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말자, 인간다운 삶의 개념을 바꾸자

[칼럼] 현대차 엔진사업부 고 김성배 동지의 명복을

현대자동차 엔진사업부에 일하던 김성배조합원이 26일 특근철야를 위해 출근했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울산대학병원의 사망진단서에는 ‘급성심근경색 추정’이라고 사망 원인을 표시했지만 이를 우리는 흔히 과로사 또는 돌연사로 부른다.

회사는 지병을 운운했다. 죽은 자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망자를 두 번 죽일 수 없다는 판단으로 부검을 하지 않고 산재승인 절차를 밟아 달라고 했다. 자포자기했는지 회사에서 죽었으니 당연히 산재승인이 날 것이라는 믿음에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그렇게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 이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지부와 담당 대표, 대의원들의 수고로 가장을 잃고 실의에 빠진 가족들에게 산재불승인이라는 절망적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성의있는 노력을 부탁 드린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심의절차가 변경되며 산재승인이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워 죽은 자의 억울함은 늘어만 가고 살아남은 가족들의 삶조차 파탄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우리가 과로사로 부르는 뇌심혈관계 질환은 90% 이상이 산재심의에서 불승인되는 상황이다. 산업노동재해라는 책임과 보험료 인상을 회피하려는 자본과 친기업정권의 합작품은 노동자들의 죽은 영혼까지 귀찮아하며 유치하게 만드는 데 분노가 치민다.

[출처: 자료사진]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제시대 강제노역에 끌려가 옆의 동료가 죽어도 시체를 치우고 계속 일을 했다는 아픈 역사가 21세기 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옆 동료가 과로사로 쓰러져 숨을 거둔 상황임에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슬픔에 빠진 표정을 감추며 특근 철야를 해야 하는 게 더 큰 비극이다. 과로사라는 죽음의 그늘이 다음 희생양을 찾아 기웃거리는 그 현장에서 철야특근을 해야 하는 악마의 사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주야간 맞교대 근무에 휴일도 없이 특근철야를 해야 하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모두 과로사 예비군에 해당된다. 태국에서 코끼리가 야간작업 3개월만에 죽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소도 야간에는 휴식을 한다. 그런데 사람이 지구의 자전에 역행하여 하룻밤 사이 지구의 반대편에 다녀오며 일하는 교대근무는 생명을 15년 이상 단축시키고 온갖 암과 질병의 원인이 된다. 짐승인 소를 이렇게 부려 먹어도 1년도 못살고 죽을 것이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지만 70% 이상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환자이고, 한 해 30명 이상이 과로사로 죽어 나가는 현대자동차는 살인기업이고, 죽음의 공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지옥으로 변한지 오래이다. 중대재해사고로 사망해야만 사용자를 처벌하는 고용노동부의 안이한 현장관리가 문제이고, 현대자동차를 안전관리우수사업장이라고 선정하는 엉터리 정부가 문제이다. 고용노동부는 현대자동차를 중대사망재해 공장으로 선포하고 공장가동을 중지시키고 전문가를 동원하여 정밀진단에 나서야 한다.

한 해에 30여명이면 3년이면 100여명이고, 10년이면 300여명이 집단으로 사망하고 있는데 더 이상의 중대재해 공장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회사 또한 자발적으로 초과밀노동으로 노동자들을 더 이상 죽음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즉각 비상대책을 세워야 한다. 현대차지부 또한 과로사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사망사건으로 무디게 대응해서는 안된다. 다음은 어떤 조합원이 희생 당할지 모른다. 고용노동부에 직접 고소하고 특별근로감독에 나오도록 행동에 나서야 한다. 안한다면 나라도 고소를 할 것이다.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현대차 노사에 강력히 요구한다.

활동가들도 각성해야 한다. 고용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물량 확보하여 조합원을 장시간노동의 구렁텅이에 빠뜨려 과로사로 죽이는 게 민주투사인가. 조합원들의 잘못된 요구와는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의 대표, 대의원 선거에 표로 협박하는 조합원들과도 타협하지 말고 당당하게 떨어지면서도 바른 소리를 해야 하는 게 진정한 활동가가 아닌가. 누군가는 앞장서서 저 죽음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 역사적 임무에 충실한 활동가가 부족하여 23년 투쟁의 결과는 조합원들의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먼 죽음의 공장을 만든 것을 반성하고 고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조합원들은 더 크게 각성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부자 되기 운동을 하는 조직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다. 소아적 단기적 실리주의라는 이기심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를 죽음과 불행으로 이끌고 있다. 주간연속2교대제를 요구하면서도 내심 70%는 “있을 때 벌자”라고 생각하는 조합원, 생산물량을 증가시키고 고용안정 합의했다는 역대 집행부와 물량만 더 따오라는 조합원, 3000시간 상한제마저 폐지시키라고 협박하는 조합원들의 타락한 목소리가 너무 커졌기에 발전보다 퇴행을 하고 있다. 남의 탓을 하지 말고 조합원 스스로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고 고쳐 나가야 한다.

연말연시에 좋은 말로 덕담을 해야 하겠지만 기왕 쓴소리가 나왔으니 몇 마디 더 보태야겠다.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은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부터 가장 핵심 책임자이고 비판을 받아야 할 당사자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기왕 잘못된 길을 걸어왔으니 덮어두어야 하는가. 조합원들이 죽어가는 죽음의 공장을 만들어 놓고 어용과 민주를 편가르고, 투쟁과 실리를 따질 자격도 없다. 누가 더 크게 반성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를 바로잡아보겠다는 용기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노동운동의 본령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구조가 가장 좋은 방향이지만 일 안하고 많이 받겠다는 생각이 아니다.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인간답게 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주어진 시간에 최소한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일 많이 하고 돈 많이 벌어가는 구조는 최악의 상황이며, 차를 한 대라도 더 만들어 주겠다고 본관 앞에 천막농성을 하며 물량확보 투쟁을 하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반노동자적인 활동은 이제 하지 말자는 것이다.

몇해 전 과로사로 가장 많이 죽어나가는 엔진.변속기공장 대의원들의 맨아워 협상을 보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의장조립이 100이라면 엔진.변속기.시트와 납품업체는 120의 생산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대의원들은 사업부에 70을 요구하고 있었다. 고용안정을 위해 70을 설치해도 연장과 특근으로 물량을 맞추어 주겠다는 주장을 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결과는 아마 100 정도로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장조립이 특근철야에 들어간다면 100 정도를 설치한 엔진.변속기.시트공장은 1년 365일 특근철야를 해도 공급이 부족할 것이다. 노조 설립 이래 98년 한 해만 빼고 22년 이상을 그런 공식이 작동햇고, 평균연령 40세 이상의 고령화 공장에서 아직도 1년 3000시간 이상을 일을 시키는 것은 조합원 살인을 공모하는 행위이다. 지부와 대의원들은 즉각 공장 생산능력을 따져 설비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노동시간 상한제 도입도 못하는 장시간 노동경쟁체제에서는 노동시간 단축도, 주간연속2교대도 전부 거짓말이고 사기에 불과하다.

조합원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드린다. 인간다운 삶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것이 친생태적이고 더불어 함께 사는 인간다운 삶의 길이다. 잔업특근 많이 하여 천민자본주의에 부역하는 삶은 우리를 더욱 비참한 소비노예화로 빠져들게 할 뿐이다. 위만 바라보는 삶은 한번뿐인 인생을 불행으로 빠뜨린다. 적게 벌어 적게 쓰면서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새해부터는 인간다운 삶의 개념을 바꾸고 인생을 재설계하여 불행한 삶에서 꼭 탈출하기 바란다. 김성배 동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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