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피로 물든 축제를 멈춰라”

2010 한국전자산업대전...그 곳에 반도체 노동자는 없었다

1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는 국내 최대의 IT전시회가 막을 올렸다. ‘2010 한국전자산업대전’이라는 이 행사는 ‘한국전자전(KES)', '국제반도체대전(i-SEDEX)', '국제정보디스플레이전(IMID)'등 3대 전시회를 한 자리에 묶은 국내 최대 규모의 IT전시회였다.


국내 최대의 규모인 전시회인 만큼,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전시회에 참여했다. 30개국 전자산업의 1000여개 업체와 해외바이어 2000여 명도 몰려들었다. 김황식 국무총리 역시 참가해 자리를 빛냈다.

참가자들이 IT산업 기술 발전에 축배를 드는 사이, 흰 방진복을 입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 10여명이 행사장 입구에 쓰러졌다. 흰 마스크에 흰 방진복을 착용하고, 등 뒤에는 낯 익은 이름을 붙인 채였다. 이 이름들은 지난 3년간, 각종 희귀 질병을 앓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이름이었다.


“IT는 나의 삶이었지만, 그것이 나를 부쉈다”
“IT's my life but broke my life"


전시회의 슬로건은 “IT's my life”였다. 하지만 IT가 삶이었던 노동자 30여 명은 이미 IT와 반도체 산업으로 목숨을 잃었다.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그들이 삼성에 입사했을 때 삼성은 그들의 삶이었지만 공장은 삶을 앗아갔다”고 말했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에서 발표한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피해 노동자는 1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혈액암을 비롯한 뇌종양, 유방암, 자궁경부암, 흑색종, 육아종 부터 생리불순, 자연유산, 근골격계 질환 등을 앓아왔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혈액암에 걸린 노동자들은 총 39명. 이 중 14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삼성 전자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100여명 역시 뇌종양, 유방암, 자연유산, 피부질환을 앓고 있다. 삼십 여명은 사망했다.

삼성과 정부는 노동자들이 작업장 유해환경 노출로 인해 희귀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독성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가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2009년 실시한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노출평가 부문 자문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9월까지 화학가스 누출 사고로 46건의 경보기가 작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성분파악조차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IBM에서 발생한 250여 명의 직업병 피해를 비롯해, 영국과 태국, 대만 등의 전자산업에서도 직업병 피해와 환경오염이 발생했다. ‘미래지향적 라이프 스타일’을 내세우는 IT산업은 현재를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아픔이었다.

“노동자 피로 물든 축제, 멈춰야 한다”

삼성은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 질병을 얻은 노동자들의 병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산재의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대신, 반도체와 IT 첨단 기술을 전시, 발명하며 대규모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때문에 반올림은 “인간의 건강권과 존엄을 짓밟고 생산되는 제품의 축제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며 전시회 개막에 맞춰 이 같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또한 “이 화려한 축제는 너무나 잔혹한 축제”라며 직업병 피해자들을 외면한 채 축제를 벌이는 정부와 삼성을 규탄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삼성의 사과와 산재보장, 유해화학물질과 독성정보 공개, 유해화학물질의 사용 중단이었다. 반올림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이 서림 그 제품을 찬양하기 전에, 죽은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해야 한다”고 외쳤다.


삼성전자는 이번 전시회에서 스마트 폰, 스마트 TV, 스마트 가전 등 첨단 혁신 제품을 선보였다. 로봇청소기와 세계 최초의 기능성 렌즈로 참가자들을 놀라게도 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에 노동자는 없었다. 치료비가 없어 병이 악화되거나, 수술비 때문에 수술을 미뤄야 하는 노동자들의 아픔은 고스란히 축제 비용으로 소비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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