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식사 차명진’, 우리 사는거 들어봐요”

빠져나올 수 없는 빈곤, 최저생계비 증언대회 열려

최저생계비로 ‘황제의 식사’를 했다는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의 말처럼, 기초생활수급자들은 ‘황제의 인생’을 살고 있을까. ‘황제’라는 말이 조금은 과장됐다고 치더라도,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걸까.

민중생활보장위원회(민생보위)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최저생계비 생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곳에 모인 수급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처절한 생활고를 고백했다. 그야말로 ‘황제’와 같이 사는 사람들은 꿈꿔보지도 못할 절박한 인생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 그들이 사는 세상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는 수급자 이종대씨, 그는 무엇보다 주거급여의 비현실적인 측면을 토로했다.

  수급 당사자 이종대 씨.

“한 달에 기초생활수급비 41만원이 나옵니다. 고시원에도 창이 있는 방은 25만원이고, 창이 없는 방은 22만 원인데, 저는 창이 없는 22만 원짜리 방에 살고 있습니다. 고시원은 환경이 열악해 옆방의 숨소리, 코고는 소리도 다 들립니다. 샤워장과 부엌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데, 무엇보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을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화장실이 2개인데 사용하는 사람은 40명이라 너무 힘듭니다.”

월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큰 불편을 감수하면서 까지 살고 있는 고시원 방값은 수급비의 반이 넘는다. 하지만 1인 가구 기준 주거급여로 책정된 금액은 8만 7천원. 8만 7천원의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산간 오지를 떠돌아야 하는 처지다.

민생보위 위원인 김학식씨 역시 수급 당사자다. 그는 ‘공공요금’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수급 당사자 김학식 씨.

“식품비 같은 경우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참아서 아끼면 되지만, 공공요금은 봐주는 게 없습니다. 수도세, 전기세가 1달만 연체 되도 압력이 들어오니까요. 전기나 물은 목숨줄이어서 안 쓰고 살 수 없고, 또 이걸 내다보면 식품비나 주거비가 줄어들고, 엎친데덮친 격으로 건강이 안 좋아집니다.

작년 겨울에서 이사를 가면서 보일러를 시험해 봤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저녁 10시가 넘어 보일러를 틀고, 같이 사는 사람이 출근하는 아침에 보일러를 껐습니다. 3일을 틀었는데 보일러비가 4만원이 나왔습니다. 한 달을 틀면 20~30만원의 돈이 드는 셈이니 깜짝 놀라 서로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어요. 밤에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근데 보일러를 사용하지 않고 날씨가 추워지니 보일러가 터져버린 게 아닙니까. 수리비로 22만원이 나왔습니다. 뜨거운 물 한 번 못써보고 말이죠.”


최저생계비 항목에 포함되어있지 않은 막대한 보육비용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수급자도 있었다.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성란희씨는 아무리 아껴도 한 달에 30만원이 빠져나가는 보육비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안 먹고 애들한테 해 주고 싶지만, 돈이 없으니 남에게 빌리게 되고 빚만 늘고 있다”고 말하는 성란희씨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수급 당사자 성란희 씨.

높은 의료비 문제도 있었다. 최저보건의료비는 53893에 불과하지만, 의료비는 날로 오르고 있다. 특히 국가에서 지원되지 않는 의료비도 있다. 수급자인 조성래씨는 “CT나 MRI 등의 각종 검사와 보철교정료 등은 국가에서 지원되지 않아 직접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이것들은 엄청난 비용으로 최저생계비로는 절대 감당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또한 참여연대에서 진행한 ‘최저생계비 한 달 나기 체험’에 참여했던 안성호씨는 최저임금이 인간의 삶을 고립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최저생계비의 생활은 우리를 사회와 단절시키는 현상을 가져왔다”면서 “밖에서 하는 어떤 것에도 돈이 들기 때문에 우리는 마을에 갇히게 되었고, 우울감과 고립감이 몰려왔다”고 설명했다. 삶의 패턴도 단순해 졌다고 했다. 먹고 자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안성호씨는 이어서 “우리의 목표는 최저생계비의 목적대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 구현’이었는데,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다보니 문화적인 삶은 둘째 치고 살이 빠지고 탈이 나는 등 신체적 변화를 겪었다”고 증언했다.

“전문가 몇 명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최저생계비’의 생활은 빈곤자들을 고립시키고, 우울감에 빠지게 하고, 건강상의 변화를 겪게 하고 있었다. 수급자들은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최저생계비’는 단지 빈곤을 유지시킬 뿐이었다.


빈곤사회연대의 최예륜 사무국장은 지난 2007년 최저생계비의 계측결과를 두고 ‘어이없다’고 설명했다. 최예륜 사무국장은 “계측결과에 따르면, 하루에 소주 10그람을 마셔야 하는데, 이는 한 달에 소주 1병이 채 되지 않고, 표준가구인 4인가구를 기준으로 한 달에 두 번 하는 외식비는 떡볶이 값인 2만 4000원이었다”고 비꼬았다.

이어서 “속옷은 2벌로 2년을 버텨야 하고, 화장지는 한 달에 4인이 4개씩만 써야하는데 이렇게 되면 누구 하나 감기에 걸리거나 설사라도 하는 날에는 큰일”이라고 말했다.

의료비와 관련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상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는 열악한 주거, 영양부족 등으로 일반인들에 비해 의료이용 빈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가가 원칙적으로 의료비를 전액 지원해야 하는 의료급여제도는 실질적으로 많은 맹점을 안고 있었다. 이상윤 정책위원은 “CT나 피검사 등 보장이 안 되는 의료비가 상당히 많으며, 보장되지 않는 약도 상당히 많다”면서 “필요한 검사를 비용으로 다 쓰다보면 최저생계비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의료비도 문제였다. 이상윤 정책위원은 “초음파와 같은 비급여 의료비가 일 년에 2~3만원 씩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고 밝혔다. 최저생계비의 계측이 의료비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이 최저생계비가 비현실적으로 책정이 된 데에는 일부 전문가와 정부에서 ‘밀실’ 책정을 하기 때문이었다. 최예륜 사무국장은 “정부에서는 수급 받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고, 자활의지가 없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최저생계비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전문가 몇 명과 정부 차원에서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남이 결정지어주는 것이 아닌, 현재 사회의 소득 수준과 불평등 상황을 고려해, 상대적 기준의 따라 최저생계비가 책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로 10년을 맞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는 사실상 많은 빈곤층의 생활을 구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는 최저생계비 계측논의가 한창이다. 또한 올해에는 실 계측을 통해 최저생계비가 결정되는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최저생계비 계측에 수급자 주체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차명진 의원의 ‘황제의 식사’ 발언보다 실질 주체들의 현실감 있는 증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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