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공조한 근로복지공단, “사과 할 이유 없다”

백혈병 유족들, “면담 하고나니 앞이 더 캄캄하다”

“면담하고 나오니 앞이 더 캄캄해.”

삼성 백혈병 유가족들은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과의 면담 후 울음을 터뜨렸다. 장장 3시간 동안의 면담을 마친 후였다.


공단, “공문에 하자가 없는데 뭐가 문제냐”

반올림과 유가족들은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근로복지공단에서 하룻밤을 꼬박 샜다. 3년간 산재 승인을 위해 근로복지공단 여기저기를 뛰어다녔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이사장이었기에, 그를 만나는 길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나마 이번 국정감사에서 유가족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이 공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루어진 면담이었다. 20일 오전 10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이번 면담에는 네 명의 유족과 이종란 노무사, 그리고 약 20여 명의 공단 측 직원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사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유가족들은 그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전 10시, 면담이 시작되자마자 유족과 공단 측 사이에 고성이 오고갔다. 공단 기획이사가 유족들에게 “내가 보기에는 이 공문에 전혀 하자가 없는데 뭐가 문제냐”며 “나는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하겠다”고 고함을 지른 것. 한동안 파행분위기를 맞았던 면담은 기획이사를 내보내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유가족과 공단 측의 간극은 너무도 컸다. 신 이사장은 논란이 된 공문에 대해 해명, 또는 사과를 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공단 측은 “이번 사건 말고도 산재 행정소송에서 근로복지공단이 피고로 들어올 때, 공단 자체의 대응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업 측에 참여토록 해왔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관행일 뿐, 삼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조치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한 “기업에 보낸 것도 아니고, 공단 끼리 주고받은 공문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산재 불승인에 대해서는 “산업안전관리공단의 역학조사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결과를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유족들의 “행정소송 1심에서 공단이 패소했을 때, 고등법원에 상고하지 말라”라는 요구에도 “공단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판단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나마 3시간의 지리한 면담이 이어지자, 공단 측은 산재 승인 요건 완화에 대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유족들의 행정소송에 대해서도 “앞으로 삼성과는 분리 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어떤 기준으로 산재 인정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면담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농성은 철수하지만 결코 덮고 지나가지 않을 것”

약 6년간 삼성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으로 장애인이 된 한혜경 씨의 모친 김시녀 씨는 19일 저녁, 춘천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혼자 있을 딸 걱정에 춘천으로 내려가야 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어제 저녁만 해도 안 만나 줄 것 같아서, 혼자 있을 딸이 걱정돼서 내려가려고 기차표를 끊었어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은 농성하고 있는데 혼자만 가기가 너무 미안했는데... 그래도 밤에 면담을 해 준다길래 결국 기차를 안탔어요. 딸애는 간호사에게 부탁해놓고... 간병인은 하루에 6만원이니 간병인 쓸 돈도 없고... 근데 오늘 아침 7시에 딸애한테 전화가 왔어요. 침대에 실수를 했는데 어떡하냐고... 그 말을 듣고 너무 가슴이 무너져서... 그런데 면담까지 이렇게 됐으니 어떡해요? 우리 딸은 이제 어떻게 치료받아요?”

약 2년간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규 씨도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들어갈 때 염려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어요. 하지만 역시나 바라던 내용은 전혀 없어요. 공단 측은 계속 법적으로 피해나갈 생각만 하고, 속 시원한 대답도 없었죠. 바뀐 것은 이사장의 얼굴을 봤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 해결될 때 까지 긴 시간 계속 싸울 겁니다. 그나저나 명화 씨가 골수이식을 해야 하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명화 씨를 죽이고 있는 겁니다.”

결국 유족들은 절망적인 면담만을 남긴 채 근로복지공단 내의 농성을 접기로 했다. 하지만 농성을 접는다고, 산재 승인을 위한 이들의 투쟁역시 접는 것은 아니다. 이종란 노무사는 “농성은 철수하지만, 결코 덮고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이사장 퇴진 투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은 3년 동안의 투쟁에도 전혀 변할 줄 모르는 기관”이라며 “앞으로 인정기준 문제 등에 대해 더욱 수위를 높여 투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반올림과 유족들은 22일 환노위 국감에 맞춰 환노위 위원실 농성을 계획하고 있다. 공단의 변하지 않는 태도와, 삼성 개입에 대한 문제를 환노위 위원들에게 알리고 이를 국정감사를 통해 공론화 시킨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감사 종료 시 까지 근로복지공단 앞 노숙 농성을 함께 진행해 나가며, 20일 저녁 6시 30분, 근로복지공단 앞 집중 투쟁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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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근로복지공단 , 산재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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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천안함에서 가족들이 물속의 군인들의 생사를 알려고 할때,국방부는 오히려 그 가족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대중적 여론과 국민들의 진실을 요구하는 힘에 밀려 군은 가족들을 군내부의 시설까지 내놓게 된 것이다.

    삼성도 마찬 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역사에는 수많은 부자들이 있었다.그러나 그들도 백성들의 진실의 요구 앞에서 그것을 부정하고 탄압할때 모든것을 잃게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삼성은 이문제를 국민의 진실의 요구를 피해서 어떤 해답도 있을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국회환경노동위가 죽고 죽어간 삼성반도체노동자들 그 가족들이 드러나고 드러나지 않은 현실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있다.

    정치권이 이문제를 해결할수 없다면 얼마나 더 죽어야 할 것인가?
    지금 병석에 누워있고 또 그 가족이 잠시도 간호를 할수 없는 상황이라면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여성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될까?
    민심의 진실은 무서운 것이다.보수언론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정치권에서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없다면 이문제는 사회적인 큰 문제로 정치권이 국민의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검증하게 될 것이다.

  • 한나라당해체결사대사령관

    노동복지공단은 노동자를 위한게 아닌 자본가들의 복지만 고려하는 공단은 노동자를 위하지 않을거면 해체하라! 노동자들의 상처를 연속적으로 상습적으로 줄것인가?

  • 한나라당해체결사대사령관

    회사가 동줄 테니 산재 포기하라는 말에 넘어가지 말고 무조건 산재신청을 유지합시다. 동지들.

  • 한나라당해체결사대사령관

    윗글의 동은 입막음질입니다. 동지들!

  • 한나라당해체결사대사령관

    삼성의 뇌물 받아먹고 반도체 화학약품 피폭사고 사망노동자유가족동지들에게 상처를 주는 삼성과 노동복지공단을 박살내자!노동자를 위한 산재보험을 해주지 않는 혈안이 된 삼성만을 위한 가짜 복지공단은 해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