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복직해야 하는데, 너무 길게 왔습니다”

기륭 보고대회, 투쟁 승리의 기쁨과 회한 교차해

김소연 분회장은 “기륭의 이번 합의로 비정규직 투쟁이 한 발 나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함께 복직하지 못하는 다른 조합원들 생각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

  김소연 기륭분회장이 함께 복직하지 못하는 다른 조합원들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인식이 끝나고 그는 주마등처럼 지나갈 6년간의 무수한 장면들 중에서도 2005년 7월, 노조결성보고대회 당시 순간을 기억했다.

“10분 동안 150여 명이 노조가입을 했어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드니까 해고 안 당할 수 있겠다며 눈물을 흘렸어요. 투쟁 초기에 합의가 잘 이뤄졌으면 조합원 전체가 다 같이 복직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길게 왔어요.”

그는 협상이 타결된 이후 가장 먼저 전명희 조합원의 묘소를 찾아가고 싶다고 했다. 전 조합원은 투쟁 중이던 2008년 암 투병을 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2008년 교섭할 때 복직 희망자를 파악했었어요. 그때 전명희 조합원이 이미 암 말기였거든요. 그래도 빨리 나아서 복직하고 싶다고 했어요. 아직도 희망자 명단에 들어가 있는데….”

김 분회장은 2008년, 1,000일을 넘기며 사회적 투쟁을 했을 당시 끝내 해결이 되지 않았을 때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때 정말 해결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어요. 그래도 안 되니까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이제 어떤 방법으로 투쟁을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그때 안에 합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회사에서 내놓은 안이라는 게 제3회사에 취업을 알선하겠다는 정도의 안이었어요. 그때 빈손으로 떠나는 한이 있어도 이 안은 받을 수 없다고 조합원들하고 울면서 결정했어요. 그 안을 받으면 다시 그런 생활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파견이라는 거, 일해 보지 않고는 그 고통 몰라요. 벌레 보는 듯한 눈빛, 똑같이 일해도 절반의 임금, 무분별한 해고…. 그게 끔찍해서 싸우는데, 포기하면 다시 파견직으로 일해야 하니까. 끝장 보자고 했죠.”

투쟁을 길게 온 이유는 물론 ‘파견법’이었다. 그런 만큼 파견법 철폐에 대한 그의 의지는 여전히 확고했다.

“우리 문제는 해결됐지만 2년 미만 불법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어요. 당장은 지친 심신도 챙기고 가족도 챙기고, 쉬는 동안 전국 순회를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파견법 문제로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산증인인 우리가 이야기해야죠. 폭로는 당사자밖에 할 수 없잖아요. 법이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할 수 있도록, 제2, 제3의 기륭이 나오지 않도록 할 거예요.”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는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들에 대한 응원과 격려도 잊지 않았다.

“많은 동지들이 우스갯소리로 먼저 투쟁 시작한 우리한테 ‘똥차가 빠져야 우리도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소원 풀게 됐죠.(웃음) 우리 합의로 한 발 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힘냈으면 좋겠어요. 동희오토, 재능, GM 다 잘 될 거예요. 그리고 지금 힘든 KEC동지들 힘냈으면 좋겠어요. 정당하고 소박한 요구를 위해 목숨 걸고 분신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극복해야죠.”

4시, 기륭 구사옥에서 백여 명의 연대단체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기륭분회는 보고대회를 갖고 지난 투쟁을 정리했다.

20일 동안 곡기를 끊고 단식을 이어온 두 조합원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듯, 그리고 기쁨보다 허탈함이 앞서는 듯 망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석순 조합원은 “아직 얼떨떨하다”며 쉰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뗐다.

“세 시에 조인식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도 머리가 텅 빈 듯 특별한 감정이 안 생기다가 ‘이 조인식 때문에 세 번씩 단식하고 고공에도 올라갔어야 했나.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우리 승리가 완벽한 당장 정규직 복직 아니지만 2년 이하 파견직 노동자가 승리를 얻어냈다는 데 만족하겠다. 이렇게 6년 동안 올 수 있었던 건 여러분들이 정말 많이 힘 써주고 마음 써준 덕분이다. 많은 분들이 연대한 것처럼 나 역시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겠다.”

윤종희 조합원은 모두 복직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을 이야기하며 목이 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단식 20일 차인 윤종희 조합원이 발언을 하다 목이 메인 듯 잠시 말을 멈췄다.

“2005년 구속됐을 때 가족밖에 면회가 안 되서 면회 온 조합원이 친정 엄마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그 조합원을 엄마라고 부르는데 오늘 조인식이라고 차마 전화를 못 했다. 우리 조합원 모두가 함께 복직할 수 없다는 너무 큰 죄책감 때문에…. 이 미안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미안함 안고 조합 활동 열심히 해나가야 할 것 같다.”

두 조합원은 5시 반쯤 단식을 정리하고 녹색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 이들은 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오는 금요일 5시에는 기륭전자 구사옥 공터 안에서 승리보고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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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다...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기륭동지들...
    눈물이 자꾸 난다.
    동지들을 보면서

  • 흠..

    2008년 시청 앞 도로 가로질러 불법주차 해놨던 전경버스에 최동열이란 이르믈 보고 뭔가 싶었는데;;;그땐 초딩이 친구이름 가지고 장난한건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