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파견, 차별이 정말 더럽더라구요”

[파견노동자 인터뷰] 파견업체 관리자 얼굴 한 번 못 봤다

“파견업체가 얼마를 가져가는지는 몰라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네요”

현행 파견법상 제조업에 파견인력을 투입하면 불법이다.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것은 독립적인 사업체라고 주장했던 도급업체(사내하청업체)가 실상은 인력공급만 했기 때문이다. 일명 위장도급이라 불리는 불법행위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조업 현장에는 여전히 불법파견이 판치고 있다. 사용자는 알고 있지만, 파견노동자는 불법 이라는 것을 모른 채 언제 잘릴지 불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 파견노동자들은 그래도 파견업체에 불만은 많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3개월, 6개월 단위의 단기 계약이기 때문에 더 나은 업체에 소개를 받으려면 파견업체에 찍혀선 안 되기 때문이다. 또 불법 파견 판정이 나도 파견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해고나 탄압이라 굳이 나설일도 없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A씨도 그랬다. 참세상이 만난 파견노동자 A씨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찾았지만 돈을 벌어야 할 상황이 되자 어디든 취직하자는 심정으로 각종 취업싸이트에 이력서를 냈다. 그가 원한 일자리는 몸은 힘들지만 그나마 임금이 조금 더 낫다는 자동차 부품업체였지만 연락은 인력파견업체에서 왔다.

연락 온 다음날 업체는 면접을 보자고 했다. 면접에서 안 사실은 자신의 시급이 4,110원에 수요일엔 잔업이 없고 주 4일만 잔업하면 15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콤한 얘기는 6개월 동안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발탁돼서 채용이 된다는 얘기였다.

“근데 그게 뻥이었어요. 하루도 안 빼고 잔업하는 건 참겠는데 6개월 뒤에 정규직이 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 이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정규직이 된 사람이 있었는데 1년 6개월 전 쯤에 월급이나 수당이 훨씬 적은 자회사 정규직이 됐더라구요”

자회사 정규직이 됐다는 사람도 결국 임금이 조금 올라간 또 다른 파견직원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파견업체는 A씨에게 3개월 이내에 그만두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파견업체는 면접에서도 그가 무슨 일을 할지는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첫 출근하는 날. 그는 같은 날 같은 곳으로 팔려가는 남자 1명, 여자 1명과 함께 한 지하철 역사에서 봉고차에 올라탔다. 봉고차 안에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첫 출근하는 봉고차 안은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같은 파견 회사소속으로 함께하는 첫 출근이지만 소속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잠시 후 한 공단에 자리 잡은 공장에 봉고차가 도착하자 이들을 맞이한 사람은 원청회사의 모 차장이었다. A씨는 차장의 안내를 받아 조립라인에 배치됐다. 처음 보는 각종 기계설비들 앞에 서서야 자신이 통신업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A씨는 통신업체에 취직한 것이 아니라 인력파견업체에 취직한 것이다.

원청업체에서 일하며 한번도 파견업체 관리자 못 봐

A씨는 차장에게 인계된 후 단 한 번도 파견업체 관계자들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가끔 A씨처럼 파견노동자를 인계할러 올 때 멀리서 본적이 있었다. “파견업체에서 먼저 연락이 오는 적도 없고요 노무관리도 NEVER 에요”

그나마 월금명세서를 보내줄 때 봉투의 보내는 이에 파견업체 이름이 찍혀 있고 작업조끼에도 파견업체 이름이 찍혀 있어 업체 이름은 잊지 않았다. A씨가 파견업체에 전화하는 경우는 두어 번 있었다. 임금관련 문의가 있을 때다. 한 번은 원청회사 창립기념일이 휴일인데 유급인지 무급인지를 물어봤다. 결과는 원청업체 정규직 직원 만 유급이었다. 듣고 나니 기분만 더러웠다.

월급을 물어봤더니 막 분노한다. “월급이요? 말도 마세요”하면서 얼굴에 분노가 어른거린다. “잔업하면 150만원 이랬는데 첫 달에 129만원 받았어요”

일급 32,880원에 잔업과 특근 다 했지만 그것 밖에 못 받았다. “임금 갈취는 아닌데 너무 작다는 느낌이 커요. 그렇게 일했는데” 그가 보여준 월급명세서가 담긴 봉투에는 보낸이가 파견업체였고 수신인은 원청업체와 A씨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치 파견업체가 원청업체 직원에 돈을 준다는 식이 됐다. 누가 진짜 사용자고 어느 회사에 고용됐는지 아리송할 따름이다.

용역업체에서 인력소개료로 얼마를 가져가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러게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역업체로 얼마가 가는지 처음 생각해봤다고 한다. “임금이나 휴일 물어보면 원청 방침이 우리 방침이라는 거예요. 늘 그런 식이라 그런 궁금증은 그냥 잊고 살죠”

A씨가 보기에 원청업체 전체인력은 200여명 정도다. 생산직은 150여명 정도 되는데 무기계약직으로 보이는 준 정규직 여성이 30여명(이들은 기본급은 인상안되고 상여금이 있다고 한다.)이다. 파견은 100여명이고 나머지 남성 정규직이 50여명이다. 남성 정규직은 대부분 30대 중후반인데 10년 전 통신 업계가 뜨면서 정규직 신규 채용으로 대거 들어오고 그 뒤로 정규직 신규채용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청사의 조립라인은 80%가 파견직으로 이뤄졌다. 이 회사에 들어온 용역업체는 5-6곳이다. A씨가 하는 일은 정규직과 일이 완전히 혼재되어 있다. 팀으로 나뉘어 있지만 팀이 섞여 한 라인 안에서 일을 한다. 핵심 업무라고 하는 일부 업무는 정직원이 하고 소수다. 그 외는 정규직과 섞여서 일을 한다. 전형적인 제조업 불법파견이다. 핵심업무라고 불리는 공정을 두고도 “정직원들은 스킬이 있는 일을 한다고 하지만 3-5달만 하면 정규직과 업무 싱크로율이 90% 이상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차별이 더러워 첫날 그만두는 경우도

파견으로 온 사람들은 상당수가 금방 나갔다. 대부분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데도 상여금도 없고 보너스도 없어 돈이 안 되고 차별이 더러워 그만둔다. 첫날 점심을 먹고 사라지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들어온 지 3달 된 A씨는 이미 용역업체서 온 사람 중 가장 고참급이다. A씨도 언제 해고가 될지는 모른다. 용역업체에서 시기가 되면 일괄적으로 전화를 돌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화 내용은 “0일 까지 일하고 나오지 마라”다.

이런 중소 업체 제조업 파견 노동자들은 노조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어차피 곧 있으면 다른 곳으로 팔려갈 것을 알기 때문에 파견업체에 찍히지 않아야 파견업체가 좋은 곳을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 “파견은 일이 지랄 같아도 어쩔 수 없어요. 어떻게 해보기엔 원청 회사 노무관리가 너무 잘 짜여져 있어요. 처음 들어올 때부터 정규직은 7-8년 된 사람들이고 파견은 6개월 뒤에 갈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느낌이 들어요” A씨가 속한 원청업체 사장도 “노조 만들면 바로 회사를 팔아버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단다.

같은 파견노동자들 끼리도 6개월 안에 나갈 사람이라 서로 유대관계를 맺지 않는다. 5-6개 파견회사가 섞여 옆에서 일을 하지만 파견 노동자들끼리 회식이라도 한 번 한 적이 없다. 파견업체가 다르면 노무관리나 경영상 독립이 되어 있어 다른 파견 업체끼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원청이나 파견업체에 소속감도 없고 불만은 있으나 거기까지다. “정규직들도 ‘언제 그만둘까’ 할 정도로 처우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일을 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노조를 할 생각은 전혀 안하는 것 같고요. 한국에서 사는 보통 사람들이 세금내고, 방 보증금 내고, 적금 붓고 사는데 목숨 걸고 아둥바둥 안하면 버티기 힘 들어요”

원청업체에 한 번 팔려가고 나면 파견업체 관리자 얼굴 한 번 못 보는 파견노동자 A씨는 누가 자신을 고용했는지 매일 아리송하다. 월급명세서를 보내주는 곳은 파견업체인데 정작 근태관리는 원청업체가 한다. 그래도 임금 문제를 물을 땐 파견업체에 묻는다. 돌아오는 답은 원청방침을 따른다는 것 뿐이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은 비용절감을 위해서 인력 공급업체가 노동자를 사고 파는지 모르게 만든 수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 파견문제는 양극화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도 고용노동부는 제조업 불법파견실태 전체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고만 밝히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불법파견 업체로 들통이 나도 처벌이 가볍다는 데 있다. 반면 파견노동자는 해고되거나 또 다른 편법으로 위장도급의 탈을 쓰고 도급사 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파견지옥의 악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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