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은 저승사자, 질병판정위는 흡혈귀”

‘불승인 남발’, ‘강제 치료 종결’에 피눈물 흘리는 산재 노동자

근로복지공단과 산하단체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의 산재 불승인 남발로 산재 노동자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40년 만에 산재보험법이 개정되면서, 2008년 7월 질판위가 도입됐지만 산재 노동자들에게 질판위는 산재 인정을 가로막는 큰 방해물로 전락했다. 2010년 8월, 근로복지공단이 발표한 ‘2008~2010년 5월까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질병판정 현황 발생현황’에 따르면, 질판위의 산재 불승인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8년 불승인율은 55.3%였지만, 2009년에는 60.7%로 증가했으며, 2010년 5월까지의 불승인율만 64.5%에 달한다. 산재 노동자 10명 중 7명은 노동 현장에서 재해를 입어도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질판위와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처리 과정은 노동자들에게 또 한 번의 산재를 입히고 있다. 산재노동자의 진술을 배제하고 사업주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불승인 처분을 내리기도 하고,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강제치료 종결을 독촉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은 부실한 조사로, 산재와 무관한 과거 질병을 이유로 산재 불승인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산재보험개혁대책위원회는 15일, 오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130호에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불승인 피해자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산재노동자들은 근로복지공단과 질판위의 근거 없는 불승인 남발과 부실조사, 그리고 강제치료 종결 독촉 등의 경험을 증언했다.


사업주 말만 듣고 불승인, 조사는 ‘2분 통화’가 끝

아파트 마무리공사를 주로 해 왔던 박근규 근일건설 노동자는 지난 2009년 11월, 사상부 뇌출혈로 쓰러졌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밤 11~12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4년간 지속해 왔던 박씨는 과로로 인한 뇌출혈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조사 과정에서 정작 재해자의 진술을 배제한 채, 사측의 입장만을 전달받아 불승인 통보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은 한 상태였으나, 말을 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은 회사 전무와 동생에게만 질의응답서를 받고 불승인을 통보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뿐만 아니라, 삼호중공업에 근무하는 김봉택 씨의 경우, 그가 모르는 사이에 사측에 의해 산재요양신청서가 접수되었으며, 근로복지공단은 단 2~3분만의 전화통화로 재해조사를 마친 뒤 불승인을 통보하기도 했다.

김 씨는 지난 6월, 작업 중 허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지만 회사는 김 씨도 모르게 산재요양신청서를 작성해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에 산재접수를 했다. 이에 대해 박웅기 삼호중공업지회 노안부장은 “특히 회사는 본인 날인에 거짓 서명을 하고, 산재자에게 보여주지도 않은 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면서 “또한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는 산재노동자 재해조사를 전화통화 2~3분으로 마무리하고, 산재에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진술서를 모두 누락시켰다”고 밝혔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은 오른쪽 무릎을 다친 노동자에게, 20년 전에 교통사고로 다친 왼쪽 무릎을 이유로 산재 불승인 처리를 하기도 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재해자는 오른쪽 무릎을 다쳐 산재 요양 신청을 했지만, 공단이 20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무릎이 다쳤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도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정확히 명시하지 않아, 현재의 상병이 과거에 발생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도 인정한 산재, 질판위만 ‘불승인’
근로복지공단은 강제치료종결 독촉


주치의와 자문위, 근로복지공단 조사자와 전문가 등의 다수가 인정했던 산재에 대해, 질판위에서만 ‘불승인’으로 표결해, 산재가 불승인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지난 10월 19일,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남발이 계속되자, 산성 반도체 피해자들이 공단에서 농성을 벌였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2년이 넘도록 반도체 공장에서 불량검사 및 검출작업을 담당해 왔던 박정숙 씨는 손목이 아파 병원 진단을 받았다. 진단 결과, 주치의는 우 수근부관절 및 윤활막 건초염 진단을 받았으며, 업무수행중에 손목의 반복적인 사용과 관련이 깊다고 보았다. 문길주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하루에 1000번 정도 손목을 사용했으며, 잔업특근 때는 더욱 심했다”며 “주치의와 자문의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조사자와 전문가 등이 모두 업무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질판위 위원 5명은 심의 과정에서 모두 ‘상병에 대한 객관성이 결여되므로 불인정’을 결정했다. 문길주 국장은 “전문가들의 분명한 진단명과 소견이 있는데도 도대체 어떤 근거로 객관성이 결여됐다고 주장하는지 질판위 위원들에게 묻고 싶다”면서 “지금 해당 여성노동자는 자기 돈으로 물리치료를 해 가며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서 질판위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의 치료를 강제로 종결시키기 위하 독촉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서민석씨는 15년간 캐리어에 근무하면서 요추염좌, 추간판탈출증을 얻어 2009년 12월 29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요양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2010년 1월 5일, 병원 측에 “2010년 1월 31일까지 치료종결 바랍니다”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서민석씨는 “근로복지공단이 병원 원무부장에게 치료종결을 요구했으며, 이에 금속노조에서 항의하니 2달 요양 연기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은 치료종결 처분에 있어, 자문의사협의회조차 개최하지 않았으며, 금속노조의 항의에 대해 “실무자의 착오였다”고 변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민석 씨는 “공단 측은 실무자의 착오 때문에 ‘치료종결 검토 바랍니다’의 ‘검토’자를 빠뜨렸다고 변명했다”면서 “금속노조에서 항의해 요양연기와 치료를 보장했지만, 사실 한 번 치료종결이 되면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질판위의 개선? 해체가 답이다”

질판위는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 판정에 있어 공정성 및 전문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설립됐다. 하지만 산재 노동자들은 질판위의 도입으로 공정성, 전문성 뿐 아니라 신속성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길주 국장은 “산재요양에서 승인 여부 판정까지 최소 2~3달에서 최대 1년까지 걸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판정 기간이 길어도 승인율이 높으면 모르겠지만, 질판위의 무차별적인 불승인으로 노동자들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때문에 문길주 국장은 ‘근로복지 공단은 저승사자, 질판위는 흡혈귀’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병원을 방문하는 날은 강제 치료종결을 독촉하는 날이고, 질판위의 판정이 없다면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산재승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길주 국장은 질판위의 개선이 아닌 해체를 요구했다. 또한 현장 재해조사의 강화, 심사기구 독립, 산재환자의 변론권 확립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솔직히 민주노총에 노안정책이 없다. 있어도 100점 만점에 10점 정도”라며 “민주노총이 산재보험제도 개혁에 앞장 서는 동시에, 현재의 산재보험개혁대책위원회 역시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참여로 사회적의제화에 힘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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