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죽어갈 때, 그들은 축제를 했다

삼성 반도체 한혜경씨, 세 번째 산재신청...정부와 기업은 ‘반도체 축제’

“진짜 이러면 안돼요. 자꾸 이러면 나 같은 사람 또 나올 거예요. 진짜 이러면 안돼요.”


한혜경 씨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눈물 없는 울음을 토해냈다. 뇌종양 제거 수술로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눈동자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걷지도 못하고, 숟가락질도 못하고, 제대로 말할 수조차 없는 그녀지만, 더듬거리는 말 속에는 분노가 서려있다.

벌써 세 번째 산재신청이었다. 3월 24일, 8월 9일 산재 심사청구는 모두 불승인 처리됐다. 불승인 처리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 결과 업무관련성이 낮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혜경 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 결과를 도무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산재신청...“내일도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산업안전보건공단은 혜경 씨의 발병이 납과 유기농제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지만, 노출 수준이 높지 않다고 추정하며 산재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산재신청 당시, 혜경 씨가 일했던 삼성전자(주) LCD사업부 기흥공장의 현장은 이미 폐쇄된 상태였다.

27일, 근로복지공단에 재심사를 청구하기 전 혜경 씨의 모친 김시녀 씨는 “이미 증거가 없는 상태인데 무엇을 가지고 역학 조사를 진행했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해할 수 없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리가 계속될수록 김시녀 씨는 혜경 씨를 대신해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미 법원의 판례에는 ‘명백한 의학적 입증이 아닌, 업무와 질병간의 연관성이 어느 정도 추단되는 정도만 되어도 인과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나와 있어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그녀의 답답함 심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건강했던 딸이 하루아침에 1급 장애인이 된 것 역시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김시녀씨는 “지난 10월 19일이 혜경이가 수술한 지 5년이 되는 날이었다”면서 “종양 제거 수술로 혜경이는 맛도 느끼지 못하고,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제대로 보고 말 할 수조차 없어졌다”고 말했다.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던 혜경씨는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나왔다. 보행장애 1급, 시력장애 1급, 언어장애 1급 장애인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한다. 요즘은 숨 쉬면 머리가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모녀는 잔뜩 긴장을 하고 살 수밖에 없다.

수술비며 병원비 때문에 생계를 꾸려나갈 방법조차 없다. 김시녀씨는 “지금은 재활병원에 있는데, 한 3달 후 쫓겨날 것 같다”면서 “그러면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 비용은 정말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혼자 걸을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는 혜경씨를 보살피느라 김시녀씨 역시 경제활동을 포기한 상태다. 그녀는 “한 달에 집세가 28만원, 병원비가 35만원 정도 들어가고 나머지 식료품, 전기세, 수도세 등으로 소비한다”면서 “지금은 반올림의 도움으로 살고 있지만, 언제까지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고 심경을 전했다.


한혜경씨는 지난 1996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취직해 LCD 회로기판을 만들었다. 그 곳에서 혜경씨는 6년간 납으로 된 솔더크림과 플럭스, IPA등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안전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장갑조차 제대로 착용하지 못했다. 12시간 맞교대 근무에 밥 먹을 시간에도 잠을 잤다. 피부질환과 생리불순이 찾아왔다. 입사 3년차, 그때부터 월경이 없어졌다. 2005년 10월, 갑자기 쓰러진 뒤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혜경 씨와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동료들 역시 피부질환과 생리불순을 앓아왔다. 결혼 이후,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동료도 있었다.

“정말 열심히 일한 죄 밖에는 없어요. 진짜 이러면 안돼요. 나 같은 사람 또 나올 거예요. 위험물질 쓴다고 말을 해 줘요. 안전교육하고, 물질 위험하다고 말해요. 답답해요.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우는 동안, 그들은 축제를 했다.

한혜경, 김시녀 모녀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싸우고 있을 때, 정부와 기업은 ‘반도체 축제’를 준비 중이었다.

29일은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주관하는 ‘제 3회 반도체의 날’이다. 정부와 기업들은 ‘반도체산업 세계시장 점유율 20%, 수출 450억불, 반도체 2강 도약’을 선언하며 반도체의 날을 맞이했다.

하지만 6.3빌딩에서 개최된 ‘반도체의 날’행사에 노동자들은 없었다. 삼성에서 일하다 병에 걸린 100명의 노동자, 30명의 사망자는 기억되지 않았다. 단지 축제 바깥에서 한혜경, 김시녀 모녀와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만이, 삼성에서 죽어간 30명의 노동자와 100명의 병든 노동자를 추모할 뿐이었다.

공유정옥 반올림 활동가는 “성장, 기업, 국가경쟁력을 운운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사람, 그리고 목숨을 먼저 얘기하기 위해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들은 “수많은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고통을 말하지 않고, 오로지 경제성장과 성과만을 얘기하며 축제를 벌이는 오늘 이 곳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본질을 확인시켜주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김시녀 씨는 “6년 동안 삼성에서 일했던 내 딸이 장애 일급이 되어 돌아왔다”면서 “서른 셋의 딸과 외출 할 때, 빨대와 기저귀 같은 것을 챙겨야 하는 심정을 아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또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 없는 이 가혹한 세상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반올림과 금속노조, 아시아산업재해피해자권리를위한네트워크, 기술의사회적책임을위한국제운동 등 네 개의 단체는 ‘삼성의 직업병 책임 인정과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제공을 촉구하는 국제 청원 운동’에 돌입했다.

8개월 째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청원운동은 이미 7천 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들은 서명운동을 100만 선언운동으로 이어나가 삼성과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삼성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국내외의 전문가들의 서명운동도 시작됐다.

반올림은 “삼성이 피해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사과할 때까지,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들과 이미 죽어간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인정받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 정부가 삼성의 책임을 묻고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을 쟁취할 때까지 100만 청원운동은 전 세계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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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김영애

    헤경씨 너무힘들겟서요 ㅠㅠ
    한상힘내시고 웃음면서 보내시길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