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각지대건강권보장연대회의(연대회의)는 지난 3월 23일, 187명의 건강보험 체납 결손 집단 민원신청을 조직하여 건강보험체납 결손처분 집단민원을 신청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 72조에는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결손처분(면제)을 해 주도록 돼 있다.
하지만 7월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답변은 실망스러웠다. 공단은 100만원 미만 110건의 건강보험 체납건수 중 26건에게만 결손처분 결정을 내렸으며, 100만 원 이상 집단 민원도 총 77건 중 25건만 심사 대상이라고 통보했다. 결국 136건의 집단 민원 결손 처분이 미승인 된 것이다.
이에 연대회의는 16일 오전 11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단의 건강보험료 체납자 집단민원신청 결과 발표를 비판했다. 체납자의 빈곤 실태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단에서는 체납 보험료를 독촉하며 채권 추심업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의 체납독촉, 오히려 국민들의 건강 위협
건강보험료 체납자는 대부분 일용직, 비정규직, 파산 신청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빈곤층이다. 7월 7일 결과에 따라 결손 처분 받을 사람들 역시 일용직, 의료급여수급자, 노점 등 일정한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공단에서는 민원 신청인 136명에 대한 결손 미승인 사유에 대해 ‘자동차 압류’, ‘통장 압류’ 등을 제시했다. 특히 가장 많은 사유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압류’의 경우, 10년 이상 오래된 자동차거나 생계를 위한 수단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A씨 역시 자동차 압류로 인해 결손 처분을 받지 못하는 체납 당사자였다. 그는 공단이 자동차의 재산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동차 압류를 빌미로 무자비한 체납 독촉을 일삼고 있다고 토로했다.
“2002년에 자영업을 하다 경기가 어려워져서 2006년 사업을 접게 됐습니다. 지금은 부인과 함께 월세 25만원의 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할부로 구입한 차가, 현재 1800만원의 근저당에 잡힌 상태입니다. 공단에서 차를 압류해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통장 역시 압류해서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임금이 모두 압류됩니다. 때문에 제 이름으로는 통장도 개설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자동차가 재산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공단 본인들도 알고 있으면서, 매주 지로용지를 보내 압박하고, 전화를 하는 등 어떤 사채업재보다도 더 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공단에 차라리 차량을 공매하라고, 직접 주차장에 가져다주겠다고 수차례 얘기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차를 처분해도 금액을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자기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차를 가져가지도 않습니다.”
서울 광진구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B씨 역시 건강보험 체납자지만, 차량 압류로 인해 결손 처분이 미승인 됐다. 공단에서 자동차가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체납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자동차와 통장을 압류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하지만 B씨의 차량은 장애가 있는 자녀의 치료 때문에 마련한 1999년 마티즈 소형차다. 통장의 금액 또한 기초생활수급자 재산 소득을 넘지 않는 소액에 불과하다.
자동차 소유로 인한 결손 미승인 사례 뿐 아니라, 직장 가입자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결손처분을 미승인 받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자활 근로를 하는 차 상위 계층이거나, 희망근로 등 단기일자리의 저임금 종사자다. 공단은 고용이 불안정한 단기 일자리에 종사하는 빈곤층에게도 ‘직장 가입자’라는 이유로 체납 독촉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광진구에 거주하는 C씨는 사업에 실패하고 노숙을 하다 지역 자활센터를 통해 자활근로를 하고 있다. 그가 자활근로를 통해 버는 수입은 최저생계비를 조금 넘는 수준이어서 체납된 건강보험료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공단에서는 C씨를 ‘직장 가입자’로 분류해 결손 미승인 결정을 내렸다. 공단의 체납 독촉 역시 계속 되고 있다.
이 같은 공단의 체납 독촉과 결손 미승인 결정에 대해 성남희 건강세상네트워크 팀장은 “공단의 체납 독촉으로 국민들의 건강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비꼬았다. 가뜩이나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으로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단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고 있으며, 빈곤층의 건강권조차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료 체납자에 대한 근본적 대책 내놓아야”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는 기자회견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수급비 42만원에서 월세 25만원을 내고 나면 17만 원 정도가 남지만, 외상값을 갚고 나면 또 다시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에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건강 보험료 체납금을 내라는 것은 수급자의 생활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한 공단이 발표한 미승인 대상에는 의료급여수급자가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탕감 제도가 국세청의 결손처분보다 더욱 엄격한 상태여서 공단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인 ‘건강권’조차도 담보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대회의는 무엇보다 “공단과 복지부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복지부와 공단의 자진 납부 유도와 건강보험료 경감 정책은 일시적인 행정 처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대회의는 △6회 이상 장기체납자에 대한 ‘급여 정지’ 및 차별적인 제재 중단 △장기체납자에 대한 결손 처분 확대 실시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 의료급여 수급자로 자격 전환 △건강보험료 체납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 실시를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다시 한 번 체납 건강보험료 탕감신청 2차 집단민원 신청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히며 “복지부가 날로 늘어가고 있는 건강보험 체납자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전 국민 모두가 의료보장을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제도로 정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