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죠. 물도 끊고 전기도 끊고 음식물도 제대로 반입이 안 된다는데... 동생들이 안 다치고 안 아프고 잘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1공장 안에서 만난 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8~9년을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 '동생'들이 무사하기를 바랐다.
의장1부 B조 00반은 정규직이 35명이고 비정규직이 10명이다. 1/3 가까이가 비정규직인 셈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컨베어벨트에 실려오는 클릭이나 베르나, 신형 액센트 차체에 엔진 컨네트를 장착하거나 내장 카바를 씌우는 일들을 섞여서 함께 해왔다.
현대차 생산라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본격 '투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IMF와 정리해고 반대 36일 파업 이후부터다. 희망퇴직, 정리해고 등으로 1만여 명이 빠져나간 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2000년 현대차노조 정갑득 집행부는 비정규직 투입 비율을 16.9%로 제한하기로 회사와 합의한다. 하지만 이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비정규직은 1/3을 넘어섰다.
"10년 넘게 정규직 신입 사원을 안 뽑았어요. 국가유공자로 한두 명 채용된 것 말고는 전부 다 업체(비정규직)에서 들어왔어요. 그 사이에 정년퇴직으로 자연 감소한 인원이 상당할 텐데 그 인원수만큼 비정규직이 늘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당연히 정규직이 돼야죠. 같이 일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비정규직 스스로 단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2003년 현대차비정규직노조가 설립됐고,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계기로 2005년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요구하는 비정규직노조의 파업과 5공장 점거농성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류기혁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정규직노조는 2006년 임금협상을 하면서 부분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그 이후 비정규직노조는 제대로 된 파업을 하지 못했고, 노조 설립 당시 2000명에 육박하던 조합원 수도 600여명으로 줄었다.
한편 정규직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노조로 받아들이는 1사1노조 규약개정안이 세 차례나 부결됐고, 비정규직을 고용 안전판으로 여기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가 도마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1공장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정규직이 돼야죠. 지금까지 같이 일해 왔고 함께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좋죠."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고 판결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노조로 모여들었고 울산, 아산, 전주공장 비정규직 조합원수는 2500명을 넘어섰다.
비정규직노조는 11월15일 업체 폐업과 신규 계약서 서명 강요에 맞선 시트1부 동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1공장 도어 탈착 작업장을 점거하고 11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조합원총회 부치면 노노갈등으로 갈 공산이 큽니다"
정규직지부와 비정규직지회, 금속노조는 24일 만나 현대차 회사에 특별교섭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금속노조는 현대차 회사가 불법파견 특별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12월초 총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하지만 현대차지부는 총파업 전에 조합원총회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
"조합원총회에 부치면 노노갈등으로 갈 공산이 큽니다. 파업 가결된다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비정규직이 목숨 걸고 싸우는 마당에 정규직이 도와줘야 하는데 부결돼 보세요. 자동차노조는 완전히 고립될 겁니다.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우리가 파업할 때 '저거들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놈들이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총회 부치는 거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금속노조 차원에서 잔업거부를 하든가 총파업 지침대로 하면 될텐데 굳이 지부가 조합원총회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조합원 찬반투표를 하더라도 가결될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정규직들 나이 든 사람이 많은데 자식들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중에 내 자식이 어떻게 될 건가 생각해 보세요. 반대 표 찍겠어요?"라고 했지만 총회 가결을 장담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 이기는 수밖에 없어요"
1공장 정규직 조합원들은 11일째 점거파업을 벌이고 있는 '동생'들에게 "이렇게 된 거 최선을 다해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면서 "지금이 고립되고 서서히 지쳐갈 땐데 건강 챙기고 안 약해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가슴이 아픕니다. 저기 쓰레기통 보이죠. 단수 된다는 말에 그걸 씻어서 물받이로 쓰라고 몇 개 올려 보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제발 안 다치고 안 아프고 잘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회사를 위해서 야간 주간 그렇게 고생했는데 법 이런 걸 다 떠나서 먹을 거라도 제때 올려보내줬으면 좋겠어요."
11일째 도어 탈착 작업장을 점거해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화 요구가 관철되기 전에는 농성을 절대 풀지 않는다는 의지를 거듭 밝혀왔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이상수 지회장은 25일 "교섭창구가 열리면 농성을 해제하느냐는 말도 나오지만 교섭이 열리더라도 우리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계속 농성을 진행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울산=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