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11시,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어요. 경유비 2000원을 요구했다가 승객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습니다. 서른 두 살의 남성이었는데, 제 머리채를 끌고 다니면서 인도위에 패대기쳤다, 차도위에 패대기쳤다 하면서 폭행했어요. 10분 정도를 112에 신고 할 여유조차 안 주고 때리더라고요. 행인이랑 택시기자 등에게 신고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남의 일이라고 관심조차 두지 않고 지나쳤어요.”
결국 지나가던 또 다른 대리기사 2명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오지 않았고, 간신히 도망친 A씨는 또 다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2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한테 왜 출동을 안했냐고 나중에 물었더니, 내가 대여섯 번 소리를 질렀던 XX아파트를 다른 아파트로 착각했다고 말하더라구요. 결국 보름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됐어요. 병원에서도 공포 때문에 자다가 놀라고, 잠도 안 오는 증상이 계속됐는데 퇴원하고도 나아지지 않아요. 정말 죽음의 공포를 느껴보지 않고는 몰라요. 병원에서는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지만, 시집갈 나이가 된 두 딸에게 피해가 갈까봐 정신병원은 못가겠더라고요.”
가해자는 벌금 200만원 형을 받았지만, 재판을 청구해 50만원의 벌금이 감형됐다. A씨는 병원 치료를 받는 상황이었고, 법을 잘 몰랐기 때문에 가해자 처벌 문제에 신경 쓰지 못했다. 결국 퇴원한 후, 경찰에 물어보니 경찰은 ‘이미 법적인 제재는 다 끝났다’고 말했다.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예요.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인데... 기사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제정이 안 되어 있으니 단순 폭행으로 끝나 버려요. 나중에 경찰에게 들으니 가해자가 경찰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내가 때린 만큼 벌금만 내면 된다’고 말했다더군요. 법적 보호가 없으니 승객들이 이를 악용해 기사들을 막대합니다. 자식들이 이 사실을 알까봐 집에서는 쉬쉬하고... 말 할 곳이 없어 노조에만 털어놓는데 그래도 너무 분하네요. 여자 대리운전기사들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집에 절대 털어놓지 못합니다.”
폭언, 폭행의 책임은 고스란히 대리운전기사 몫
A씨의 폭행사건은 온전히 A씨의 몫이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대리운전기사는 산재보험 등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회사 측은 이를 수수방관한다. A씨 역시 회사 측으로부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사측은 대책마련 역시 내놓지 못하며, 언급조차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사측은 대리운전기사에 대한 폭언과 폭행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승객이 콜센타에 항의 전화를 걸면 기사에게 패널티를 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 A씨는 “승객이 심한 욕을 하면, 사람으로서 ‘욕하지 마세요’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가 언성이 높아지면 승객은 콜센터에 항의를 합니다. 그러면 사측은 기사의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패널티를 주는 거죠.”
승객의 항의가 접수되면 콜센터는 기사의 PDA를 막는다. 즉 해당 지사에서 기사에게 일을 주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리운전기사들은 승객의 폭언과 욕설도 참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인 대리운전기사에게는 노동기본권조차 주어지지 않아, 열악한 환경에 놓여도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다. 특히 콜센터에서 기사에게 배차를 전달하면 기사는 10분 내에 해당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1분이 늦어 승객이 떠나도 콜센터는 콜비 3000원을 징수한다.
승객이 대리비를 내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A씨는 “승객이 대리비를 내지 않아 콜센터에 전화했더니 ‘기사 재량껏 하라’고 말한다”면서 “대리비를 받지 못해도 콜센터는 여전히 콜비를 빼앗아 간다”고 토로했다.
10년 째 ‘대리운전업법안’ 외면하는 정부
지난 6월에 발생한 고 이동국 기사 살해사건은 대리운전기사의 일상적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단순폭행으로 치부되는 대리기사 폭행 사건은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9월 3일 발생한 제천시의원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이나 A씨의 폭행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국대리기사연대회의(연대회의)는 7일 오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대리운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전국의 1일 대리기사관련 폭행건수는 수십 건에 이르지만 정부에서는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단순폭행 또는 쌍방폭행으로 매도되고 있다”며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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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하지만 2004년부터 매년 국회에 제출되고 있는 대리운전업법안은 계류와 무산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주무부처임이 분명한 행정안전부와 국토해양부는 법령 부재와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부처 이기주의를 앞세우며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영환 연대회의 의장은 “대리운전이 도입되고 10년간 대리기사의 인권은 없었다”면서 “하루 수십 명의 대리기사가 폭행을 당하고 있으며, 현재 계류 중인 여성기사 성추행 사건만 수십 건이지만 정부는 실태조사 조차 하고 있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대리운전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산업재해보상법 적용 △강제해고 사업주 처벌 △보험료 부당징수 저지르는 사업주 각성 등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법 제정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대리운전기사 노조 역시 지역적으로 많은 숫자가 결합하여 전국조직을 발돋움 해 권리를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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