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안 통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간접고용이 만들어낸 현대차 비정규노동자들의 풍경

현대차 사측이 교섭조차 나서지 않으면서 불법파견에 대한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현대차 비정규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은 사용사업주인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불법파견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회피하고 있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농성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것보다 좀 더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 마다 업체를 바꾸고 재계약을 해요. 그런데 그것도 하청노동자의 계약업체를 바꾸는 방식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현대차 사내하청 (가)기업과 (나)기업의 노동자를 서로 맞바꾸는 방식으로 재계약을 해요. 그러니까 노동자가 요기서 일했다가 다시 저기서 일했다가… 계속 그렇게 반복해서 11개월마다 옮겨 다니는 거죠. 그러면 같은 공정에 있기 때문에 조장을 빼서 업무를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잇점도 보너스로 챙기죠. 4공장 ㅅ기업의 경우 대략 60%가량이 그렇게 반복해서 전환계약을 해요.”

비용절감은 기업이 파견 등의 간접고용을 선택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파견업체간의 경쟁관계를 통해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저임금의 문제를 파견사업주에게 전가할 수 있다. 파견업체는 비정규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낮추면서 업체 간의 경쟁비용과 자신의 이윤을 얻는다. 이렇게 원청과 하청 그리고 하청노동자로 이어지는 관계에서 중간착취 구조가 만들어 진다.


“원래 근로계약서에 월급을 5일에 주기로 되어 있는데, 업체에서는 15일에 줍니다. 다 합치면 꾀 큰 금액이니까 그 10일이면 이자가 붙지 않습니까. 그 먹으려고 10일 미뤄서 임금 줍니다.”

“연월차를 못 쓰게 해도 작업량이 많아 사람이 부족하면 그나마 하청노동자를 늘이는 방식이 아니라 그때그때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써요. 그러면 업체야 좋죠. 아르바이트한테는 상여금이나 연월차를 안 줘도 되니까.”


현대차의 경우 원청과 하청의 관계에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사장에 전직 원청 직원이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중 ㄷ산업의 경우 전직 현대차 생산관리2부 과장이 사장으로 있어요.”

“이번 동성기업 폐업으로 우리가 파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날 새로 들어온 업체 사장이 바로 4공장 노무관리 팀장입니다. 완전히 이건 뭐 비정규 투쟁 정리하라고 일부러 하청업체 사장 명함 하나 파서 내려온 것 밖에 더 됩니까.”

“원청 직원이었다가 하청업체 사장으로 오면 돈 많이 벌거든요. 어떤 업체까지 있었냐면, 사장으로 있으면서 번 돈으로 울산에 고기집을 차렸어요. 그래놓고 회식만 하면 자기 고기집으로 가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비싼 술은 먹지도 못하게 해요. 사람이 먹다보면 복분자도 먹고 싶을 때가 있고, 백세주도 한 잔 하고 싶을 때가 있잖습니까? 근데 돈이 아까우니까 무조건 소주만 먹으라고 하는 거에요. 또 다른 업체는 관리자가 회식 장소를 정하면 무조건 그리로 가야돼요. 그런데 이 관리자들이 꼭 차를 타고 가야하는 먼 곳으로 회식 장소를 잡아요. 그래야 우리가 술도 덜 먹고, 또 멀리 움직이기 귀찮은 사람들은 빠지고… 그러니까. 그러면 회식비에서 돈이 또 굳는 거잖아요.”


이렇게 노동자들의 이야기 중에는 헛웃음마저 나오게 하는 어이없는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파견 등의 간접고용을 고집하는 데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현대차의 경우 불법파견은 고용조정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을 이용해서 노동조합 활동을 억압하거나 노동조건 악화의 방패막이로 사용되고 있었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이 비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면서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의 투입과 해고를 반복해 왔다는 것은 이미 한국 사회에 상식이 돼버렸다.

“현대차가 2003년까지만 해도 사내하청노동자와 신규채용을 4:6 비율로 정규직화 했는데, 그 다음해부터 지금까지 아예 정규직을 안 뽑았어요.”

사실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견법이 도입된 취지가 노동유연화였으니, 어쩌면 당연일이겠지만 그것이 유발하는 비정규노동자의 고용불안은 더 많은 문제를 안겨줬다. 6개월 11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고용이 유지되는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그 고용에 대한 불안이다.


“노조활동이 어렵기도하고 기본적으로 가입 자체가 비정규직에게는 위험 부담이 크죠. 업체에서 ‘너 노조 가입하면 계약해지 한다’고 협박을 하니까요.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는 것 자체를 못하게 해요. 아무래도 모이면 업체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오갈 게 뻔하잖아요. 한번은 체육대회를 하기로 했는데, 취소하고 개별로 1만원씩 지급하더라구요. 체육대회를 못하게 했으면 그 돈을 우리한테 주면 우리가 알아서 회식을 하든 알아서 같이 쓸 텐데 그것도 못하게 하는 거죠. 그래 놓고 한다는 소리가 ‘회식했다고 해라’ 그래요.”

말해봐야 뭐하나 싶었을까. 옆에서 듣기만 하던 한 노동자는 “상식이 안 통합니다. 안 그렇습니까?”하고 이내 돌아서버렸다.

비정규노동자에겐 노조의 가입이나 활동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앞서 노조를 만드는 것부터가 장벽이다. 그리고 고용을 손에 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4공장 S기업의 경우 노동자의 연월차 사용도 못하게 해요. 물량에 비해 사람이 적으니까 징검다리 휴일이나 명절의 경우 월차를 껴서 연속으로 쉬지 못하게 합니다. 그나마도 착하거나 어리숙한 노동자들은 다루기가 쉬우니까 더 막 대하는 편이에요. 제 동료의 경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월차 낸다고 하니까 소장이 ‘진짜 아픈 건지 확인 해봐야 된다’고 동료의 아내에게 직접 전화를 하더라구요. 그런 전화를 받은 그 아내도 얼마나 속이 상했겠어요. 그 동료도 지금 우리랑 같이 점거농성하고 있는데, 아내가 우리 파업을 적극 지지한다고 그러더라구요.”

“하청노동자라도 우리는 대공장 하청인데다가 노조가 있잖아요. 그렇지 못한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보다도 못한 생활을 한다고 봐야죠. 여기 현대차에서도 5공장이나 수출선적쪽은 노조가 없어서 아마 더 힘들거예요. 5공장의 경우 2005년에 불법파견 투쟁을 하다가 노동자 100여 명이 해고 됐었거든요.”


이처럼 기업이 파견 등의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것은 이처럼 경기변화에 따른 고용조정이 더 쉽고 인력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의 경우처럼 실제 사용사업주가 인력 관리와 통제를 하청업체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차 사측과 비정규지회는 그 지점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점거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지회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현대차 사측은 교섭의 의무가 없다며 교섭 자체를 회피하고 있는 현 상황이 위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대차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실은 불법파견의 여부를 떠나 간접고용 형태의 근로계약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격이기도 하다. 이랜드-뉴코아, 기륭, 동희오토, 수많은 청소용역, KTX여승무원, 코스콤, 하이닉스매그나칩 등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공통된 현실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파견법 허용업종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파견법 허용 12년차, 비정규노동자들을 옭아맨 그 간접고용의 굴레가 더욱 더 조여질 기세다. ‘이미 널리 확산된 불법파견을 아예 합법화하기 위한 의도’라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미 기업들은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아예 계약서에 파견법 확대 대상에 포함될 직종 하나 더 써 넣어서 근로계약을 하라고 합니다. 계약서에 그 몇 글자 넣기만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되니까 그렇게 피해가려는 거죠. 그래서 계약서 안 쓴 사람도 많아요.”

LG투자증권과 이트레이드증권은 각각 지난 6월과 10월, 2010년 현대자동차의 연간 순이익이 5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지금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13일째 하루에 김밥 한두 줄 먹으며, 차가운 공장 바닥에서 비닐 한 장을 이불삼아 잠자고 있다. (울산=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
태그

비정규직 , 파업 , 현대차 , 간접고용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합동취재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사람

    불법파견이라...비정규직이라...
    보다 많은 이윤을 위해서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 힘내세요!!

  • 사랑

    노동자님들 힘내시고 화이팅 입니다

    절대로 굴복하지 마시고 승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