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구산성' 뛰어넘을 비정규직 역량 키워야

[기고] 정규직 조합원들 의식 바꾸는 노력 절실

현대차 자본보다 더 두꺼운 정규직의 벽을 넘어야 한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5일간의 강고한 투쟁은 한국사회의 낡은 착취체제에 파열구를 내고 새로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많은 교훈과 과제를 남기고 있다.

즉각 정규직화를 기대하고 올라가 추위와 배고픔을 감내하며 투쟁해왔던 25일간의 영웅적인 투쟁도 현실의 벽과 한계를 확인하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무리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렬하다해도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이 된 이상 지금의 주체역량으로 돌파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혹자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 허탈하다는 혹평을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투쟁은 연평도 남북 폭격사건에도 전국민적 관심과 지지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사회적 쟁점화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지난 14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현대차 원하청 노사 [출처: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교섭과 동시 농성해제를 압박하는 정규직지부의 금속노조 총파업 찬반투표가 강행되는 최악의 고립상황에서도 야4당 국회의원들의 중재안마저 거부하며 정규직화 아니면 내려갈 수 없다는 의지는 9일 아침 농성장 총회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고립무원과 사면초가에서 투쟁은 이제까지의 성과마저 까먹고 제2의 투쟁을 준비할 진지까지 초토화될 염려가 컸던 게 사실이다.

그들은 아마도 정규직지부 총파업 찬반투표의 부결 예상과 상집 철수 등으로 크게 좌절했을 것이고 김밥 공급 중단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연대투쟁을 기대했던 정규직들에게서 김밥 공급이 중단되고 농성장 사수에 확신이 줄어들면서 좌절감과 상실감이 후일을 도모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지고 지도부에게 전권을 위임하며 교섭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기울어졌을 것이다.

현대차 관리자들의 무차별 폭력과 체포영장 발부, 162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청구, 경찰의 공권력 투입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던 1공장 점거농성은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의 외면 때문에 좌절하고 내려 온 것이다. 이번 투쟁을 통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정규직의 벽을 넘는 것이라는 걸 확인한 것이다.

지난 14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은 현대차 원하청 노사(사진=현대차비정규직지회).

정규직 연대 지원없이 공장을 세울 수 있는 주체역량을 키워야 한다

처음 점거농성장에 내걸었던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현수막에서 비정규직투쟁은 처음부터 주체역량보다는 연대투쟁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찌보면 스스로 이번 투쟁에서 정규직화를 완전쟁취하겠다는 목표는 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8200명의 불법파견 해당자 중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한 숫자는 2500여명으로 30%에 불과하다. 70%가 미가입된 상태에서 30%가 투쟁에 돌입하면 최대 30% 쟁취가 가능하다. 만약 더 준비해서 100% 가입해 100% 투쟁에 동참했다면 1공장뿐만 아니라 5개 공장을 전부 세우고 불법파견을 철폐하고 정규직화 요구 100%를 쟁취했을 것이다. 아니 100% 가입해서 투쟁을 조직했다면 회사가 먼저 교섭에 응하여 해결방법을 찾자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 70%가 스스로 정규직화 가능성을 포기하고 가입하지 않는 조직이 가진 투쟁력은 현대차 자본에게 우습게 보였고, 시트사업부부터 깨나가면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헛된 자신감을 주게 되었다.

주체역량의 부족으로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지부에게서 교섭과 동시 농성해제라는 압박을 받게 되고, "손 떼겠다"는 협박과 "김밥도 못 넣어주겠다"는 모욕을 감수해야 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아름다운' 김밥연대를 거부하고 자존심을 지키며 밥을 굶고 아사동맹으로 점거농성투쟁을 유지하며 옥쇄투쟁으로 나가든지 전술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든지 선택의 시기를 놓쳤다. 이탈자의 증가, 정규직과 노노갈등의 약점을 본 현대차는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선 농성해제 후 협의를 주장하며 대화를 여는 척하면서 총체적 압박을 가해 공권력 동원없이 농성을 해제시키는 사례를 만들었다.

앞으로 교섭국면도 마찬가지다. 주체역량이 없으면 현실을 인정하고 정규직지부의 대리교섭과 간섭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독자조직과 독자투쟁을 선언하든지 빠른 결단을 하지 않으면 지난 25일간 투쟁과정에서 나타난 문제가 그대로 재연될 수 밖에 없다. 뼈아픈 지적과 쓴 소리를 하는 이유는 주체역량을 키워 자주성을 확보하는 것이 승리의 가장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모두가 해결의 주체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재조직해야

이제 불법파견 투쟁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이다. 그간 정규직 투쟁과 마찬가지로 이번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자 치료, 해고자, 체포영장, 구속자, 손해배상 청구, 징계위 개최 등으로 불법파견이라는 문제의 근원에 접근도 하기 전에 교섭이 결렬될 가능성을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있게 대비해야 한다.

우선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쟁점을 더욱 확산시켜 현대차 재벌의 MB정권과 노동부가 불법파견 시정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 금속노조와 현대차정규직지부, 활동가들은 정규직 조합원들에 대한 이해와 설득을 통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문제 해결의 주체로 서도록 교육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제2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합원을 과반수 이상인 4500명 이상 조직해서 전공장을 세울 수 있는 주체역량을 키워야 한다. 연대에만 의존하고 먹을 것조차 구걸하는 굴욕적인 투쟁으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자본은 비정규직, 불법파견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자본은 여전히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므로 정규직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즉, 배치전환이나 해고를 쉽게 하는 고용의 유연성과 정규직에 적용되는 연공급, 학자금 등 복리후생 및 부가급여 부담을 덜어낸 저임금구조를 경쟁력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비정규직이나 불법파견을 통해 회사는 인건비 부담과 경직된 내부노동시장의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해왔고 앞으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불법파견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일본처럼 파견대상을 확대해 안정적인(?) 저임금구조가 정착되기를 희망하고 보수정치권을 독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 파견대상 확대를 통해 사회양극화가 극심해진 일본은 도요타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한국은 오히려 더 확대를 못해 안달인 상황인 것이다.

현대자동차 경영진 또한 불법파견을 통해 많은 이윤을 챙겼고 다단계 하도급방식으로 부품단가 인하(CR)라는 부가이익도 챙겨왔는데 그 기득권을 반납하라고 하니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획일적 빈곤으로 벌어들인 수확을 나눠 가지는 보수언론과 정치권력으로부터 무한 비호와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다.

회사가 “불법파견 문제는 기업이 해소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법파견이 아니라 사내하청의 직원들이라는 군색한 변명으로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민주노조가 깃발을 꼽을 때와 같은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기 전에는 불법파견을 중단할 기미가 없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었을 때 어떤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자본을 설득하거나 강제할 대안은 없는지, 노자간 대립을 통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온 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조에 주어진 역할은 무엇인가?

해당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연대'에 머물러야 하며, 대중적 정서를 핑계삼아 확전을 반대하거나 이번 투쟁을 정치적, 이념적 대상화해 주도권 장악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것 외에 진지한 문제 접근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그렇다면 대체 대중정서가 어디에 있기에 해석과 해법이 다른 건가. 아니, 제대로 된 대중정서 파악이나 해 보았는지, 대중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이론이나 대책을 제시해 왔는지를 되돌아 보자. 예견된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면피하기, 책임 전가하기, 헐뜯기, 발 빼기에 더 집중하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실천에 나서야 할 것이다.

그 실천활동 중 하나가 자본 논리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는 일이다. 특히, 비정규직, 불법파견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면 정규직의 고용이 불안해지고 로테이션 요구로 노동강도가 올라간다고 하고 기업의 이윤이 줄어들면 나누는 양도 줄어든다는 식의 이기적이고 비인도적인 논리가 먹혀드는 이유는 뭘까?

과연 우리 조합원들이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를 따지기 전에 정규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비정규직이나 불법파견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정규직을 쓰지 않아서 이윤이 늘었다면 그리고 그 이윤이 정규직의 성과급으로 지급되고 있다면 자본과 정규직 노동자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비정규직 양산의 공범이다. 그러나 정리해고라는 비윤리적이고 야만적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고용의 안전망을 들먹이면서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공정을 떠넘기자는 회사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었고 이후 비정규직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들고나오는 ‘경쟁력’ 논리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의식을 지배당한 사실을 일깨워 하루빨리 계급적 사고로 재무장하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해소는 정규직 노조와 조합원들이 주도해 나가야 한다

다양한 형태로 제시돼 온 여러 가지 비정규직 해소 방안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대안은 단계적 해소방안이다. 첫째, 현행법상 불법파견이 명확한 공정의 노동자는 조건 없이 즉각 정규직화를 시켜 합법경영해야 한다. 둘째, 컨베어 흐름작업과 연관이 없는 작업, 노사 공히 도급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공정은 도급을 유지하는 대신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한다. 셋째, 차종 교체, 산재 휴직 등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한시적인 업무(JOB)에 대해서는 불법적인 방법이 아닌 직고용 기간제를 인정한다. 단, 사유 제한을 명확히 해서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하고 처우를 개선한다.

이와 함께 선진국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노동에는 정규직과 같은 수준에 임금을 맞추거나 오히려 더 높게 책정해 고용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특히 힘들고 어렵고 더럽거나 높은 숙련의 작업을 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게 노동의 정의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정규직 벽을 넘어야 해결방안 찾는다

불법파견 공정의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과정에서는 공정배치 등 정규직 조합원과의 이해관계가 배치되지 않도록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그리고 직고용 기간제도는 고용의 경직성을 완화해 정규직의 고용불안 해소가 가능하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2년 미만의 비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 방지 안전장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노동자의 안정적 일자리 보장을 위한 대책으로는 일종의 '크로즈드샵' 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를 1사1조직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제한하고 정규직 선발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식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16.9%에서 한번 속았기에 명확한 룰과 시스템을 도입하고, 합의위반에 대한 안전장치, 대의원들에게서 비정규직 합의권을 집단적 노사관계로 가져온다는 전제에서의 대안이다.

이제, 비정규직 투쟁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얻는 계기가 되었고 구체적 대안만 제시된다면 연착륙이 가능하다. 따라서, 집행부와 현장조직을 막론하고 모든 역량이 동원돼 정규직 조합원들의 의식을 전환시키는 노력이 절실하다. 정규직 노동자가 동의하고 요구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되었다. 대법원 판결과 국민 여론의 지지라는 호기를 맞이하고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노갈등으로 다시 주저앉는다면 역사 앞에 한 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역사는 항상 주체들의 실력과 힘에 맞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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