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개인정보 내줘야 지원해준다?

정부, 사회복지통합관리망에 성폭력피해자 정보 5년간 남겨

“ㄱ 씨는 10여 년의 성매매 집결지 생활을 청산하고 자활지원을 받고자 결심한다. 그러나 ㄱ씨는 지원기관의 존재를 알고도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지원기관에 방문해 자신의 실명을 밝힐 수 있었다. 성매매 업소 업주에게 여성단체에서 지원을 받으면 정부기관에 신상정보가 보고된다고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원기관에서는 ㄱ씨에게 개인정보를 정부기관 등 외부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제야 ㄱ씨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업훈련지원을 받고자 보호시설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보호시설에서 입소동의서를 통해 신상정보가 지자체에 보고된다는 사실을 알자 ㄱ씨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그 신상정보가 지자체를 통해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입력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ㄱ씨는 결국 지원받기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단체들이 '여성폭력피해자들의 개인정보집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여성가족부 앞에서 열었다.

8일 정오, 휘몰아치는 칼바람 속에서 여성단체들이 여성가족부 앞에 모였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등 8개의 여성단체가 모여 만든 ‘여성폭력피해자지원시설 전자정부화대응모임’(아래 전자정부화대응모임)은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가족부 등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모였다.

전자정부화대응모임에 따르면, 여성이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의 피해를 당한 뒤 가해자에게서 빠져나와 쉼터를 이용하려면 주민등록번호 등을 정부전산망에 입력해야 하며, 이 기록이 5년간 정부전산망에 보관된다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또한 지원받으려면 개인자산 조회에도 동의해야 한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지원은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일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회복지정책 기초자료 확보 등의 이유로 2008년부터 새올시스템이라는 전자정보집적시스템을 도입했으며, 2010년부터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 '행복e음'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성폭력 피해자들의 자산정보와 신상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그동안 전자정부화대응모임에서는 입소자의 개인정보 사회복지통합관리망 집적을 반대하고, 자산조사 없이 여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제대로 된 대책이나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시책이니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여성폭력 관련 시설들에 사회복지통합관리망과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 한전국연대 정미례 공동대표는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를 분리한 것은 여성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여성가족부는 복지부 입장만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다”라고 꼬집고 “공문을 보내도, 장관면담을 신청해도 소수의견이라 묵살하는 여성가족부는 각성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여성의전화 오래뜰 배인숙 시설장은 “피해자정보가 노출되는 위험을 아무리 얘기해도 여성가족부는 오히려 ‘시설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라고 비판하고 “지자체가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이용하지 않으면 시설에 지원금을 줄 수 없다고 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열림터 송미헌 원장은 “여성폭력이 대부분 친족에게 당한 것이고, 집에서 더는 살 수 없어 쉼터로 온 피해자 중에는 청소년이 많다”라며 “이들은 학교에서조차 쉼터에 있다는 걸 알리기 꺼리는데 퇴소 후 5년이나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에 한 번 더 절망한다”라며 현 정부의 지원행태를 비판했다.

전자정부화대응모임 은 전자정보집적 반대 집회에 이어 9일에는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예산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서울시의회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기자회견에서는 정부의 여성폭력관련 시설 평가 후 인센티브 지원 문제점 등 예산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기사제휴=비마이너)

  피해자의 인권침해보다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전자정부를 풍자하는 노래를 참가자들이 부르고 있다.
태그

성폭력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현진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