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들의 ‘해피 추석’ 만들기

[탐방] ‘홈리스 행동’ 추석 음식만들기 행사

무섭게 비가 내리던 추석 연휴 첫 날. 우산으로 채 가려지지 않는 장대비를 맞으며 서대문에 있는 ‘아랫마을’을 찾았다. ‘아랫마을’은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등 6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모여 있는 보금자리. 그 중 홈리스행동에서는 매년 명절 연휴, 쪽방거주민, 노숙인 등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동현 활동가의 안내를 받으며 오르는 3층 계단에는 이미 전 냄새가 가득 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밖은 어두침침하고 축축하고 폭우까지 쏟아지는데 아랫마을은 따뜻하고 밝고, 무엇보다 추석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이미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동그랑땡, 동태전, 꼬치전 등을 정성스레 만들고 있었다.


“일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일하고 싶어요”

홈리스 행동이 운영하는 야학에서 3년간 공부하고 있는 작은별(56)씨는 매년 명절을 이곳에서 지낸다. 누구의 권유도, 소개도 없이 적극적으로 찾아온 곳이어서 그런지 활동도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이미 야햑에서 컴퓨터, 영상 제작 등을 배웠다.

“노숙인 쉼터에 있을 때 이곳을 스스로 찾아왔어요. 제가 지금은 혼자 사는데, 여기 오면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고... 명절 때 만나고 싶은 사람이요? 너무 많죠...”

작은별씨는 노숙인 쉼터에서 2년간 생활하며 노숙인 자활 근로를 하기도 했다. 노숙인 자활근로는 보름간 일을 하고, 39만 1000원의 임금을 받는다. 비록 보름간의 일거리고, 임금 역시 적지만 꽤 많은 노숙인들이 이 일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자리가 1/3으로 대폭 줄었다.

“예전에는 10명 뽑았다면, 지금은 3명밖에 안 뽑아요. 왜 안 뽑으냐 그러니까 서울시에서는 예산이 없대요. 왜 예산이 없느냐 또 그러니까 디자인 서울 사업에 돈을 써야 해서 그렇다네요.”

노숙인 쉼터를 나온 작은별씨는 현재 3개월짜리 동사무소 공공근로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다행히 공공근로는 노숙인 자활 근로 임금보다 많은 60만원을 받지만, 이 역시 3개월 단기 계약직이다. 때문에 3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하며, 다시 공공근로를 신청한다 해도 경험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아무리 일을 해도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워 “수급비를 신청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라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작은별씨는 “나도 노는 것이 좋지만, 지금은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똑부러지게 말한다.

“일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나도 사람답게 일을 해 보고 싶어. 그래서 수급신청을 안하고 있어요. 수급비 받으면 일을 못하니까...”

화제를 돌려 먹고 사는 얘기를 해 보기로 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를 물으니, 역시 이번 달 말일에 발표되는 공공근로 합격여부다. 그 다음 걱정거리는 ‘밥값’이다. 한 끼에 5~6천원 하는 밥값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예전에는 쉼터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고는 했다.

“근데 쉼터에서 밥을 먹으면 눈치가 보여서 원... 워낙 먹으려는 사람이 많으니까 6시에 밥을 준다고 하면 4시 30분부터 줄을 서 있어야 돼요. 그리고 빨리 빨리 로테이션 돼야 하니까, 무조건 빨리 먹어야 돼. 하지만 내 이를 봐. 다 빠져버렸잖아. 그래서 씹기가 너무 불편하고 오래 걸려서 눈치가 보여. 할 수 없이 플라스틱 도시락 용기를 가져가서 밥을 담았는데 뭐라고 하더라고.”

요즘은 밥을 사 먹는다는 작은별씨. 그는 편의점 삼각김밥과 덤으로 주는 음료수를 가장 애용하고 있다. “그렇게 혼자 먹다가 여기 와서 사람들이랑 이런 맛있는 거 만들어 먹으니 당연히 좋지. 외롭지도 않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격이 너무 많이 변했어요”

‘밥’ 얘기가 나오니 얼마 전 차명진의 황제식사 발언이 화두로 떠올랐다. 작은별씨 옆에서 열심히 전을 부치던 똥파리(41)씨는 “자기는 하루 먹고 그런 말을 하지만 그걸 매일 먹어봐, 어떤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똥파리씨 역시 야학이 생겼던 2007년부터 꾸준히 공부해오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8개월 전에 야학을 그만두게 됐다. ‘번듯한’ 직장이 생겨 야학을 계속 참여할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은 서교동에 있는 ‘문턱 없는 밥집’의 주방보조. 유기농 식당으로 유명한 이 곳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상한 계산법 때문이다.

“우리 문턱 없는 밥집은 점심때 밥값을 내고 싶은 만큼만 내면 돼요.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어도 낼 수 있는 여건에서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죠. 평일에 100~120명이 점심식사를 하러 오는데, 모이는 돈은 20만원도 안돼요. 언제 한번 취재 오세요. 꼭.”

정말 문턱이 없어 보이는 밥집 자랑을 늘어놓는 똥파리씨. 한 눈에 봐도 그는 직장생활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근로 환경에 대해 물으니, “10시 출근, 5시 퇴근인데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재밌어요”라고 웃어보였다. 특히 일터에서 똥파리씨를 제외한 모든 노동자가 여성이라고 했다. “다 아줌마들이고, 나만 남자다보니 이쁨을 많이 받아요”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는 똥파리씨도 우여곡절의 시절이 있었다. 그는 한때 안중근 기념관 처마 밑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아무하고도 말 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것에도 관심 없던 시절, 성균관대 학생들이 그를 찾아왔다.

“2005년도에 성균관대 학생들이 상담을 한다고 찾아왔는데, 당시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근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목요일 마다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다 정이 들어 6박 7일간 농활을 따라 가기도 하고 인연을 만들었죠. 그 때 그 동아리 학생 중 한 명이예요.”

똥파리씨는 그의 옆에서 전을 부치고 있던 한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은 한때 ‘야학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에서, 지금은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다.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야학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일을 하게 되면서 정말 성격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껴요. 예전에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싫어했는데...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변한 것 같아요.”

“왜 가까이서 얘기하지 않죠? 누가 잡아먹는답니까?”

한 시간이 넘도록 연기를 맞으며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눈이 따끔따끔해 눈물이 흘렀다. 그 사이 사람들은 더 불어나 거의 20명에 육박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올 추석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 적은 수가 참여한 것이라고 했다. 원래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어울린다고.

이 중에는 작은별씨나 똥파리씨처럼 3~4년 동안 꾸준히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 이외에도, 최근 인연이 닿아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동안씨(51. 동안이어서 기자가 붙인 별명)역시 아랫마을에 세 번째 방문한 신입생.

그는 99년 사업에 실패한 후 큰 빚을 졌다. 때문에 4개월 동안 노숙 생활을 해오다 최근에 홈리스행동 활동가를 만나 이곳을 방문하게 됐다. 사실 노숙 생활을 하며 이곳 저곳에서 말 붙이는 사회복지사들의 상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직업적 상담사들은 노숙인들의 고민조차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런 상담가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와요. 근데 상담을 하려면 가까이서 내 말을 듣고, 또 대답해주고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저 멀찍이 떨어져서 말을 붙여요. 앉지도 않고 구부정하게 쭈그리고는 멀리서 말을 붙여 오는거죠. ‘누가 잡아 먹기라도 한답니까?’라고 말해봤는데 그럼 싫어해요.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더라구요.”

그럼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은 뭔가 조금 다른 상담법을 가지고 있을까? 동안씨가 홈리스행동을 방문하게 된 것 역시 활동가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동안씨는 무엇보다 가까이서 얘기해 주고,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거리의 수많은 상담가들은 ‘병원 가 보세요’, ‘쉼터 가 보세요’ 라는 것 밖에 해 주는 말이 없습니다. 그것도 고민을 자세히 들어주지는 않으면서요. 여기(홈리스행동)활동가들은 물 한잔을 떠 놓고 앉아서도 고민을 나누고, 고충을 들어주고 그래요. 그게 다른 거죠.”

홈리스행동의 지원을 받아 지금은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는 동안씨에게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초등학교시절, 마지막 피붙이인 할머니를 잃고 홀로 일을 하며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 마쳤으니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적용되는 사회에서, 빈곤층은 빈곤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체제에서 동안씨는 혼자 아등바등 살아왔다. 이제는 그도 두 딸과 함께 ‘해피 추석’을 맞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동안씨 앞에서 묵묵히 전을 부치고 있는 교장씨(70.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닮아서)역시 홈리스행동을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50만원 채 안되는 수급비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것도 수급자 신청을 한 지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가족도 없는 독거노인이야. 사업을 실패해서 노숙 생활을 하다 최근에 수급자 신청을 했어.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서 여기 도움을 많이 받았지. 그래서 오늘도 오게 된 거야.”

홀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교장씨는 27만원의 고시원비를 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하루에 5천원 남짓뿐이다. 2011년 최저생계비가 대폭 올랐다며 정부와 언론은 난리통이었지만, 정작 그들의 생계는 나아진 것이 없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각양각색의 전들이 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오늘 만든 음식들로 내일 오전 8시에는 공동 차례도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지만, 아랫마을에는 따뜻한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


안프로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이런 자리라도 없으면, 추석 내 혼자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다”라며 “노숙인, 쪽방 거주자, 음식 배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음식을 만들고 나면, 윷놀이 등으로 흥을 돋우고, 영화를 감상한다.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으로 아랫마을은 저녁 내 마을 사람들로 북적일 예정이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활동가들이 전을 싸줬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봤지만 한 통 가득 전을 꾹꾹 눌러 담았다. 비가 너무 많이 와 우산을 쓰나마나였지만 가방 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열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골목길에 하수구가 역류해 바지가 다 젖어버렸지만 왠지 즐거웠다.

어느새 ‘추석연휴에, 이런 날씨에 왜 내가 일을 해야 하나’라는 악에 받친 생각도 잊혀진지 오래였다. 아랫마을 사람들처럼 이번 추석 연휴는 모두에게 ‘해피 추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파도가 치는 광화문 거리에서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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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 아랫마을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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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조은

    기사 참 잘 보았습니다. 고생하셨어요ㅎ

  • 지나가다가

    힘들네시고요,,즐거운추석돼셨는지 궁금하네요^^

  • 굿리빙

    보기 좋아요 ^^

  • p

    V사인을 한 분은 안프로님? 아니면 미프로?ㅋㅋㅋ
    집안일 하느라 못갔는데 여기서라도 보니 너무 반갑고 샘까지 나네요. ^^;;;
    화이링!! 홈리스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