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전자산업’...산재와 자살 ‘도미노’

전자산업의 핵심 ‘삼성’, 그 곳에서 죽어가는 ‘노동자’

지난 1월 3일, 삼성전자 LCD 탕정기숙사에서 여성노동자 박모 씨가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월 11일, 탕정기숙사 남성노동자 고 김주현 씨가 또 한 번의 투신자살로 목숨을 잃었다.

자살뿐이 아니다. 삼성 반도체, 삼성전자 LCD, 삼성전기 등에서 근무했던 노동자 중 120명이 백혈병, 림프종, 암, 뇌종양 등의 병을 얻었다. 그 중 46명이 사망한 상태다. 그야말로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실태가 서서히 악몽으로 드러나고 있는 형국이다.

드러나지 않는 전자산업 하도급 노동자, 지옥 같은 노동을 한다

민주노총 삼성대책회의와 금속노조는 9일 오후, 민주노총에서 전자산업 노동실태와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진행했다. 발제와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현 전자산업 노동 현장은 ‘산재’와 ‘자살’을 부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유해물질 노출 등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전자산업 현장은 그야말로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 전자 산업 노동자 중 여성노동자의 초과근로시간은 월 30.4시간에 달한다. 제조업 평균 초과근로시간인 28.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자동차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남성 노동자의 경우 더욱 상황은 심각하다. 이들은 55.2시간의 초과근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제조업 평균임금인 2,168,285만원에 비해, 전자산업 종사 여성 노동자 임금은 1,727,254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수치로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전반적 수치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실장은 “위의 통계는 상용직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전자 생산직에서 일반화 된 파견노동자의 실태는 사실상 제외되어 있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자산업에는 집계되지 않는 수많은 하도급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서울디지털단지에 종사하고 있는 전자산업 노동자들은 공식적으로 15만 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지만, 수치에서 누락된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서울디지털단지역을 통해 매일 출근하는 노동자만 30만 명에 달한다는 수치만 어림짐작으로 보고되고 있다.

수치로도 파악되지 않는 파견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수면위로 드러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서울남부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노동자의미래’를 조직해 서울디지털단지의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사업단이 조사한 전자 산업 파견노동자들의 실태는 그야말로 ‘지옥의 노동현장’이었다.

구자현 노동자의미래 남부지역지회 지회장은 “임금제는 대다수가 최저임금으로, 잔업이나 특근 수당에 대한 임금 의존도가 매우 높다”며 “또한 장시간 노동이 매우 불규칙하지만, 당사자의 선택권 내지 자율성은 거의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회사에서의 임금인상 유인을 비롯한 고용안정 유인도 부재해, 사내복지는 거의 바닥 수준이다. 게다가 익히 알려진 전자산업노동자들의 노동 안전은 그야말로 열악하다는 소문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구자현 지회장은 “세척과정에서 인체에 자극을 주는 화학물질을 사용하는데, 그것의 위험요인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며 “짧은 시간 반복되는 노동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역시 다수”라고 전했다.

전자산업의 핵심 ‘삼성’, 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노동자’

지난 1월 1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현 씨는, 생전 노동현장에서의 고충을 토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입사 1년 동안 피부병과 우울증에 시달려 왔다.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2010년 2월 1일,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FAB(클린룸) 컬러필터 공정 설비엔지니어로 입사한 그는 클린룸에서 방진복을 착용하고 화학약품을 취급하며 정비를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피부병이 발병한 그는 2010년 8월 2일, 방진복과 화학약품 취급으로 인한 피부병 진단을 받았다. 이종란 노무사는 “2010년 4월에서 7월까지 그는 수시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피부병과 하루 14~16시간 장시간 노동을 호소해 왔다”고 밝혔다.

이미 유품이 된 고인의 교육노트에는 “12시간근무=기본”, “1년은 나 죽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종란 노무사는 “고인은 기숙사에서 자다가도 호출을 당해 불려나가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올 시간도 없을 정도로 막대한 물량을 짧은 시간에 소화해야 했다”며 “또한 한 달에 한 번도 못 쉬는 경우도 있었으며, 기본 12시간 근로로, 하루 14~16시간씩 불법 초과근로를 강요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에서 근무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은 올해 2명의 노동자 이외에도 다수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어난 자살사건 제보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한다. 이종란 노무사는 “교대제가 이상한 2교재로 변한 후 노동 강도가 세지면서 2년간 자살이 6사례나 발생했다는 제보가 있었으며, 한 생산직 여성노동자는 동료 이모 씨가 2001년 자살했는데 회사에서 사망이유를 다르게 말했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2000년도 후반에 재직한 연 모씨는 “제가 근무할 당시에도 기숙사에서 자살한 여성이 있었다”고 반올림에 알려왔으며, 부장급 엔지니어 홍모 씨의 부인 역시 “남편이 평생 삼성맨으로 충성을 다했는데 중증 빈혈 치료를 6개월간 받다가 어느 날 진급 누락과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했는데 삼성이 자살이유를 집안문제로 돌렸다. 억울하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반도체를 비롯한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에서 근무하다 희귀병을 얻은 노동자들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수백, 수천가지의 화학물질과 방사선 등에 노출되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백혈병, 림프종, 뇌종양, 암, 재생불량성빈혈 등이 발병했지만, 삼성은 이노동자들이 다루는 화학물질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사라져버린 공장, 그리고 밝혀지지 않는 화학물질은 이들의 산재여부를 더욱 미궁에 빠뜨린다. 현재까지 17명의 산재신청 중 심의중인 1건을 제외한 16건이 줄줄이 산재불승인 판정이 나는 것 또한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의 ‘공작’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다.

사실상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 전자산업에서 삼성 등의 대기업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지원 실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볼 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특히 삼성전자는 반도체부터 최종 소비재까지 대부분이 계열사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한국 디스플레이 업종의 경우에는 삼성 엘지 계열사들이 전세계 LCD 패널의 52%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휴대폰의 경우에는 삼성전자가 부품 모듈 세트조립 대부분 과정에 계열사를 포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언론과 이미지메이킹, 그리고 기밀유지를 통해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삼성과, 노동자들의 수치조차 파악되지 않는 수많은 전자산업관련 하청업체들은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양지로 옮겨내지 못한다. 결국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환경을 공개하지 못한 채 오늘도 ‘자살’과 ‘산재’에 맞서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전자산업 노동실태, ‘상식적’인 개선조차 어렵나

이 같은 전자산업의 노동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 머물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의 조직문화가 인간적이었다면, 삼성에 민주적인 노조가 있었다면, 적정한 근로시간과 휴식이 보장되었더라면, 최소한 노동법만 지켰더라면 김수현 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실제로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은 노동자들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으며, 유해 화학물질의 공개 거부는 노동자들의 알권리를 가로막고 있다. 사원증을 통한 상시 감시와 노동자들의 일상을 감시하는 노무관리로 인해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는 그들은 장시간 근로에도, 산재에도, 동료의 자살에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삼성 뿐 아니라 모든 전자산업 사업장에서의 노동환경개선은 중요하다. 하지만 노동실태를 고발하거나 바꾸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져야 하는데, 삼성은 강력한 무노조 방침으로, 수많은 하청업체에서는 그들 나름대로 노동자 조직화의 어려움을 겪으며 매번 좌절을 경험한다.

한지원 실장은 “노동자 수로 따지면 삼성전자, LG전자 노동자의 수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조직화의 양적 확대는 부품 하청업체 조직화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하지만 범용 모듈과 규격 제품이 대다수인 전자 산업 특성상 대부분의 부품사에서 원청에 대해 교섭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 대형 부품 하청 업체가 재벌 대기업과 중소영세 전자기업 노동자 조직화의 핵심매개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지원 실장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쉽지 않은 문제지만, 재벌 대기업 생산 과정에서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중소영세 전자 업체의 노동자들에게도 여러 가지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그는 수많은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단 내 조직화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한지원 실장은 “서울디지털단지처럼 업체가 밀집돼 있어 정부가 직접 관리해주는 공단이 존재하는 이상, 이곳에서의 조직화에 성공하지 못하면 근로조건이나 불공정 하도급 등의 구조 자체를 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태그

삼성 , 전자산업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