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12시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송성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장을 공장 한 켠에서 만났다. 송 지회장은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는 대법원 판결 뒤 불법파견과 관련한 조합원 설명회를 하려고 한 업체를 방문했지만 했지만 관리자들이 이를 막았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송 지회장은 “관리자들이 우리 회사에서 나가라는 황당한 말을 늘어놓았다. 당신들은 대법원 불법파견 파결 나온 것도 모르냐고 항의하자 관리자들은 ‘우리는 그런거 모른다’며 나를 폭력적으로 밀어냈다”고 전했다.
현대차 사내하청지회가 대법원 판결 이후 비정규직 노조 가입 운동을 비롯해 정규직화 투쟁을 적극적으로 벌이자 부담을 느낀 하청업체는 이에 질세라 노조 활동조차 막았다.
그러나 이처럼 막무가내로 나오는 업체는 현재까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송 지회장은 “현장에 노조 조끼를 입고 돌아다녀도 건드리지 않는다”며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지회와 조합원 눈치보기에 급급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현장 조합원들도 하청업체들이 “짱보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김모 씨, 권모 씨는 “우리 업체는 야간출근 때 반장, 주간출근 때 소장이 조회하며 직원들 상대로 말하는데 야간 조회를 없앴다. 소장을 통해서만 말한다. 소장이 조장, 반장들에게 말실수 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사측에게 불리한 근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긴장한 상태이다”고 말했다.
대법 판결 이후 노조에 가입한 박모 씨도 “시간이 지나면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는 관리자들의 회유하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비조합원을 대상으로 회유할 지도 모르겠지만 대놓고 하지 않는다. 관리자들은 눈치보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하청업체들은 여름 휴가 전 2010년 임금과 성과급을 지급을 위한 서명과 동시에 하청업체 사장이 사내하청의 사용자라는 서명을 비정규직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명 여부를 떠나 임금과 성과급을 모두 지급했다.
현대자동차 원청도 아직 조용하다. 아산, 울산, 전주 3개 사내하청지회가 원청을 상대로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했고, 18일 첫 자리에 현대자동차가 나올지 미지수다. 3개 지회는 대법 판결로 사내하청업체는 불법업체라며 59개 업체를 상대로 한 2010년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을 모두 철회한 바 있다.
반면 지회사무실은 시끌벅적하다. 지회는 현장을 돌며 노조 가입 원서를 받고, 원청에 제출할 동의서를 조합원들에게 받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자동차가 근속 및 모든 노동조건을 승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과 입사일로부터 체불된 임금을 모두 지급할 것 등을 요구했다.
지회가 움직이니 노조에 새로 가입하는 조합원도 56명이나 늘었다. 여름휴가 뒤 새로 가입하는 조합원 수가 줄었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지회 간부들은 바빴지만 비정규직의 권리를 찾기 위해 꿈틀대는 현장을 볼 때, 조합원이 늘어 노조 조끼를 더 맞춰야 할 때 웃음이 절로 난단다.
조합원 박모 씨는 “동료들은 대법원 판결 이후 불법파견 문제와 노조 가입에 관심이 많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고, 금속노조에 기대하는 것도 크다. 현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는 조합원들이 많다. 나처럼 업체가 4번이나 바뀌고, 10년동안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대법원 판결로 희망이 생겼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아직 노조 가입을 주춤하거나 정규직화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비정규직도 많다. 조합원 김모 씨는 “동료들은 과연 이렇게 투쟁한다고 정규직이 될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기대감을 갖으면서도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2005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등 불법파견과 관련한 사회적 제기가 많았고, 투쟁도 했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앞에 나서 회사와 싸운 사람들만 피해보니까 과연 현대차라는 거대 기업의 기둥이 흔들릴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는 것 같다”고 원인을 찾았다. 지회 역시 원인 분석은 비슷했다.
정규직 노조의 움직임을 궁금해 하는 조합원도 많단다. 송 지회장은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조의 움직임을 궁금해 한다. 아무래도 정규직 노조가 공동투쟁에 나서면 정규직화 투쟁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금속노조는 현재 불법파견 정규직화 대법판결 및 대응계획과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전환을 위한 금속노조 중앙 특별대책팀’을 구성했다. 특별대책팀에는 현대, 기아, GM대우, 쌍용차 등 완성차는 물론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있는 지역지부도 함께 참여한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법률원, 새날법률원, 참터노무법인 등 그동안 비정규직 투쟁을 지원해왔던 법률가들이 모두 참여해 교섭과 투쟁,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지난 12일 박유기 위원장을 필두로 울산공장 비정규직 간담회에 이어 20일 아산공장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노조 가입이 정규직화 투쟁의 시작이라는 지회는 20일을 기점으로 많은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기사제휴=미디어충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