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무룡산 위로 해가 뜬다

[르뽀]점거공장과 공장 불빛이 공존하는 울산공장

무룡산 위로 다시 해가 뜬다. 현대차 울산공장 쪽문을 포함해 40여개의 문으로 아침7시부터 구내버스, 오토바이, 자전거 출근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까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승용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걸어가기도 한다. 비정규직이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가 컨테이너박스, ‘몽구산성’을 쌓아 놓아 막힌 정문은 출근행렬에서 예외다. 노동자들은 명촌 정문-중문-주차장 쪽 문으로 들어와 만나는 삼거리가 아침저녁으로 가장 복잡해 가끔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 사이로 명촌 주차장 쪽 문에서 삼보일배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띤다. ‘우리 노동자는 하나입니다’ ‘자녀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습니다’는 몸벽보를 하고 출근하는 노동자를 향해 엎드려 절한다. 중문밖에는 비정규직이 줄이어 서 출근선전전을 하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호소한다. 교통 정리하는 호루라기가 ‘삑’ 소리를 내면 공장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정규직 틈새에서 비정규직 모습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들린다. ‘현대차는 불법을 저지르지 말고 대법원 판결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출근하는 사람과 퇴근하는 사람이 만나고, 자전거가 오토바이가 교차하고, 출근하는 노동자와 삼보일배 하는 노동자가 지나치고, 컨베어라인이 멈춘 점거농성장과 라인이 돌아가는 공장이 공존하면서도 공장안 명촌천이 태화강과 만나 동해로 유유히 흘러가는 곳. 그곳은 3만5천여명이 일하는 도시 현대차 울산공장이다.



그때 우리 젊은 날, 그리고 비정규직 파업

날이 어두워도 공장안 불빛은 빛난다. 비정규 노동자가 점거농성중인 1공장 근처 스타렉스, 제너시스 스포츠카를 만드는 4공장 노동자들은 컨베어라인을 탄다. 아반떼, 산타페를 만드는 2공장, 아반떼를 만드는 3공장, 제너시스, 투산, 에쿠스를 만드는 5공장 불빛도 밝았다.

그 불빛 사이로 회사측 선무방송이 공장안에 울려 퍼진다. “불법점거자...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형사처벌...” 회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에는 답이 없고, 점거농성을 해제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하겠다고 선무방송 했다. 4공장 노조(현대차지부) 간부들이 모여 있는 4공장 대의원실까지 선무방송은 들리지 않았다.

“자기 아버지는 정규직인데 아들은 비정규직이고, 그 중에 점거농성 한다고 올라간 아들도 있고, 그런 사람 많다. 현직 (정규직)대의원 중에 아들이 점거농성 하러 올라간 사람도 있다. 여기는 학연, 지연, 동호회, 향토회로 얽혀있다. 이번에 조기축구 동호회 모였는데, 애들이 별로 안 왔다. 점거 농성하러 갔다.(웃음)”

어두운 밤에도 4공장 라인은 돌아간다.

  어두운 밤에도 4공장 라인은 돌아간다.

바로 98년도를 회상하며 현재 비정규직 파업과 비교하기도 했다. 정리해고에 맞선 36일간의 점거파업은 10년이 넘었지만 진한 기억으로 남은 듯 했다. 14년 근무한 정규직 노동자가 ‘막내’라고 하니 정규직 노동자들은 98년 파업을 깊게 든 얕게 든 대부분 경험했다.

“우리는 그때 젊었다. 지금 비정규직은 그때 우리처럼 젊다. 젊은 사람들이 폭력으로 맞고 끌려나오는데 눈이 돌아가지. 피 끊는 청춘이다. 밀리고 땡기고 하다 점거농성에 들어간 거다. 그때랑 다른 것도 있지만 비슷한 것도 있다”

정규직의 파업 경험, 2010년 비정규직 파업의 공존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현대차지부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의원들은 투쟁의 역사가 깊은 근처 A사업장은 지금 ‘어용노조’가 됐다며 무시했다. 그곳 비정규직은 상대적으로 ‘더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지만 현대차 비정규직은 공장까지 멈췄다며 치켜세웠다.

유쾌하지 않은 파업의 기억도 있다. 98년 파업 뒤 해고자-비해고자, 파업참가자-비참가자, 무급휴직자 등으로 노동자가 갈라져 ‘삭막한 공장’으로 변했단다. 비정규직 파업을 그때와 비교하며 “지금부터 그런 걱정하는 건 앞서간 생각일 수 있지만, 98년 경험이 있다 보니... 지부에서 조합원총회를 한다고 하는데, 그럼 노동자끼리 갈등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화하며 대의원들은 중간 중간 티비를 봤다. 축구경기가 한창이다. 시원하게 골이 들어가듯 이번 투쟁의 해법은 무엇일까? 어느 대의원은 현장 분위기가 “억수로 좋다”며 현대차지부가 조합원들에게 연대투쟁 지침을 빨리 내려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투쟁 지침이 내려왔을 때 얼마나 많은 조합원이 행동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조합원은 다 알고 있지만 속내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대의원은 해법에 대해 “그거 알면... 지부장도 모르고, 금속 위원장도 모를걸?”이라고 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무룡산 위로 해가 뜨는 아침 노동자들이 출퇴근한다. 비정규직의 파업을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은 어디로 향해 갈까.

B55코드 현실, 그래도

늦은 시간, 3공장 1층을 지나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에 대의원실이 있다. 그 중 한 대의원은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했다. 그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지지해도, 금속노조가 총파업에 나서면 얼마나 많은 현대차지부 조합원이 행동할지 의문을 나타냈다. 3공장에서 1공장까지 걸어가는 데 25분쯤 걸리는데 ‘그 조차 힘들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은 고령화됐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보다는 아이들 사교육비, 생활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근 하루라도 더 해서 돈 벌려고 한다. 동료 한 사람은 아이가 ‘한 대가리(특근) 더 해서 고기 사줘 아빠’라고 했단다. 솔직히 금전적 불이익을 받는 걸 싫어한다. 각 공장에서 일을 더 하기 위해 (차량)물량을 서로 양보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느 공장은 일이 많고, 어느 공장은 일이 적다. IMF이후 공장 정서가 메말랐고, 옛날처럼 열성적으로 노조 활동하는 사람들이 적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 IMF 이후 현대차 자본이 ‘돈 많이 줄께 차만 만들어라’며 우리를 길들여 놨다”

일례로 ‘B55코드’를 들었다. 하루 총파업하면 회사는 개인 근태관리 기록에 B55를 입력해 무단이탈 처리한다. 연차, 월차, 각 종 수당 등 빠지면 몇 십만 원. 일부 조합원들의 불만이 터진다. 또 내년 퇴직금이 연금제도로 되면서 중간정산을 계획하던 일부 조합원도 한숨을 쉰다. 연말에 특근, 잔업 등 최대한 일을 많이 해야 퇴직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묻지 않아도 그는 자연스럽게 금속노조 총파업 결정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현대차지부 일이 아닌 비정규직지회 일로 총파업 하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은 정당하고, 안타까운 사회적인 문제라며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을 제시했다.

“제일 문제는 노동계가 자본을 상대로 98년 파견법을 허용하면서 민주노총 합법화와 맞바꾼 거죠. 노동계가 파견법을 허용하면서 비정규직이 무수히 생겨난 거죠. 지금 진보정당 가 있는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 그때 합의 한 사람들이잖아요. 이거는 정치권에서 풀어야 해요. 합의한 사람들이 풀라고 해요”

  비정규 노동자가 점거중인 울산1공장

  공장안에 명촌천이 유유히 흐른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해가 밝아도 4공장 라인은 돌았다. 4공장, 1공장 주변에서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조합원들은 종종 족구를 했다. 가끔 근무시간에 공장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1공장 말고 다른 공장에서도 부분파업을 하니까 관리자들이 긴장한단다.

노동자들은 오전10시가 되자 라인 옆에서 잠시 쉬었다. 4공장 라인 옆 휴게실에서 만난 50대 조합원은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의 1공장 점거는 성급했다며, 비정규직지회가 정규직 조합원들까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뒤늦게 쉬러 온 40대 4공장 조합원도 속내를 드러냈다.

“자식들 일인데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노조에서 이렇게 하자고 해야 어느 정도 호응도 있겠고. 이번 일에서 노노분열은 안 된다. 딴 거는 잘 모르겠지만, 원인제공자는 회사니까 회사가 먼저 비정규직에게 손 내밀어야 한다”

4공장 계단을 오르니 50대 반장과 40대 조장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장 중간관리자인 반장, 조장도 현대차지부 조합원이다. 이번 파업으로 입장이 난감할 때가 있다면서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87년, 90년대 초반까지 같은 입장이었다. 그때는 임금, 복지 등으로 싸웠다. 정규직도 입장이 바뀌면 지금 비정규직이 싸우는 것처럼 똑같이 할지 모른다. 인간으로 같이 일하는 데 우리가 비정규직처럼 되면 더 할 수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상대적으로 소수다 보니... 정규직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하면 다 미안해한다. 실천으로 옮기는 게 어려운거다”

“서로 얼굴 맞대고 생활하는 데 저렇게 되니 안타깝다. 정규직 요구가 틀린 말은 아니다. 정규직들도 생각이 있다. 한꺼번에 정규직화 하는 건 어렵겠지만 자연감소 인원을 점차 정규직화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성내야드 수출야적장에 배타고 나갈 날을 기다리는 차들처럼, 노동자의 수만 가지 생각은 현대차 공장안에 대기중이다. 반면교사로 삼을 것과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은 무엇인가. (합동취재팀=울산노동뉴스, 미디어 충청, 참세상)

  배 타고 해외로 나갈 날을 기다리는 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