 이데올로기』
맑스주의의 기초 확립: 『공산당 선언』
① 『공산당 선언』의 역사적 의미│② 유물론적인 자본주의 분석
③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로의 이행│④ 공산주의에 대한 전망

3강 _ 맑스ㆍ엥겔스의 후기 사상
착취의 과학적 해명: 잉여가치론
제1인터내셔널: 국가주의ㆍ아나키즘과의 대결
①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② 아나키즘과의 대립│③ 국가주의의 대두
파리코뮨과 새로운 국가론: 『프랑스 내전』
라살레파와의 대결: 『고타강령 초안 비판』
① 독일 노동운동의 통합과 「고타강령」│② 노동전수익권 비판
③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④ ‘철의 임금법칙’ 비판
맑스 사상의 체계화: 『반뒤링』,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① 최초의 맑스주의 교과서│② 엥겔스의 해석 문제

4강 _ 제2인터내셔널의 논쟁들(1)ㆍ수정주의 논쟁과 총파업 논쟁
분열의 시작
수정주의 논쟁
① 수정주의와 개량주의│② 수정주의의 등장│③ 정통파의 입장: 붕괴론
④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⑤ 사회개량이냐 혁명이냐: 베른슈타인과 룩셈부르크의 논쟁
총파업 논쟁
① 총파업이란 무엇인가│② 아나코-생디칼리즘과 총파업
③ 맑스주의와 총파업│④ 맑스주의의 총파업 수용: 년 혁명과 『대중파업』

5강 _ 제인터내셔널의 논쟁들(2)ㆍ반전 논쟁과 식민지 논쟁
반전 논쟁
① 반전 논쟁의 역사적 배경│② 방어 전쟁의 논리
③ “전쟁에는 전쟁으로”: 「슈투트가르트 결의안」
식민지 논쟁
① 자본주의의 발전과 식민지 점령│② 수정주의자들의 식민지관
③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수정주의 식민지관 비판

6강 _ 러시아혁명과 레닌(1)ㆍ1917년 이전의 러시아와 레닌
러시아혁명의 배경
① 러시아혁명의 전사(前史)│② 인민주의자들의 등장
③ 초기의 러시아 맑스주의: 단계 혁명론
러시아혁명의 새로운 흐름
①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창립│② 레닌의 전위당 이론: 『무엇을 할 것인가?』
③ 1905년 혁명과 소비에트│④ 년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평가

7강 _ 러시아혁명과 레닌(2) 1917년 혁명과 소련의 성립
2월 혁명에서 10월 혁명으로: 사회주의혁명으로의 발전
맑스주의 국가론을 다시 생각하다: 『국가와 혁명』
월 혁명의 과제들
① 혁명이 직면한 문제들│② 서유럽 혁명의 불발│③ 전시공산주의
새로운 시대의 맑스주의: 『제국주의』
신경제정책(NEP):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8강 _ 코민테른과 스탈린 체제
코민테른의 성립
스탈린과 소련의 발전방향을 둘러싼 논쟁들
① 스탈린의 부상│② 스탈린의 권력장악│③ 정치투쟁 과정에서의 논쟁들
스탈린 시기의 소련과 스탈린주의
① 일국사회주의론│② 스탈린 테러│③ 스탈린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ㆍ

9강 _ 중국혁명과 마오주의
중국 공산당의 형성: 신해혁명에서 대장정까지
옌안 시대
① 대중 노선의 본격화와 『옌안문예강화』
② 추상적 교리에서 구체적 정세로: 『실천론』과 『모순론』의 변증법 재해석
공산주의 중국의 성립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시도들
① 제차 개년 계획│② 의도와 결과의 괴리: 대약진운동
혁명은 계속된다: 문화대혁명
① 문화대혁명의 발발│② 문화대혁명의 문제의식: 「문혁 조」
③ 홍위병운동의 확산과 문혁의 성격 전화│④ 문화대혁명의 의의

10강 _ 맑스주의의 새로운 흐름들
웨스턴 맑시즘
① 웨스턴 맑시즘의 등장과 전개│② 그람시의 맑스주쟀
③ 프랑크푸르트 학파│④ 혁명 이후의 맑스주의들
아시아 공산주의
① 아시아 공산주의의 과제와 특징│② 동아시아 공산주의의 전개과정
③ 그 외 지역의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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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홍명교

    그때 2007년에 저희 학교에서 세미나할때 함께 했던 그 분이시군요! 얘기도 하고 술 한잔도 같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올해 이 책으로 학교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어서 반갑게 잘 읽었습니다^^

  • 번댕

    헉! 홍맹이다 ㅎㅎ 나도 요새 이 책 사서 읽고 있는데 ㅎㅎ

  • 최인기

    그러시군요 ㅎㅎㅎ

  • 보스코프스키

    기사에 소개한 목차 부분에 탈자가 있네요... 인터넷 서점이나 포탈의 도서 면 확인하시고서 추가해 주세요.
    책은 반갑습니다.

  • ㅅㅅㅅㅅ

    브레즈네프시기에 대한 왜곡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