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근로복지공단의 계속되는 산재 불승인 처리에 지난 1월 11일,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등 행정소송을 접수했다. 원고 측 5명의 유족과 당사자들은 10개월 간 5차례의 변론준비기일을 마치고 지난 25일 오후 3시 30분, 서울 행정법원 203호 법정에서 첫 재판을 열었다.
이번 재판에서는 원고 측인 반올림의 소송 대리인단을 비롯해, 피고 측인 근로복지공단을 대신해 피고보조참가인으로 삼성전자주식회사의 대리인단이 참석했다. 이들은 백혈병 노동자들의 질병이 업무 과정과 연관이 있는지와, 공장의 작업환경, 유해물질 사용 여부 등을 놓고 상이한 의견을 피력했다.
‘삼성’에서 백혈병을 얻은 사람들
![]()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황유미씨와 3라인 3베이에서 2인 1조로 작업하던 고 이숙영씨 역시 급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6년 8월,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한 지 11년 만인 2006년 7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똑같은 라인에서 똑같은 작업을 한 두 명의 여성 노동자는 같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됐다.
현재 급성전골구성 백혈병을 투병중인 원고 측 김옥이씨는 1991년 입사 후, 5년간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는 퇴사 후 7년간 전업주부로 지냈지만, 지난 2005년 1월, 급성전골구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원고 정애정씨의 남편 고 황민웅씨는 1997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설비엔지니어로 입사 한 후, 7년 동안 설비 유지 및 보수 업무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 2004년 10월,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5년 7월,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온양공장의 설비 엔지니어였던 송창호 씨 역시 1993년 입사 후 약 6년간 일을 하다 2008년 10월 경, 악성 B세포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이들 5명은 지난 2007년 6월과 2008년 4월에 걸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지만, 2009년 5월 전원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심사, 재심사 청구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현재까지 산재를 신청한 10명의 백혈병 피해자에 대해 공단은 전원 불승인 처리를 내렸으며, 현재 심의를 기다리는 6인의 피해자 역시 산재 승인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백혈병 노동자들, 유해물질 노출 됐나
이번 재판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백혈병 노동자들이 직접 유해물질에 노출 됐는지 여부였다. 원고 측 대리인단은 황유미, 이숙영씨가 일했던 기흥공장의 총 6개의 웨이퍼 가공공정을 제시하며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을 제기 했다. 공정 과정의 하나인 감광공정의 감광제에는 벤젠이 포함돼 있으며, 식각공정 과정에서도 산화에틸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6가지 공정이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공정과정에서 웨이퍼는 이전 공정으로 반복, 순환하기도 해 다른 공정의 유해물질이 다른 공정 근로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원고 측은 “공정반복에 따라 종전 감광, 식각공정에서 발생한 벤젠과 산화에틸렌에 확산공정 등 다른 공정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들도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벤젠은 백혈병, 림프종을 유발시키며, 산화에틸렌은 백혈병, 림프종, 간암, 신장암 등을 유발시키는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성 측 대리인단은 웨이퍼 가공과정에서의 유해물질이 다른 공정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감광공정은 ‘감광-감광제 제거-건식 식각’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공정 과정은 세트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감광제가 제거 된 채로 다른 공정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삼성 측은 “특히 원고 측 근로자 중 감광 공정과 임플란트 공정에 근무한 사람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또한 온양공장에서 반도체 조립공정에 참여했던 김옥이 씨는 반도체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을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TCE는 백혈병, 림프종, 간암을 일으키는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성측은 “사용 빈도나 양이 적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발병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TCE는 200ml의 밀폐 용기에 담겨 있었으며, 사용 시 극소량을 면봉에 묻혀 사용했기 때문에 노출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사용 빈도 또한 하루에 4-5회 정도로 극히 적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황민웅 씨는 기흥반도체에서 오퍼레이터로 일하며, 유지와 보수의 작업을 해 왔다. 때문에 그 역시 감광, 식각, 증착, 임플란트 과정에서 각각 벤젠과 산화에틸렌, TCE, 비소화합물에 노출됐다고 알려졌다. 온양반도체에서 도금 작업을 했던 송창호 씨 역시 오염제거와 세척, 그리고 도금 과정에서 각각 TCE, 납, 포름알데히드에 노출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 측 대리인단은 “그들은 모니터링, 설비와 보수, 지표관리가 주된 업무였으며, 라인 밖에서 모니터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라인으로 들어와 설비와 보수 작업을 수행했다”면서 “발암물질이나 백혈병 관련 화학 물질을 다룬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벤젠, 산화에틸렌 등 발암물질 다뤄졌나
원고 측 변호인단은 지난 9월, 참여연대에서 발표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작업환경 역학조사를 제시하며, 벤젠 등 발암 물질이 공장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학교 역학조사에 따르면, 40~50여 종의 감광제 중 6건의 분석결과에서 모두 벤젠이 검출 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감광제에서는 벤젠 뿐 아니라 에틸렌글리콜류 화합물도 검출 됐으며, 이는 2007년 식각공정에서도 검출 됐다. 기흥공장에서 사용하는 99종의 화학제품 중 10종은 성분이 미확인 됐으며, 온양공장에서 사용하는 33종의 화학제품 중 3종 역시 성분이 미확인 됐다.
이에 대해 삼성측 대리인단은 “참가인 반도체 사업장에는 벤젠을 포함하여 산화에틸렌, 포름, 비소, TCE등을 사용금지 물질로 지정하고 있다”면서 “원고 측인 주장하는 감광제에 벤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벤젠이 검출됐다는 서울대의 역학 조사는 벌크 용약 자체를 분석한 것으로, 공기 중의 벤젠을 조사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와 비교해 한계를 가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
또한 피고 측은 서울대 역학조사에 대해 “서울대가 자체 측정한 것이 아닌, 과거 2007년에 실시한 작업환경 측정결과 서류를 제출받아 재분류, 집계한 것”이라며 “또한 라인마다 사용물질이 다르고, 근무자도 다른데 사업장 전체 라인의 측정 결과를 집계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원고 측에서는 노동부 고시의 노출기준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있는 기준은 문제가 있다고 맞섰다. 현재 산업안전관리공단 등의 역학조사는, 노출기준 이사 수준에서는 거의 모든 근로자에게 건강상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있지만 △단시간 집중 노출 가능 △2종 이상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 상승작용 △개인차가 있으므로 노출기준 이하에서도 발병가능하다는 판단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원고 측은 공장 작업환경에 대한 서울대 역학조사를 제시하며 “만성적인 저농도 오염과, 배기시간을 지키지 않은 문제 등 일상적인 작업 환경에서의 유해 물질에 노동자들이 노출됐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원고 측 노동자들은 발암 유해물질을 다루지 않았으며, 참고인 반도체 회사는 탑다운 배기장치, 국소배기장치 등을 통해 유해물질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2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진행됐다. 양 측은 각각 40분씩 발언기회가 주어졌으며, 특히 삼성 측 대리인단은 이날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기흥, 온양 반도체 공장에서의 공정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공정작업에 대한 간략한 영상을 통해 업무상의 질병 연관성을 부인하기도 했다. 영상에서는 근로자들이 방진복과 마스크, 장갑, 고글 토시, 앞치마 등의 안전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안전장치 또한 완벽히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삼성 측이 제시한 공정 과정은, 이미 원고들이 근무했던 환경과는 많이 달라진 상태다. 재판부 역시 이를 인지하여, 피고 측이 요청한 현장 방문을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새로운 설비들이 갖추어진 현 공정에 대한 설명은 ‘공정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라는 삼성 측의 설명에도, 그 사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는 법정에서 “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사고가 발생한 라인은 이미 없어졌는데, 저들은 신형 라인을 보여주면서 사실을 왜곡, 호도 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또한 삼성 측 대리인단이 제시한 교과서적인 공정 과정의 매뉴얼은, 실상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고 황민웅 씨의 부인 정애정씨는 “저렇게만 일했으면 피해자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백혈병 피해자 당사자들과 유족들은, 공정 과정에서 안전 교육이 미흡했으며, 장갑 등의 안전 보호 장구의 미착용이 많았다고 증언해 왔다. 매뉴얼을 지키다 보면, 물량을 기대치만큼 생산해 내지 못하고, 이는 실적에 곧바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공정에서 착용하는 방진복 등의 안전 장구 또한 근로자를 유해물질로부터 보호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 측은 “방진복은 얇은 나일론 재질이며, 방진마스크는 천 재질”이라며 “이것들은 먼지에 민감한 웨이퍼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화학물질이나 가스로부터 인체를 보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또한 화학물질이 튀기면 방진복에 신속히 스며들어 피부에 닿는다”고 덧붙였다.
정애정씨는 이어서 “엔지니어의 경우에도 삼성 측은 라인 밖에서 컴퓨터 모니터링과 지표관리를 하다 문제가 생겼을 시 설비와 보수를 수행한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엔지니어들은 하루 종일 라인 안에서 설비와 보수를 담당했으며, 지표관리 등의 일은 근무 외의 일로 다뤄졌다”고 주장했다.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 추단되면 산재 인정해야”
또한 원고 측은 현재의 산재보험 심사위원회의 판단 근거가 업무기인성의 법리를 오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997년 대법원의 판결에서는 업무와 재해사시의 상당인과관계는 반드시 직접적인 증거에 의해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사실에 의해 업무와 재해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될 정도로 보면 족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
[출처: 반올림] |
또한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부비동암에 대한 업무관련성을 인정한 판례에 따르면, “그 질병이 발병원인물질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중략)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맞다”고 나와 있다.
때문에 원고 측은 각종 백혈병 관련 판례를 제시하며 “업무와 재해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개인적인 요인이나 타 원인에 의한 발병이라는 입증을 하지 않는 이상, 업무상재해가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측이 제시한 판례문에는 △허용기준 미만의 노출로도 개인의 면역력 차이에 따라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근무기간이 1년이 채 되지 않았어도 유해물질 등에 노출되었다면 발병할 수 있다 △직접적 자료가 없어도 간접적 사실이나 의학적 외신으로 유해물질 추정해 업무기인성을 인정한다는 등의 결정문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피고 측 대리인단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면서 “무엇보다 합리적, 객관적 판단에 의해 인과관계를 밝혀내야 하며, 근로복지공단에서 이미 결정한 것과 같이 해당 근로자의 질병과 반도체 공장의 업무와는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백혈병 노동자들과 삼성측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2월 27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리는 2차 변론기일에는 원고 측이 요구한 증인들이 출석할 예정이다. 이 날에는 기흥공장과 온양공장의 노동자가 각각 나와 사실관계를 진술할 예정이며, 오는 1월에는 원고측 전문가 증인 백도명, 공정옥, 김현주 박사가 각각 출석해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예정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